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아버지는 정주행 1일차
며칠 전 우리 집에 들러서 손주들 옷을 전해주고 아버지와 내가 나눈 대화다:
아버지: “너 넷플릭스 얼마 내고 있어?”
나: “월 12,000원이요. 어차피 저희는 동시에 여러 대 기기로 안 보거던요”
아버지: “그럼 나도 넷플릭스 (같이) 보자”
나: “네. 4대까지 되는 월 14,500원으로 변경할게요.”
우리는 신혼부터 있던 텔레비전(이라 말하고 사실상 먼지만 쌓이는 시커먼 장식품)은 몇 년 전에 이미 드라마에 최적화된 고화질 TV가 필요가 없다고 하셨지만 막상 잘 보실 어머니에게 기부했었다. (지금도 잘 보고 계신다).
우리는 애들이 태어나고 나서는 애들이 텔레비전에 노출되는 시간을 줄이려고 미국 가기 전에는 텔레비전을 살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그 결과, 우린 스마트폰을 더 보여주었다는 건 함정)
미국 가서는 애들을 돌봐줄(이라 말하고 나를 돌봐줄) 장비가 한 대 필요했었다. 그리고 코로나19이 닥쳤고, 가족의 텔레비전 시청 시간은 확 늘었다(넷플릭스 + 디즈니 플러스 콤보는 이때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한국에서는 코로나19 자가격리 2주가 있었기 때문에 들어오기 전에 긴급히 하나를 주문했었다.
그동안 아버지는 우리 가족이 케이블 없이 넷플릭스만 시청한다는 것을 알고 약간은 의아해하셨다. 하지만 어린애들이 있는 우리에게는 케이블이 딱히 필요가 없었다. 애들은 이미 콘텐츠를 선택할 수 있는 넷플릭스에 익숙해졌고 부모는 스마트폰으로 대부분 해결하니 딱히 케이블이 필요 없었다(KBS는 안 본 지 오래되어서 관리비에서 수신료를 뺀 지 몇 년 되었다).
어느 집처럼 아버지는 오랫동안 케이블을 보고 계셔서 난 이미 아버지께서 충분한 콘텐츠(아버지는 골프, 뉴스, 중국 무협물 위주로 보신다)를 보고 계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마도 아버지가 친구분들에게서 넷플릭스에 대해 구체적으로 들으신 것 같았다. 방대한 볼거리가 있는 신세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오늘 나는 아버지 집을 찾아가서 일단 아버지 텔레비전을 켰다. 스마트 TV라 바로 인터넷은 쉽게 연결. 리모컨에는 넷플릭스 버튼이 없지만 화면에는 뜬다. 이제 내가 넷플릭스 멤버십을 프리미엄으로 바꿀 차례. 상품 특징을 자세히 읽어보니 “동시 접속 인원”이다. 어차피 아내는 안 보고, 난 밤에만 보고, 애들은 낮에만 보니, 아버지는 아무 때나 보실 수 있다. 따라서 돈을 더 낼 필요가 없다! 더 냈어야 할 월 2,500원으로 내가 요새 즐겨 마시는 대형 로어 슈거 요구르트 두 병 살 금액을 굳혔다. (왜 결혼 후 내가 로어 슈거 음료를 찾는지는 별도로 쓸 예정이다...).
이제 아버지에게 넷플릭스의 인터페이스 설명 시작. 난 현장 방문한 넷플릭스 기사가 된 것 같다. 내가 침을 튀기면서 설명하는 동안(“제가 브런치에 쓴 “더 라스트 댄스” 다큐도 있어요”), 아버지는 한 마디 하신다: “음. 볼게 많네.”
아버지는 콘텐츠가 너무 많아서 찾는데 시간을 많이 걸릴 거라고 덧붙이신다. 나도 볼 만한 거 찾는데 30분, 고르고 골라서 10분 보고 다시 또 찾는데 30분 걸린다고 알려드린다. 그러다 보니 난 결국 예전에 봤던 걸 또 보게 되었다.
이제 내가 할 일은 끝났다. 아버지는 오늘부터 넷플릭스를 정주행 하시면 된다.
후기: 지정생존자를 새벽 1시까지 보셨다고 한다...
더 라스트 댄스 ep. 1에 대한 글:
https://brunch.co.kr/@jitae2020/47
로어 슈거 요구르트 찾은 이유 관한 글:
https://brunch.co.kr/@jitae2020/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