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 중에 받은 처방 하나. 과연 효과가 있을까?
누구에게나 한 번쯤 찾아온다는 불안, 그리고 그 끝에서 터져 나온 공황발작.
의사는 내 상태를 '가벼운 우울증'이라 정리했다.
"다음 주에 있는 전시회 오픈 세미나를 준비하고 있었는데요, 갑자기 가슴이 막 두근거리면서 천장이 내려앉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그냥 막 속이 울렁거리고, 머리에서 식은땀이 났어요. 토할 것 같기도 했고, 눈앞이 막 멀어졌다가, 가까워졌다가 막..."
나는 내가 겪은 현상을 최대한 설명하려 애썼다.
말로 하기에는 참으로 어려운 현상이었다.
발표 스트레스에 의한 현상인 걸까.
아니면 리허설 때마다 나를 말로 후드려 패는 대표에 대한 스트레스였을까.
확실한 것은, 내가 '죽음'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경험했다는 것이었다. 그 자리에 계속 있었더라면 난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내가 나약하기 때문에 발생한 현상이 아닐까?
다른 직원들도 똑같이 준비하는데, 왜 나만?
내가 정신적으로 나약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과 고민 끝에, 역시 내가 '문제'라는 결론이 나왔다.
"그렇지 않아요. 다들 정신적인 문제라고만 생각하는데, 실제로는 신체 반응이에요. 여기 보시면 지은채의 교감신경 테스트에서도 기능이 많이 떨어져 있어요."
테스트라는 결과를 보자 머릿속에 머리와 손, 가슴에 장비를 붙이고 10분 동안 가만히 누워있던 것이 떠올랐다. 두 평 남짓한 작은 검사실이라 답답함을 느낀 것이 그대로 그래프에 나온 것이라 생각했다.
"교감 신경은 스트레스와 같은 이상 현상에서 반응을 하고요, 부교감은 신체의 휴식을 담당하고 있어요. 지은채님의 교감 신경이 평균보다 과하게 반응하고 있다는 결과가 나왔어요."
나는 무어라 캐묻지 않았다. 그저 '아하.'하고 고개만 끄덕일 뿐 더는 말을 잇지 않았다. 의사의 얼굴은 꽤 심각해 보였지만, 정작 환자인 나는 그다지 놀라워하지 않았다. 스트레스가 원인이라는 것은 병원을 오지 않고서라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상담 시간은 1시간. 심리 상담 문진 7만 원. 교감 신경 테스트 8만 원.
머릿속에 내가 지불해야 하는 금액이 스치고 지나갔다. 들인 비용을 생각하면 의사에게 무어라 집요하게 묻고, 해답을 얻고 싶었었으나, 입술은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애초에 상담이라는 것을 처음 해본 나로서는 더 무엇을 말하고 설명해야 하는지 몰랐다.
"지은채님의 어릴 때는 어땠어요?"
의사는 갑자기 내 어린 시절을 물어왔다. 그의 말에 엉켜있던 머릿속이 팍 하고 전원이 꺼진 듯 멍해졌다.
어린 시절이라. 어떤 어린 시절? 어느 정도의? 초등학교 때?
"전부 다요. 특별히 기억에 남는 사건이 있었나요?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다 좋아요."
뜻밖의 물음에 나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랐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사건?
머릿속에 한 사건이 떠올랐다. 아주 오래전이라 사실 기억도 잘 나지 않을 법한 작은 사건이었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요, 어머니가 암으로 돌아가셨어요. 그때, 학교에서 전체 방송을 했었대요. 4학년 1반 지은채의 어머니가 지병으로 별세하셨으니, 다 같이 묵념. 뭐 이렇게요."
갑자기 왜 이런 말이 튀어나왔는지 몰랐다. 그냥 특별한 사건이라고 하니까, 튀어나온 말이었다.
엄마의 장례식을 치르고 난 후 돌아온 학교생활은 이전과 아주 다른 생활로 변해있었다.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은 나에게 걱정의 눈빛을 보내왔고, 친하지 않던 친구들은 '동정'의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처음에는 알지 못했다.
모두가 내가 엄마가 '없다'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을.
나를 모르는 1학년 신입생들도, 6학년 언니, 오빠들도.
모두가 4학년 1반 지은채라는 아이는 엄마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그때 충격을 받았던가. 울었던가. 그 이후의 기억이 제대로 나지 않았다.
신기하게도 그 말을 시작으로 내 어린 시절의 장면들이 정신없이 튀어나왔다.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로, 다시 유치원으로.
시간의 순서는 엉망이었지만, 내 기억은 둑이라도 터진 듯 마구 쏟아져 나왔다.
