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속 소설이 머 어때서?!
~김말봉의 작품세계
<통속 소설이 머 어때서?!>
지난 토요일 모처럼 대학로에서 연극을 관람했다. 몇 년 만에 이런 문화행사를 맛보게 되는지.. 일부러 표를 구해서라도 봐야 할 연극이 많은데.. 친구가 벌써 도착해서 표까지 끊어다 놓았다.
난 김말봉을 이름만 들었지 그녀를 잘 알지도 못해서 월북작가인 줄 알았다. 심지어 남자인 줄 알았다.. 국문학 전공이라면서 이런 허약한 문학사의 이해라니.. 근데 김말봉을 K-막장드라마의 시초라 할 수 있다니.. 그건 너무 나갔나 싶은데 그녀는 요즘의 임성한 같은 30년대의 대중통속소설 작가였다.
연극은 코믹과 순정과 통속을 너무나 잘 버무린 재미있는 120분이었다. 그녀의 일대기를 그린 연극인데 이 연극에 도입된 갖가지 영상기술에도 호감이 간다. 오랫만에 연극을 봐서 그런가 엄청 달라진 분위기를 느꼈다. 30년대의 변사가 등장해서 만담같은 시작으로 극을 열어가는데 그보다 먼저 들어와서 대중문학을 연주하는 악단이 있었다.
음악그룹 더튠의 명랑발랄한 대중음악 연주부터 시작해서 연극 내내 막이 쳐진 뒤에서 갑자기 등장하거나 배경음악을 연주한다. 단막극 세 편이 공연되었는데 김말봉의 대표작이랄 수 있는 <찔레꽃>에 공을 들인 흔적이 역력하다. 신기한 것은 막장드라마가 흔히 그렇듯이 갑자기 첩의 집에 아내가 나타나자 그곳에 있었던 남편이 도망가서 골방에 숨어서 그들의 대화를 엿듣는 장면이 있었는데, 이때는 좁은 공간에서 얼굴이 구겨지고 답답한 모습으로 대화에 참여하는 늙은 남주를 막 위에 영상으로 띄워서 표현해내는 신기술을 보여주었다.
작가 김말봉도 그 때의 복장으로 간간이 나타나는데 그녀 역시 영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런 멋진 연출이 호감가게 한다. 게다가 배우들의 커다란 발성과 말을 타는데 말 인형만 들고서도 그렇게 재미나게 타는 걸 보니 즐겁다. 가정교사로 들어간 여자가 겪게 되는 부잣집 망나니같은 주인과 의심병 환자인 그의 아내, 외국 유학을 하고 돌아온 노처녀(25세라고 하니까 관중석에서 동시에 탄성이 들렸다. 25세가 노처녀?? 불과 25세를 넘기면 노처녀라는 이야기를 들은 게 20년 밖에 안 되었는데 먼 옛날 같다.) 그리고 이상과 현실이 맞지 않은 브나로드운동을 열심히 복기하는 유학생 장남까지 여기에 이상적인 남성상은 안 보인다.
가정교사의 정혼자였던 가난한 남자는 부잣집 딸이 승마하다가 떨어지는 걸 구해내는 승마우수자.. 이때 관객석에서 갑자기? 하는 말이 들렸고 이를 반영하듯 변사의 해설이 이어진다. 어떻게 가난한 남자가 말을 그리 잘 타지? 김말봉은 그 남자가 제주 출신이라는 세세한 이력까지 써넣는 치밀함을 보였다..에서 관객과 배우들 모두 빵 터졌다. 이렇게 우연인 듯 관객과 주고받는 연극도 모처럼 활기있었다. 마지막 장면에서 김말봉이 작사했다고 하는 금수현의 <그네>를 부를 때면 합창을 했다. 관객과 배우가 보고 보이는 관계가 아니라 함께 참여하는 관계로 상호작용을 보여주어 더 뜻깊은 연극이 되었다.
순수마귀라고까지 순수문학만 고집하는 순혈주의를 그때에도 비난했었고 너무 뻔한 결말을 가진 막장 드라마면 어떻냐 그걸로 민중이 위로를 받으면 되는 거 아니냐? 라는 입장의 김말봉의 소설들은 당시 인기 신문소설이었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일본어로만 소설을 쓰라는 일제의 주문에 30년대 이후 한동안 붓을 꺾고 글을 쓰지 않기도 했던 분이다. ‘목포의 눈물’을 쓴 분이라는 것도, 금수현의 장모라는 것, 이후 여성 공창제도를 없애는데 앞장 선 인물이라는 사회공헌도 매우 높았던 인물이었다. 왜 그녀는 국문학사에서 거의 다루지 않는 인물이 되었는지 의아하다. 순수냐 참여냐의 논쟁부터 이후 죽 이어온 이념의 논쟁에 통속까지 합세할 힘을 잃은 것은 아닌가 싶은데.. 우리 문학사에서 이름만 거론되기에는 거목이라는 생각이 들게 한 연극이었다.
120분을 꽉 채워서 세 개의 단편을 극으로 소화해 낸 연극은 칭찬할만 하다. 만요라고 할 수 있는 만담같은 코믹송이나 동요, 당시의 민중가요 등이 불려져서 재미있었다. 양념처럼 두 변사가 극을 설명 해주는 방식을 택한 것도 탁월했다. 시대 배경이나 각자의 역할, 풍속같은 것들을 아우르는 멋진 공연이었다.
금수현이 그녀의 사위라는 것도 연극 보고 알게 된 일이다. 우리는 긴 연극을 재미나게 보고 <그네>를 청중과 연극배우가 같이 노래하면서 끝냈다. ‘세모시 옥색치마 금박물린 저 댕기가 / 창공을 차고 나가 구름 속에 나부낀다 / 제비도 놀란 양 나래 쉬고 보더라..’ 요즘 친구들은 잘 모르던데 난 크게 같이 불렀다.. ‘통속소설이 뭐 어때서’.. 순수마귀, 순혈주의에 대한 반격이다. 요즘은 이런 입장도 많이 이해된다. 나이가 들어서 좋은 점은 이런 양쪽을 다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이다.
#2023년_예술창작활동지원사업_선정작_통속_소설이_머_어때서?!_한성아트홀_7월 9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