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방초원의 길 여행 1일차
2023/7/14/08:25 ~7/23 (9일)
하얼빈~치치하얼
- 기준항공편
출국 제주 7C8905 7.14 08:45~10:20 (-1시간)
귀국 제주 7C8906 7.23 11:25~14:50
여덟 명의 일행이 인천공항에서 제주항공을 타고 하얼빈을 향해 이륙한다. 얼마나 준비가 없었으면 돌아오는 날짜까지 기록한 게 하나도 없다. 밤새 중국큐알 작성하다 안되어 포기하고 짐 쌌다. 젠장. 머리가 하얗게 되고 중국에서 사용할 카드도 등록이 안되었고 VPN도 안된다. 이렇게 힘드니 누가 여행을 가겠냐고.. 비자받을 때부터 문제였다. 열 손가락 지문을 다 찍어야하고 이마 까고 귀가 보이는 사진이라야 해서 그런 사진 찾기도 힘들었다. 겨우 비자 3주에 걸려 받고 떠나려니 중국 큐알이 걸린다. 끝내 못 해서 왕초가 해서 보내줬다.
웨이신즈푸(위챗페이)에 신용카드 연결 아직 안 됐고, 로밍에 VPN도 준비 안됐고, 중국지도만 깔았다. 건강상태 온라인신고서 작성은 왕초가 마쳤다. 내가 한 건 뭐가 틀렸는지 내내 안되더니 위챗도 오늘 아침에는 되던데 돈 보내는건 안된다. 중국에서 쓸 판다 vpn이 그래서 안되고 있다. 어쩔~
*하얼빈에서 치치하얼로 2시간 달린다. 북대창(北大倉)이라는 바이주부터 소개한다. 원래 이름은 北大荒이었다가 북대창으로 바꿨다. 치치하얼로 가는 고속도로변은 방풍림인데 그 너머는 옥수수밭이다. 거대한 광야를 옥수수밭으로 바꾼 마오쩌뚱. 인민이 굶어죽지 않아야 하니까 짧은 시간 경작하게 만들고 식량창고로 만들었다.
당시 민주공화국이었던 장개석은 자기 아들을 일선에서 빼냈지만 모택동 아들은 이곳에 와서 일했었다. 지도자의 자세에서 그 차이가 느껴진다. 러시아에서 전쟁에 지고 난 뒤 차관 갚으라니까 힌꺼번에 갚느라고 돈 다쓰고 인민이 굶어죽지 않게 하려고 만주 황무지를 일구고 옥수수 심어서 식량을 해결했다. 오래 갚고 갚아서 결국 20세기 후반에 와서야 식량이 해결되었다 한다. 우리는 이런 중국 근현대사를 공부하면서 언덕없는 초지를 내일까지 달려갈 예정이다.
* 허형식은 동북항일연합군에 가입한다. 경신참변으로 독립군 싹쓸이하고 난 다음 중국공산당에 가입했고 1942년 총맞아 죽었다. 일제가 그를 얼마나 무서워했는지 그 지역에 가보고서야 짐작된다. 하얼빈을 백마 타고 다닌 이가 허형식이다.
* 유치환의 시 <수(首)>는 허형식처럼 누군가 머리 잘려서 경찰서 앞에 장대처럼 꽂혀 있는 걸 보고 이를 풍자한 시이다. 준엄한 독립지사들의 비판을 담고 있는 친일시로 낙인찍힌다. 장대에 매달려 비적처럼 말라가는 독립자사의 머리를 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반성하고 있다. 그런 일을 자행한 일제를 척결해야할 존재로 보고 있지 않다.
* 북방초원 답사여행은 알선동, 후룬베이얼 초원, 탁발선비 천년역사, 칭기즈칸의 할아버지, 자작나무 바다, 대흥안령의 삼림, 비(非)한족 어원커와 어룬춘(오로첸), 순록, <어얼구나 강의 오른쪽> 등이 키워드이다. 제대로 공부한 게 하나도 없다.
* 북으로 가는 길에 외과의사 김필순(김규식과 5촌간)과 중국 최대의 배우 김염, 허형식과 유치환의 <首> 이야기는 처음 듣는 충격적인 일이다. 그래서 40년대 <생명의 서> 같은 시들을 썼구나 싶다. 지금은 이영도와의 프라토닉 러브로 유명한 한량처럼 보이는데 그게 다가 아니었구나. 이 무지함이라니.. <수>보다 만주 지역에서 생활하면서 썼을 시,<광야에 와서>가 생명의 시처럼 느껴진다. 젊은 날 만주의 유치환은 이런 면모를 보인다.
*롱사파크에서 천원각에 올랐다가 내려와서 수산장군 동상 보고 간다. 청로전쟁에 공을 세운 치치하얼 인물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수(首)>
십이월의 북만(北萬) 눈도 안 오고
오직 만물을 가각(苛刻)하는 흑룡강(黑龍江) 말라빠진 바람에 헐벗은
이 적은 가성(街城) 네거리에
비적(匪賊)의 머리 두 개 높이 내걸려 있나니
그 검푸른 얼굴은 말라 소년(少年)같이 작고
반쯤 뜬 눈은
먼 한천(寒天)에 모호(模糊)히 잠들은 삭북(朔北)의 산하(山河)를 바라고 있도다
너희 죽어 율(律)의 처단(處斷)의 어떠함을 알았느뇨
이는 사악(四惡)이 아니라
질서(秩序)를 보전(保全)하려면 인명(人命)도 계구(鷄狗)와 같을 수 있도다
혹은 너의 삶은 즉시
나의 죽음의 위협을 의미(意味)함이었으리니
힘으로써 힘을 제(除)함은 또한
먼 원시(原始)에서 이어온 피의 법도(法度)로다
내 이 각박한 거리를 가며
다시금 생명(生命)의 험렬(險烈)함과 그 결의(決意)를 깨닫노니
끝내 다스릴 수 없던 무뢰(無賴)한 넋이여 명목(瞑目)하라!
아아 이 불모(不毛)한 사변(思辨)의 풍경(風景) 위에
하늘이여 은혜(恩惠)하여 눈이라도 함빡 내리고지고
<광야에 와서>
흥안령(興安領) 가까운 북변(北邊)의
이 광막(廣漠)한 벌판 끝에 와서
죽어도 뉘우치지 않으려는 마음 위에
오늘은 이레째 암수(暗愁)의 비 내리고
내 망나니의 본받아
화톳장을 뒤지고
담배를 눌러 꺼도
마음은 속으로 끝없이 울리노니
아아 이는 다시 나를 과실(過失)함이러뇨
이미 온갖 것을 저버리고
사람도 나도 접어 주지 않으려는 이 자학(自虐)의 길에
내 열 번 패망(敗亡)의 인생을 버려도 좋으련만
아아 이 회오(悔悟)의 앓음을 어디메 호읍(號泣)할 곳 없어
말없이 자리를 일어나와 문을 열고 서면
나의 탈주(脫走)할 사념(思念)의 하늘도 보이지 않고
정거장(停車場)도 이백 리(二白里) 밖
암담한 진창에 갇힌 철벽(鐵壁) 같은 절망(絶望)의 광야(曠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