"아주 잘 버티셨어요. 지금도 아주 잘하신 거예요. 참지 않고 병원에 오기. 그게 제일 어렵거든요."
마지막 내 이야기를 들은 의사의 얼굴에서 빙긋하고 미소가 어렸다. 그 미소에 나도 모르게 따라 웃고 말았다.
"지은채는 화가 나거나, 부정적인 생각이 들면 주로 어떤 행동을 하세요?"
나는 '잘 모르겠다'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잠깐의 침묵 후에 나는 '혼잣말을 중얼거린다'라고 대답했다.
실제로 나는 부정적인 상황을 맞닥뜨리면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는 소심한 성격이었다. 이윽고 시간이 흘러, 머릿속에 다시 그 사건이 복기되고, 그제야 그 사건에 대해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을 혼자 중얼거리는 편이었다.
"어릴 때부터 어렵게 살아온 아이들은 대체로 커서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을 모르는 어른으로 자라는 경우가 많아요. 감정을 표현하고 싶지만, 누구 하나 받아줄 사람이 없었으니까. 그걸 가르쳐줄 사람도 없어서, 그렇게 그대로 성인이 되는 거예요."
나를 바라보는 의사의 눈빛이 초반보다 훨씬 더 부드러워졌다.
나의 과거를 공유해서일까, 아니면 나에 대해 조금은 알았다는 안도감 때문일까.
확실한 것은 의사를 바라보는 내 눈빛도 조금은 달라졌다는 것이다.
"글 쓰는 걸 좋아한다고 하셨잖아요. 그럼 지은채님이 겪은 일과 감정들을 글로 써보는 건 어때요?"
뜻밖의 말에 나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글이라니. 내가 그런 글을 쓸 수 있을 리가.
내가 끄적거리면서 쓴 것은 그저 시시콜콜한 머릿속에 있던 상상일 뿐이었다.
"스스로의 삶을 정리해 보는 거예요."
"좋은 이야기가 별로 없을 텐데요."
"그것도 다 적어보세요. 그럼, 왜 기분이 나쁜지, 슬픈지, 혹은 왜 이제는 괜찮아졌는지 알지도 모르잖아요. 어쩌면 잊어버렸던 좋은 이야기들도 생각날지 모르고요."
의사의 말에 나도 입술을 꼭 깨물었다. 두려웠다. 꺼내지 않으면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 넘어갈 수 있는 기억을 굳이 다시 들춰 글로 남긴다는 건, 생각보다 가혹한 일이니까.
정리되지 않은 감정, 설명할 수 없는 불안, 그리고 말하지 못한 이야기들.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감정은 밀어 넣는다고 사라지는 게 아니에요. 차라리 꺼내서 글로 적어 보면… 그게 스스로를 돌보는 첫 단계가 될 수도 있어요."
좀 전까지 신나게 떠들어댔던 어릴 적 이야기가 회오리처럼 다가왔다.
이 모든 이야기를 글로 쓰라고?
내가 겪은 이 모든 일들을? 그러다가...
턱끝까지 차오르는 말을 차마 뱉을 수 없었다. 입 밖으로 내는 순간, 주워 담을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가슴속에 고이 넣어두었던 기억과 감정이 불쑥 솟아오를까 무서웠다.
글로 쓴다는 것은, 실로 엄청난 압박감과 부담감, 그리고 심리적 공포를 주는 일이었다.
나는 몇 번의 고민 끝에, 천천히 운을 띄웠다.
"그러다가... 진짜 싫어지면 어쩌죠?"
애써 누르고 참아왔던 것을 직면했을 때, 정말로 내가 그들을 미워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인가.
"어쩌긴요. 미워해야죠."
의사는 나의 답답하고 우문스러운 질문에 단결하게 대답했다.
"그러려고 하는 거예요. 미워하고, 사랑하려고. 분명 감정을 정리하다 보면 미워할 사람이 생기고, 또 의외로 사랑할 사람이 생길 거예요. 어쩌면 그리운 사람이 생길지도 모르고요."
병원을 나서는 동안, 의사의 말이 오래 맴돌았다.
감정은 밀어 넣는다고 사라지지 않는다는 말.
꺼내어 적어보는 것이 나를 돌보는 첫 단계라는 말.
정말, 글로 쓰기 시작하면 내 인생이 조금은 달라질까?
그렇게 해서 시작된 나의 작은 처방전,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수치스럽고, 부끄럽고, 또 슬픈 하나의 인생.
아주 늦은 것 같지만, 이제야 비로소 꺼내는 나의 이야기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