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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이가는 Feb 14. 2018

1. 시월드에 대한 로망

- 엄마 아빠가 또 생기면 정말 좋겠다. 

제주도에서 귤이 왔다. 예전에도 보내주신 적 있는데 이번에는 저번보다 더 업그레이드되어서 15kg 두 상자가 왔다. 감사 인사를 드리려고 남자 친구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다. 

"어머니~ 
 귤 잘 받아봤어요. 너무 감사드려요." 
 (아직 부끄러워서 '어머님'이라는 소리를 못함)


"그래~ 00랑 사이좋게 잘 지내고 맛있게 먹거라. 얼른 제주도 놀러 오고" 

"요즘 날씨 추운데 감기 조심하세요." 

전화를 끊는데 마음이 따뜻해진다. 난 어른들이 좋다. 새로운 어른을 알아가는 것은 그들이 경험했던 세계를 알아가는 것처럼 배울것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나보다 경험도 지혜도 많은 어른들과 이야기하면 시간 가는 줄을 모르겠다. 무엇보다 우린 한 사람을 지독히 사랑한다는 점에서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지 않는가. 전화를 끊고 나서, 진심으로 남자 친구의 어머니가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셨으면 좋겠다고 바랬다. 비록 우리가 피로 맺어진 관계는 아니지만 인연으로 묶여있기 때문에, 진정한 가족의 의미를 배워가고 사랑하며 그렇게 오랜 시간 함께하고 싶었다. 


한 주를 정신없이 보내고 있는데 엄마한테 사진 한 장이 도착했다. 



귤 상자에 숨어있던 쪽지


남자 친구 아버지가 귤 상자에 작은 쪽지를 넣어서 보내주셨다. 

"귤이 우리 과수원에서 재배한 것이다. 
무농약으로 재배된 것이라 귤이 예쁘진 않지만 맛있게 먹거라.
껍질을 차로 사용해도 괜찮다." 

무뚝뚝하고 사실 위주로 적힌 다소 투박한 편지지만 읽는 순간 왠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짧은 글귀에 사랑이 뚝뚝 묻어 나오니까. 사랑받고 있으니까. 
신경 써서 귤을 보내주신 것도 너무 감사한데, 여기에 이런 쪽지까지 챙겨주셨으니! 

종이를 꺼내 한 글자 한 글자 꾹꾹 눌러쓰셨을 아버지의 모습이 눈에 선해 마음이 훈훈해진다. 

혹자는 바보 같고 아직 세상 물정을 모르는 말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시부모님에 대한 로망이 있다. 새로운 누군가를 조건 없이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또 그렇게 사랑받게 되는 것. 차가운 사회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따뜻한 관계이지 않겠는가. 새로운 엄마 아빠가 생긴다는 것은 물론 기념일도 두 배로, 그에 따른 지출도 두 배가 된다는 뜻이지만 또 다른 말로 하면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도 두 배가 된다는 말인걸! 

안정적인 노후가 보장되어 있지 않으셔도 좋다. 뛰어난 학벌이 아니어도 무관하다.  인간에 대해 순수하게 사랑하는 마음과 또 나를 가족의 일원으로 받아들일 마음만 있다면. 난 그런 시부모님을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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