이 글은 청담 며느리룩 패션 분석이 아닙니다(!)
최근 어느 0부인이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를 너무 심하게 카피한다는 것을 안터넷에서 보면서 문뜩 생각이 났다. 재클린 하면 당시에 패션니스타였고 지금도 그녀의 패션이 우리나라에는 청담동 며느리룩으로 여전히 영향을 끼치고 있지 않은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청담동 며느리룩. 이 용어를 들었을 때 무엇이 연상될까.
단아함. 우아함. 고혹적. 심플하면서 고급스러움. 완벽함. 절제된 클래식함. 모던. 격식과 품격을 갖춘 럭셔리. 고저스. 부담감을 주지 않는. 시크함. 클래식한 멋과 도시적이고 세련된. 여성스러움에 과하지 않은 은은한 럭셔리함. 청순함. 레이디라이크룩. 오드리 헵번룩. 재클린 케너디 연상…
인터넷에서 청담동 며느리룩을 검색해보니 나왔던 단어들을 위에 나열해봤다. 좋은 건 다 집어넣었다.
수많은 용어로 청담동 며느리룩은 이렇다고 표현하다 보니 정확이 어떤 패션을 말하는지 단어들만으로는 잘 이해가 안 간다. 그럴 경우 여자 연예인이나 유명인이 걸친 옷을 보여주면서 ”This is Cheongdam 며느리 look”이라고 하면 단번에 이해가 갈 것이다. 최근 언론에서는 김연아 화보 패션을 청담 며느리룩이라고 한다.
언제부터 이 용어가 우리 사회에서 처음 통용되었으며, 왜 하필 이 세 단어들로 구성되었는지. 그리고 청담동 며느리룩은 무엇을 의미하는지가 궁금해졌다.
<청담동 며느리룩 등장 배경>
네이버 뉴스를 검색해보면 청담동 며느리룩은 2009년 기사에 처음으로 등장한다.
청담동 며느리룩 등장 전 상황을 살펴보면 우리는 1997년 IMF를 겪었고, 2001년 8월 IMF를 졸업한다. 우리 사회는 양극화가 심해진다. 한국노동연구원이 발간한 '2017년까지의 최상위 소득 비중'을 보면 상위 10% 집단의 소득 비중은 2000년대 꾸준히 상승해 2004년 처음으로 40.71%를 기록하면서 40%대를 돌파했다.
그리고 2008년 이명박은 747 공약(7% 경제 성장률, 국민소득 4만불, 세계 7위 진입)을 앞세워서 압도적이 표 차이로 대통령이 된다.
정리해보면, 양극화가 심화됨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 분위기는 경제 성장을 계속한다면 너도 나도 다 잘 살 수 있다는 생각이 여전히 유효할 때 청담동 며느리룩이 처음 등장한 것이다.
<청담동, 며느리, 룩>
청담동 - 청담동은 대한민국 부의 상징이다. 일례로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있는 더펜트하우스 청담'이 가장 비싼 아파트로 뽑혔는데 올해 5월 28일 145억 원에 거래되었다. 주로 고소득 연예인이나 운동선수, 스타 강사, 기업 오너나 그 가족들이 소유 혹은 거주하는 걸로 알려져 있다고 한다.
나무위키에 따르면 압구정과 삼성동과 함께 청담동은 부촌으로 꼽히는데, 국내에서 가장 비싼 강남구 안에서도 비싼 편에 속한다고 한다. 그런 면에서 청담동이 대한민국의 부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겠다.
며느리 - 왜 청담동 며느리룩에 며느리라는 단어를 추가했을까. 이 글을 쓰면서 개인적으로 가장 궁금했던 부분이다. 그냥 청담동룩도 아니고 청담여성룩도 아니고. 청담 사위는 더더욱 없다. 그냥 사위룩 기사는 가끔 있긴 하다.
아마도 “며느리”가 가진 의미를 먼저 따져봐야 할 것이다. 청담동 며느리룩 기사들을 보면 일반적으로 젊은 연예인들과 젊은 유명인들 패션을 지칭한다. 그렇다면 청담동 며느리룩에서 며느리는 젊은 여성으로 국한된다. 그리고 청담동 며느리룩은 기본적으로 점잖은 정장을 지칭하는데(이 개념이 계속해서 확장되가고 있지만), 이것을 옷이 아닌 젊은 여성에 대입해보면 언론이 지속해서 여성들에게 요구되는 이미지로 생각해볼 수 있다. 단아함, 품격 있는 등. 좀 더 나아간다면 시부모와 남편에게 순종적인 것을 여전히 요구하고 있다는 것은 비약일까.
코코 샤넬이 처음 샤넬룩의 의의는 여성들의 거추장스러운 옷으로부터 해방시키는 데 있었다. 하지만 청담동 며느리룩은 대한민국에서는 여성을 구속한다는 개념으로 사용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룩 - 청담동 며느리룩은 코코 샤넬의 패션 > 오드리 헵번, 재키 캐너디 등의 패션 > 레이디라이크룩 등의 패션이 국내에 들어오면서 현지화되었다고 보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처음에는 청담동 며느리룩은 재벌, 명문가 패션, 그리고 정장 패션을 상징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바지, 코트 등을 포괄하게 되면서 용어는 확장된다. 그러다 보니 웬만한 옷은 다 청담동 며느리룩이다. 조만간 수영복과 운동복도 청담동 며느리룩에 추가될 기세다.
흥미로운 점은 청담동 패션이라는 용어는 국내에만 사용되지 않고 북한에도 적용되기 시작한다, 국내 언론들은 2012년경 리설주의 패션을 샤넬 패션, 청담 패션 등으로 소개했다. 보수, 진보 언론 가리지 않고 리설주 패션을 청담 패션으로 소개하고 있다는 점이다.
<청담동 며느리룩은 우리에게 무엇일까>
위 내용을 정리해보면 청담동 며느리룩이라는 용어는 한 가지 결론으로 정리될 수 있다. 청담동 며느리룩은 우리 사회의 욕망을 상징하는 또 하나의 키워드다.
양극화와 계층 이동 사다리가 붕괴된 지금 대한민국 사회는 심각하다. 특히 20대의 경우 2020년 20대 가구 하위 20%의 평균 자산은 844만원, 상위 20%의 평균 자산은 3억2855만원이었다. 그리고 지난해 하위 20%의 평균 자산은 전년 대비 115만원(11.9%) 감소한 반면, 상위 20%의 평균 자산은 817만원(2.5%) 증가했다.
강남 아파트 소유가 직접적인 부를 보여줄 수 있는 수단이며 소수에게만 주어지는 기회라면, 청담동 며느리룩은 간접적으로 주변에 부를 과시할 수 있는 수단이다. 그렇기 때문에 청담동 며느리룩은 10년이 지나도 여전히 유효한 키워드다.
거창하게 보자면, 청담동 며느리룩은 우리 사회의 욕망과 기존 체제 유지를 위한 또 하나의 키워드가 아닌가 생각이 든다.
0부인의 남편의 말을 차용하자면, “옷이 의식을 지배한다.”
아, 참고로 재벌 그룹 “현대가 며느리룩”도 있다. 위 청담동 며느리룩 단어에 한복을 추가하면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