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학원에겐 아빠가 이질적 존재로 보이겠지
대문 사진은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한 우주의 작은 공간에 허블 망원경으로 찍었더니 10,000개의 은하가 나온 유명한 사진입니다.
자녀 교육이라는 소우주에서 아빠들의 존재가 없어 보이지만 사실은 수많은 아빠들이 있다는 의미로 이 사진을 골라봤습니다.
많은 엄마들이 자녀 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현실, 그리고 남편은 자녀 교육에서 잘 안 보이는 현실. 그리고 이 세팅에 맞춰 돌아가는 학원. 본의 아니게 저는 그 현실 속에 들어갔습니다.
미국에서 돌아온 지 얼마 안 되어 아내가 딸의 영어 학원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미국에서 딸이 배워온 영어를 유지했으면 하는 바람과 독서를 좋아하는 딸에게 영어책 독서 위주 학원을 찾아보다 보니 사교육의 성지이자 한국 교육의 빌런으로 지목됨에도 불구하고 많은 학부모와 학생들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빨려 들어가는 슈퍼 블랙홀 강남 학원가에 위 조건이 맞는 학원이 하나 있었다.
근데, 이상하게도 이 학원의 서비스는 빨아들이는 블랙홀과 다르게 내뱉는 화이트홀 같다. 아내가 학원에 전화해서 물어보면 프런트는 뚱하게 응대했다. 그리고 수업 시작 전 아내가 다른 볼일로 그 근처에 들린 김에 교재를 수령하겠다고 하니 담당자가 회의 들어가야 한다고 나중에 오라고 한다. 무슨 이런... 다른 학원 관계자가 교재를 건너 주면 되잖아!!!! 난 식빵 언니 김연경을 또다시 소환하게 된다.
결국 내가 구원등판. 날을 잡아서 갔다. 가서 “교재 받으려 왔는데요”하니 프런트는 왜 아빠가 오냐 하는 표정. 이어서 내가 “저번에 아내가 교재 가지러 가겠다고 하니 담당자가 회의 들어간다고 오지 말라고 해서 이번엔 제가 왔는데요”하니 아내한테 응대한 거에 비해 좀 친절하게 나를 대한다. 교재가 옆 건물에 있다고 하길래 내가 “가면 돼요?” 물으니 직원 하나가 친히 교재를 가져다준다. 일단 교재 사태는 일단락.
그리고 수업이 시작된 후, 아내가 학원 선생님에게 이메일을 보내면 함흥차사다라고 한다. 또 내가 출동한다. “Dear... I am [Carol]’s dad...” 그랬더니 몇 시간 만에 회신이 온다. 무슨 아빠가 부루마블 무인도 탈출 카드도 아니고. 진작 왜 아내가 전화하거나 이메일을 보내면 반응을 하지 않는 건지...
결국 집에서 거리도 꽤 멀고 불친절한 응대 등 여러 가지 이유로 한 달여 만에 이 학원에 안 다니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피날레 장식은 내가 하기로 결정. 나는 직원한테 말했다. “이런저런 이유로 다음 달부터 안 보내기로 했어요” 그랬더니 직원이 직접 사모님한테 (학원이) 연락 안 드려도 되겠냐고 묻는다. 나는 내심 황당. 학부모 한 명이 취소 연락하면 되지 왜 아내한테 2차 확인을 받는 거지 생각이 든다. 아내는 재등록 설득하기 쉽다고 생각한 건가. 난 바로 대답했다 “아내랑 둘이 상의해서 그렇게 하기로 했어요” 취소 사태도 일단락.
이제 집에서 그나마 가까운 영어 학원으로 갔다. 등록을 하니 교재와 보따리를 준다. 담당 직원이 굳이 설명을 안 해도 되는 서류들 하나하나 친절하게 설명한다. 난 까막눈이 아닌데... 내가 친절하게(?) 잘 듣고 마지막으로 항상 관심 있는 셔틀버스에 대해 물어보니 기사님이 직접 연락이 갈 거라고 한다.
곧 모르는 전화가 왔다. 받아보니 기사분. 내가 “여보세요”하니 당황하신다. “[캐럴] 어머니 핸드폰 아닌가요?” “내가 (조선의 국모, 아니) [캐럴] 아빠인데요”하니 계속 당황하신 기사분, 아내를 찾는다. 나의 설명 시작. “아내가 바쁘고 전화를 잘 안 받으니 제가 받아요”(실제로 아내는 바쁘고 전화를 안 받는다). 그때서야 나한테 셔틀 승차 하차 지점을 이야기한다. 신규 학원 등록 처리도 일단락.
긴 하루가 끝나고 돌이켜보니 이들은 평소에 어머니들에게 하던 방식으로 대하려고 했는데 갑툭튀(갑자기 툭 튀어나온) 남자가 나타나니 긴장을 하거나 당황을 한 것 같다. 하지만 내가 당분간 앞으로 계속 나설 예정이다. 그러니 서로 적응합시다.
학교도 아빠가 어색한 상황 관련 글:
https://brunch.co.kr/@jitae2020/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