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이가는 Feb 14. 2018

2. 내가 눈물을 보일 수 있는 사람

-너를 선택한 이유


엄마가 암 수술을 받았을 때, 언니는 엄마와 함께 병원에 가있었던 관계로 집안일을 도맡아 해야 했다. 동생은 아직 중학생이었고, 아빠는 출근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아침 일찍 일어나 국을 끓이고 잠든 동생을 깨워 셋 밖에 안 남은 온 가족을 식탁에 앉히곤 했다. 과도하게 밝은 목소리로 아빠에게 시시껄렁한 농담을 하며 경쾌하고 유쾌한 척을 했다. 식사가 끝나면 정신없이 설거지를 하고 나도 등교를 했다. 내가 정말 아무렇지 않은 줄 알았다. 집안일과 공부에 나를 소진시키는 것이 나의 슬픔의 표현이었다. 

첫 직장생활을 시작했을 때, 성공적인 직장생활을 위해서는 나의 감정을 잘 포장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늘 밝은 얼굴로 "감사합니다."를 연발한 날이면 집에 돌아오는 길이 그렇게 춥고 외로웠다. 냉기가 도는 아파트 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이 두려웠다. 새로 시작한 대학원은 지식을 배우는 곳이 아니라 나의 무지를 학습하는 장소였다. 읽어도 읽어도 끝이 없는 논문과 직장의 일거리에 치여 오늘도 내 할당 공부량을 채우지 못했다는 자괴감은 끝이 없었다. 그렇게 학기를 보내던 중, 남자 친구와 나의 하루를 이야기하다가 눈물이 터졌다. 좀처럼 남 앞에서 힘든 내색이나 울지 않는데 그날따라 왜 그렇게 눈물이 났는지 모르겠다. 

눈물에는 큰 힘이 있어 한바탕 울고 나면 감정이 정화되고 차분해진다. 비워낸 눈물샘이 후련하고 상처에 새 살이 올라오는 것처럼 회복이 된다. 눈물의 순기능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난 좀처럼 남들 앞에서는 눈물을 흘리지 못한다. 강해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일까, 아니면 알량한 자존심 때문일까. 단정 지어 말할 순 없지만 아무래도 눈물을 보인다는 것은 나의 연약함을 인정한다는 뜻이라고 생각하나 보다. 그래서 다른 사람 앞에서 늘 행복하고 씩씩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는 나는 쉽게 눈물을 흘리지 못하는 걸까. 

 그런 내가 남자 친구 앞에서 내가 눈물을 흘린 건 참 이례적인 일이었다. 
참 신기한 사랑이다. 이전에 남자친구들을 사귈때에도 그들 앞에서도 눈물을 흘린 적은 없었다. 건강한 연인은 독립된 정서를 가져야 한다며, 늘 선을 긋고 내 감정 안으로 초대하지 않았다. 기쁨은 공유할 수 있지만 슬픔은 나의 몫이라며 철저히 그와 나를 분리했었다. 똑부러지게 나와 그를 구분해서일까, 우리는 결코 섞이지 않았다. 가족앞에서도 남자친구 앞에서도 힘든 내색 하지 않는 나인데, 무슨 연고가 있어 이 사람에게는 나의 연약한 모습을 이토록 무방비하게 보여주는 것일까. 우리는 어쩌다 이렇게 깊은 인연의 바다에 빠져버린 걸까. 

남자 친구는 나를 호전적이라고 놀리지만 사실 그는 누구보다 연약하고 깨지기 쉬운 나의 모습을 알고 있다. 씩씩한 척, 아무렇지 않은 척 하지만 내면에 있는 서늘한 그늘도 그는 다 알고 있다. 그래서 우리의 장난 섞인 싸움에서 또 크고 작은 의견 충돌에서 슬그머니 양보하고 져주는 거겠지. 

나의 모난 모습에도 놀라지 않는 사람. 
나의 연약한 모습에도 떠나지 않고 든든하게 지켜주는 사람. 

우리 엄마 아빠 앞에서 누구보다 나를 사랑한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사람. 무엇보다 본인 출장 준비로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선뜻 내 발표자료 데이터 정리를 도와주는 남자 친구 ㅋㅋㅋㅋ 나를 풀어야 할 숙제라고 생각하지 않고, 탐구해야 할 미스터리라고 생각해주는 남자 친구가 참 든든하고 고맙다.

이런 사람이라면 나의 가족으로 초대해도 무관하지 않을까. 
가족에게도 보여주지 못하는 나의 바닥을 보여줘도 안전하지 않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1. 시월드에 대한 로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