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수관의 편지

[2부 수관의 수줍음] episode 07

by 지은

7. 수관의 편지


갑자기, 마음이 무거웠다. 흔히들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라’고 하길래, 마음이 무슨 말을 하는지 들어보고 싶어 져서 가만히 귀를 기울여보았다. 그러나 이상할 정도로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그저 바람에 창틀이 흔들리는 소리, 시계 초침이 흐르는 소리만이 방 안을 희미하게 메우고 있었다. 순간, 내가 삶을 잘 살지 못해서 그런 걸까 싶었다가, 그냥 내 마음은 지금 할 말이 별로 없는 거겠지 하며 생각을 고쳐먹었다.

그러나 그런 다짐에도 마음은 쉽사리 개운해지지 않았다. 나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을 때까지, 이 무거운 마음을 품은 채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그리고 나 혼자서는 도무지 그 답을 찾을 수 없다는 사실도 함께 깨닫게 되었다. 그러나 내 곁에는 함께 의견을 나눌 만한 학회도, 강현도 없었다. 아. 어딘가에 소속하지 않는다는 건, 더 이상 같은 주제로 대화할 일이 없어지는 일이었다.


나는 참을 수 없어 또다시 울타리를 나섰다. 무거운 대문을 열고, 큰언니의 호기심 어린 눈을 피해, 가까운 숲으로 향했다. 강현이 늘 내게 알려주던 것처럼, 숲으로 가면 내 삶에 적용할 새로운 문장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도착한 숲은 생각보다 깊고 빽빽했다. 그러나 강현이 알려준 수관의 수줍음은 자연 속에서도 잘 보이지 않았다. 나무와 나무가 어깨를 맞댄 채 서로의 그림자를 뒤엉키게 하고, 가지와 잎이 촘촘히 교차해 하늘 한 조각조차 보이지 않았다. 바람이 나무 사이를 스치는 소리가 났다. 공기는 눅눅하게 고여 있었고, 햇빛 대신 푸른 어둠이 숲길을 덮고 있었다. 울타리를 벗어나서도, 답을 찾을 수 없다는 사실이 나를 괴롭게 했다. 그 숲을 한 걸음씩 내디딜 때마다, 이 숲의 그림자가 내 마음속으로 흡수되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더더욱 답답해진 나는 숲에서 나오는 길에 작은 숲 도서관에 들렀다. 나는 그 도서관에 들러, 도서 검색대에 나무를, 그다음에는 숲을 검색해 넣었다. 마지막으로 수관을 검색했을 때, '수관의 편지'라는 책 한 권이 검색 목록에 올랐다. 무언가 익숙한 제목에 기억을 더듬거리다가, 언젠가 강현이 학회 시간에 짤막하게 보여줬던 숲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상의 출처가 이 책이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나는 그 책의 위치를 출력하고, 손 끝으로 더듬거리듯 서재를 쓸다가, 두꺼운 책 한 권을 꺼내 들었다. 그렇게 그곳에서 '수관의 편지'를 펼쳤을 때, 강현이 나무에 대해 늘 이야기하던 익숙한 문장들이 늘어섰다. 그리고 그 아래, 고요한 숲 속에 불어오는 낮은 바람처럼, 내 마음 한 구석을 훅 때리고 간 문장이 있었다. 그 말을 보는 순간부터 나는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나는 대뜸 강현에게 문자를 했다. ‘강현아 전할 말이 있어. 만나자.’


그날 강현은 업무로 바빠 저녁 시간에 잠깐 볼 수 있다고 했다. 강남역 사거리에서 강현을 만났을 때, 어찌나 반갑던지 나는 거리에서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강현!”

“오랜만이야. 잘 지내지?”

“나야 뭐 똑같지. 너는?”

“나도 뭐 새로운 일에 적응하느라 바빠. 그나저나 무슨 일이야 세진아?”

“강현. 내가 찾았어.”

“무엇을?”

“그거 아직도 고민하고 있었어? 대단한데.”

“사실 이 현상에는 의도가 좀 있어. '수관의 편지'라는 책을 읽어보면 더 자세한 내용을 알 수 있는데...”

“그 책 오랜만이네. 나도 다 읽어보진 않았지만, 이 분야에서 꽤 인정받는 책이야.”

나는 강현이 왜 이 책을 읽다 만 건지 궁금했지만, 내가 발견한 것을 알려주는 것이 더 급했다.

“나무들은 일종의 지능을 가지고 있는 사회적인 생명체라는 걸 너도 알잖아? 이 책에서 나무들은 서로 관계를 맺어.”

나는 숨이 차올라 잠시 침을 삼켰다.

“신기한 건 그다음부터야. 서로 '좋아하는' 나무들은 서로의 공간을 침범하지 않아. 하지만 더 적대적인 관계의 나무들은 서로의 공간을 침범하는 경우가 많아. 보통 같은 종의 나무들이 서로 더 좋은 관계를 맺지.”

흥분으로 내 말이 빨라지는 게 느껴졌다. 머리에서 뱉어야 할 말이 혀의 움직임을 온전히 감당하지 못하고, 제멋대로 쏟아졌다.

강현은 가만히 내 말을 듣더니 말했다.

“오. 이건 나도 처음 안 거야.”

“이게 무슨 말인지 알겠어?”

“네가 말한 거랑 완전히 반대라는 거야.”

“내 말?"

나는 내 말을 한 번에 이해하지 못하는 강현이 답답했다.

“우리 사이에 거리를 두려는 게, 너 자신이 예민해서는 아닐까 걱정했잖아. 그게 아니야. 우리는 서로를 소중하게 여기기 때문에, 각자의 공간을 침범하려 하지 않았던 거야. 있는 그대로 존중해주고 싶었던 거지. 그게 우리의 마음이야.”

“네 말에 따르면 내가 예민해서도, 결벽증이 있어서도 아닌 거네.”

“대박이지.”

“그래. 좋은 가설이야. 아직 더 삶에 적용해 봐야겠지만, 괜찮은 시도인데.”

강현의 말에 나는 인정받은 것처럼 마음이 부풀어 올랐다.


그 뒤로, 우리는 잠깐의 대화를 끝으로 헤어졌다. 강현은 다시 자신이 꾸린 새로운 세계로 돌아가야 했으니까. 그렇게 할 말을 다 전하고 왔을 때, 이상하게도 후련한 기분이 들었다. 오랜 숙제를 드디어 푼 기분이.

세진은 다시 집으로 향하며 생각했다. 언니는 아주 시끄럽게, 엄마에게 여전히 같은 질문을 되뇌고 있겠지. 그러나 그 잡음이 가득한 집 속에서 나는 그저 수관의 수줍음만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이제는 지긋지긋한 시끄러움 속에서도 고요하게 나뭇잎을 흔드는 모습만을 그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런 태도가 내가 발견한 삶의 새로운 정답이었으니까.




· 이 이야기는 현대 가족의 서사를 담은 허구의 소설로, 모든 인물과 사건은 작가의 상상에서 비롯되었습니다.

· 본 작품은 1부 〈한강에는 금붕어가 산다〉, 2부 〈수관의 수줍음〉, 3부 〈해묘 군락〉으로 이어지는 연작 소설입니다.

· 이번 글 중〈수관의 편지〉책은 피터 볼레벤의〈나무의 숨겨진 삶〉 을 모티브로 작성되었습니다.


토,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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