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울타리를 두드리는 불청객 하나

[2부 수관의 수줍음] episode 08

by 지은

8. 울타리를 두드리는 불청객 하나


강현을 만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문득 집 안의 풍경을 그려보았다. 문을 열면 늘 그렇듯 엄마와 언니가 텔레비전 소리에 묻혀 언성을 높이고 있겠지, 하고. 그런데 대문 앞에 다다르자 이상한 기운이 스쳤다. 창문 사이로 새어 나오는 소리가 평소와 달랐다. 익숙한 투닥거림이 아니라, 무겁게 눌린 듯한 정적과, 그 위로 올라타는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현관문을 열자, 거실 한가운데에서 언니가 두 손으로 문지방을 막고 서 있었다. 그 맞은편엔 처음 보는 중년 여자가 무언가를 잔뜩 들고 서 있었고, 엄마는 두 사람 사이에서 안절부절못하며 손끝으로 앞치마 끈을 자꾸 만지작거렸다.

“글쎄, 신 여사가 꿈을 찾아간다고 시작한 거야.”

낯선 여자가 들고 온 보따리 위로, 짙은 향수 냄새가 흘러나왔다.
“딸들이 뭘 몰라도 한참 모르네.”

“나가요.” 언니가 낮게, 그러나 단호하게 말했다.

문을 닫고 나서야 언니가 매서운 눈길로 엄마를 바라봤다.


나중에 자초지종을 듣고 보니, 그날 큰 언니가 문을 열었을 때, 못 보던 아줌마 한 명이 서 있었다고 했다. 꾸민 것 같지만 몸 전체에 흘러나오는 싼티와, 어울리지 않는 코 끝을 찌르는 향수를 한 아줌마 한 명이 손에 무언가를 잔뜩 들고 있었다. 언니는 “집 잘못 찾아오신 거 같아요.”하고 문을 닫으려고 했다. 그러자 뒤에 아줌마가 “여기 신여사네잖여.”라는 말이 들려와 언니는 당황했다고 했다. 소란스러운 소리에 밖으로 나온 엄마는 아줌마 얼굴을 보자마자 당황했다.

“어유, 이 시간에 오지 말라니까.”

“그래 그래, 신여사네 맞잖아. 딸이여? 아유, 문을 안 열어주고…”

대문을 밀고 들어오는 아줌마를 보며, 언니는 당황스러운 동공을 숨기지 못했다. 아줌마는 엄마의 손을 비집고 들어와 거실로 발을 들였다.

“이거 좀 봐. 최신형 청소기인데, 이거랑 세트로 쓰면….”

엄마는 허둥대며 나와 언니를 번갈아 보았다.

“누구야 엄마?"

“엄마 친구야. 근데 수찬이 엄마. 오늘은 집에 애들이 있으니까… 다음에 와요.”

“잘됐네. 아 그럼 딸도 이거 한 번 같이 듣자.”

그 아줌마는 억센 힘을 쏟으며, 물건을 꺼냈다.

“이거, 불법 아니에요?” 언니의 목소리가 매섭게 갈랐다.

“무슨 소리여. 그냥 우리 회사 물건이야. 신여사랑 나, 오랫동안 친구였어.”

두 사람이 실랑이를 벌이는 동안, 엄마의 손가락이 옅게 떨리고 있었다.

“어유, 엄마 친구한테 무슨 말버릇이야. 얘가 왜 이래.”


결국 몇 번의 실랑이 끝에야, 언니가 아줌마를 밖으로 밀어내고 문을 닫았다. 그때부터 나는 현관에 서서 모든 걸 바라보고 있었다. 쿵, 문이 닫히고 나서야 방 안에 숨소리가 퍼졌다. 언니가 매섭게 엄마를 바라봤다. 마치 거실의 공기 전체가 얇은 얼음판처럼 깨질 듯 팽팽했다.

“엄마, 저게 뭐야? 왜 저런 사람을 들여?”

엄마는 손끝을 만지작거리며 고개를 숙였다.
“그게… 그냥, 친구가 권해서….”
“친구? 엄마, 이건 사기지. 제발 정신 차려.”

언니가 소리를 높이자 엄마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사기라니! 나 좀 믿어봐. 이거 다 투자야, 투자!”
엄마는 급히 거실 한쪽 상자를 열었다. 안에는 은박 포장지에 싸인 화장품과 건강식품이 빼곡했다.
“이거 잘 팔리면 나도 팀장이 될 수 있어. 나, 늙어서도 뭔가 해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

언니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팀장? 엄마, 이건 사람들이랑 물건을 사게 만들고, 또 다른 사람 끌어들이는 거잖아요.”
“네가 뭘 안다고 그래!” 엄마의 목소리가 떨리면서도 날카로워졌다.

나는 그제야, 엄마의 눈빛에 섞인 초조와 자존심을 읽었다. 그건 단순한 허영이 아니라, 오랫동안 무력하게 살았던 사람이 마지막으로 붙잡은 희미한 희망이었다. 하지만 그 희망이 얼마나 위험한 지도 동시에 느껴졌다.

언니도 지지 않고 소리를 질렀다.

“그럼 제대로 된 다른 일을 하든가!”

“내가 가정주부로만 스물다섯 해를 살았는데, 나를 불러주는 데가 어디 있다고… 저기밖에 없었어. 저기밖에…”

거실엔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엄마는 상자 덮개를 덜컥 닫으며 “너희가 뭘 아냐”라고 중얼거렸다. 언니는 숨을 깊게 내쉬며 엄마와 나 사이를 바라보다,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나는 방 문에 기대 서서, 우리 셋이 같은 집 안에 있으면서도 서로 다른 울타리 속에 서 있다는 걸 깨달았다. 엄마는 다단계라는 울타리에 갇혀 있었고, 언니는 그 울타리를 부수려 애쓰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경계 밖에서 막 모든 것을 알아버린 사람처럼, 그 장면을 숨죽여 지켜보고 있었다.




· 이 이야기는 현대 가족의 서사를 담은 허구의 소설로, 모든 인물과 사건은 작가의 상상에서 비롯되었습니다.

· 본 작품은 1부 〈한강에는 금붕어가 산다〉, 2부 〈수관의 수줍음〉, 3부 〈해묘 군락〉으로 이어지는 연작 소설입니다.


토,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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