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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이가는 Jul 12. 2019

편지를 주고받는 즐거움

나이 서른이 넘어 펜팔을 하는 어른들의 은밀한 사생활 


나는 연락을 주고받는 것을 잘 못해 친구들에게 늘 꾸지람을 듣는 성격이다. 나는 나름대로 노력을 한다고 하는데 어쩌면 일반인들에 비해서 연락을 잘 못하나 보다. 그래서 오랫동안 관계를 유지하는 친구들은 다 나처럼 무소식이 희소식이겠거니 하는 친구들이거나 아니면 나를 잘 채찍질해줘서 내가 연락을 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친구들이다. 


독일에 오면서 사람들을 다 못 만나고 오게 되었다. 일주일에 두세 사람 이상을 만나면 체하는 것처럼 버거워하는 집순이 성향 때문인 지는 몰라도 짐 싸랴, 서류 정리하랴, 사람 만나랴, 그 모든 것이 나에게는 버겁게만 느껴졌다. 그리고 독일에 와서 다 못 만나고 온 사람들을 그리워하면서 혼자 마음 앓이만 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좋아하는 대학원 동기 언니에게서 장문의 이메일이 왔다. 


"장지선 선생님, 

000 연구소 xxx입니다. " 


우리가 대학원 시절 자료를 주고받으며 가끔 이메일을 했던 굉장히 공적인 말투로 나에게 메일을 보내왔다. 사실 첫 문장은 그렇게 시작했지만 그 후의 내용은 어떻게 사는지, 진로 이야기, 등등의 안부가 주요 내용이었다. 나 또한 반가운 마음에 언니에게 장문의 답장을 보냈다. 남편이랑 싸운 이야기, 내가 요즘 하고 있는 고민들, 해외생활의 어려운 점등을 언니와 이야기하듯 의식의 흐름대로 써 내려갔다. 


그렇게 우리 둘의 펜팔은 시작되었다. 언니는 초등학생 때도 실패했던 펜팔을 너와 하고 있다니 너무 웃기다고 키득되었고, 나 또한 어른이 되어하는 펜팔이 아무도 하지 않는 뭔가 은밀하고 조심스러운 취미같이 느껴졌다. 어쩌면 남들이 하지 않는 것을 할 때 느껴지는 다소 변태적인 희열이랄까? 


하지만 그뿐 아니라 펜팔이 주는 이득은 다양하다. 카톡으로 짧게 오고 가는 안부 속에서 느낄 수 없는 나와 우리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풀어낼 수 있다는 것이 참 좋다. 카톡으로 "잘 지내?"라는 안부는 아무리 진심으로 상대방이 물었더라도 어떻게 잘 지내는지, 혹은 어떻게 잘 못지 내는지에 대해서 길게 이야기하기가 참으로 난감하다. 괜히 긴 답장으로 인해 이 사람을 부담스럽게 하는 것은 아닌지 괜스레 미안함 마음이 들곤 한다. 또 카톡에 있는 읽음 확인 기능도 마찬가지다. 내가 읽음과 동시에 상대도 그 상태를 안다는 생각에 빨리 답장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들곤 한다. 그래서 내가 어떻게 지내는지 안부에 집중하기보다, '빨리'답장해야 한다는 그 시간에 부담을 느끼곤 한다. 하지만 길게 이메일을 주고받는 것은 그렇지 않다. 한 메일을 받고 그것에 대해서 충분히 소화하고 답장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주어진다. 그리고 메일에 진하게 느껴지는 서로의 정다운 뉘앙스와 목소리는 덤으로 느낄 수 있다. 독일에서 있으며 떨어져 있는 지인들과 가깝게 지낼 수 있어 좋고, 길게 답장할 수 있어 좋고, 답장할 시간과 내용에 부담을 느끼지 않아 좋고, 무엇보다 그 사람의 목소리를 길게 느낄 수 있어 좋으니 이 정도면 펜팔 예찬자다. 


얼마 전 친구에게서 카톡이 왔다. 보고 싶어서 연락했다고 잘 지내냐며- 나도 그 친구도 서로를 잘 알지만 우리는 평소 카톡과 그렇게 친한 사이는 아니다. 그래서 그 친구에게 은밀한 제안을 했다. 


"우리 펜팔 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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