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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궁 준 Mar 02. 2022

비틀즈, 홍콩 록큰롤의 서막을 열다!

1960년대, 문화대혁명의 여파와 함께 홍콩에 등장한 서구 음악의 열풍

비틀즈는 1970년에 공식 해체했다. 비틀즈가 1970년에 해체했다는 말을 들으면 사람들은 어리둥절해 하는 경우가 많다. 비틀즈의 명곡들은 5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세대를 막론하고 애송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한창 라이브 공연하고 전세계를 투어하며 활동할 때에는 어느 정도였겠는가? 엘비스 프레슬리의 바통을 이어받은 비틀즈는 60년대 전세계 여인의 마음 뿐 아니라 세계 각 지역의 음악 씬을 뒤흔들었고, 본격적인 로큰롤의 시대를 개막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비틀즈의 물결은 홍콩에도 거세게 들이닥쳤다. 많은 밴드들은 비틀즈를 카피하고 서구 로큰롤 풍의 노래를 지어 부르기 시작했다. 음악은 항상 사회의 급격한 변화와 함께 발전하는데, 특히 홍콩은 역사적, 지리적 특수성에 따른 거대한 변혁의 과정 속에서 특유의 음악 문화를 창조하게 된다. 홍콩은 1949년 국민당의 패망 이후로 많은 중국 본토인이 피난하였던 곳이다.


그래서 향후 약 20년간 홍콩인은 토착인과 이주민으로 구분되는어중간한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그래도 중화인민공화국의 건국 이후에도 영국의 조차지로 남았기 때문에, 대륙의 혼란과는 무관하게 사회 질서는 엄격히 유지되었고 해양 중개 무역의 이점을 살려 경제적으로도 풍요로웠다.


그러나 1967년, 홍콩 사회는 거대한 혼란에 직면하게 된다. 부동산 가격은 3분의 1로 하락하고, 외국인들은 급격히 홍콩을 떠나기 시작했다. 이민자의 처지에서 홍콩 주민으로 정착해 있었던 사람들의 마음도 정처없이 들뜨기 시작한다. 이는 중국에서 한창 문화대혁명의 진통을 겪을 때와 비슷한 시기로, 이때 많은 공산 세력들이 홍콩에도 침투했던 것으로 보인다. 안보와 경제 측면에서 사회를 안정시키기 위해 영국 당국도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이 위기를 홍콩 시민들은 슬기롭게 극복했다. 그리고 그 후 홍콩이 탄탄대로를 걸으며 발전하게 되는 마지막 진통이었다. 이민자 출신, 토착민 출신 가릴 것 없이, 홍콩을 우리가 잘 발전시키자는 공감대가 형성되었고, 출산율은 가구당 2.5명으로 상승하였으며 국내외의 경제 상황도 점차 안정되었다. 물론 이 시기를 거치면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단단한 안전 장치를 확보하게 되었던 것이 사회 안정의 기반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70년대부터 공산 중국과의 문화 교류는 지속하였던 점이 특이하다. 그만큼 홍콩은 개방적이었던 것이다. 물론 공산당과 정부 차원에서 교류하였다는 것은 결코 아니며, 홍콩의 음악, 영화에 공산 중국의 가수, 배우들도 참여할 수 있었다는 민간 차원의 교류이다. 하얼빈 출신의 왕페이가 홍콩으로 건너가 가수의 꿈을 실현하게 된 것도, 홍콩이 반환되기 이전의 사건이다.


이처럼 1965년 비틀즈의 홍콩 공연 이후, 홍콩인들은 비틀즈를 애창하며 자신만의 독특한 서구풍의 음악을 만들어 나가기 시작했고, 단결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자신감있게 구현되었다. 이는 1970년대에 허관걸이라는 걸출한 뮤지션의 배출로 이어진다. 허관걸은 대학교를 졸업한 유학파로서, 인텔리이면서도 다재다능한 예능인이라는 점에서 데뷔부터 주목을 받았다.


뛰어난 라이브 실력과 무대 매너로 관객을 사로 잡았는데 이는 단순히 그의 퍼포먼스에 그치지 않는다. 홍콩 당대 최고의 작곡가들이 작곡한 노래는 지금 들어도 전혀 손색이 없다. 1977년에 허관걸이 제2회 금곡상을 수상했던 <<인신 계약>>의 톡톡 튀는 편곡과 리드미컬한 연주는 수준급이다. 그리고 홍콩 특유의 유머와 재치가 담긴 가사도 훌륭하다.


비틀즈, 사회 안정, 경제적 성장에 이어, 홍콩에 실력있는 로컬 뮤지션과 작곡가, 에이전시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1952년에 이미 홍콩에 깃발을 꽂은 EMI를 위시하여, 서구의 음반 회사들도 홍콩에 진출하기 시작한다. 홍콩의 엔터테인먼트 시장 자체가 커지기 시작한 것이다. 아시아 4마리의   하나로 등극하게 되는 홍콩의 음악 산업은 봇물이 터진  성장하고 아시아의 음악 씬을 주도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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