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서로 다른 울타리의 언니 둘

[2부 수관의 수줍음] episode 06

by 지은

6. 서로 다른 울타리의 언니 둘


우리 집에는 울타리가 있다. 그건 단순히 마당을 둘러싼 나무판자나 철망이 아니었다. 우리 집 안의 사람들이 함부로 빠져나가지 않도록, 보이지 않는 손으로 우리를 붙잡고 있는 듯한 경계였다.

엄마는 이따금 그 울타리에 난 좁은 문을 열고 잠시 바깥공기를 들이켰다. 큰 언니는 우리가 그 문을 오래 열어두지 못하게 지켜보았고, 작은 언니는 그 울타리를 완전히 넘어 형부와 새로운 담을 쌓았다. 누구도 완벽한 울타리에 속해 있진 않았지만, 각자의 울타리를 붙잡고 지켜 나가고 있었다. 아무 울타리도 없는 것처럼, 바람에 흔들리며 홀로 서 있는 건 나뿐이었다. 그러나 나는 울타리가 없는 삶이 진정한 나를 보여주는 것 같았으므로, 울타리 안에 머무르는 언니들이 조금은 바보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내게는 그 경계선을 오갈 때마다 궁금한 것이 있었다. 첫째 언니는 왜 결혼이 하고 싶지 않을까? 둘째 언니는 왜 결혼이 하고 싶었을까? 같은 집에서 자라면서, 왜 누군가는 나가려 하고, 누군가는 남으려 하는 걸까? 정답을 알 수 없지만, 서른에 집을 나선 혜진과 서른셋이 되도록 이곳에 머무는 수진을 보고 있으면, 나는 두 바보들 중에서도 혜진의 손을 들어주고 싶었다. 그리고 그때마다, 나 역시 이 집의 공기에서 조금 더 멀어져야 한다는 예감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마치 한 번도 벗어나 본 적 없는 울타리 너머에, 아직 내가 모르는 세계가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길고양이 한 마리가 우리 집 울타리를 넘어온 건, 날짜도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 초봄이었다. 희미한 봄비 냄새가 나는 저녁이었는데, 우리 세 자매는 수진이 오랜만에 해 준 양배추 전을 간장에 찍어먹고 있었다. 그때 수진이 놀라 소리쳤다. “깜짝이야.” “왜 그래? 어머. 고양이잖아.” 혜진의 말에 고개를 식탁 아래로 내리니 옅은 회색의 고양이 한 마리가 수진의 발에 꼬리를 스치고 있었다. 녀석은 젖은 발로 아파트 1층 복도를 가로지르다가, 살짝 열어둔 현관문 틈새로 들어온 모양이었다.

수진은 젓가락을 내려놓고, 다급히 손을 흔들며 말했다. 젓가락이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얘야, 나가. 나가!”

고양이는 수진의 손짓에도 젓가락 끝에 코를 박고는 킁킁대기 시작했다. 혜진은 고개를 갸웃하며, 부엌에서 남은 멸치를 들고 나왔다.

“잠깐만, 배가 고픈가 봐.”
혜진이 들고 온 멸치를 천천히 핥아먹기 시작했다. 당황한 수진이 말했다.

“뭐야. 얘 어떻게 내쫓지?”

“내버려 두어 봐. 저러다 배 차면 갈 거야.”

혜진은 고양이를 잘 안다는 듯 자신 있게 말했다.

혜진의 말대로 녀석은 잠깐 머물다가 울타리 틈새로 가볍게 몸을 날렸다. 가느다란 꼬리가 흩뿌린 물방울을 끌고 사라지는 걸 보았다. 녀석이 있던 자리에는 젖은 발자국만 남아있었다. 한 번도 망설이지 않은 듯 올곧게 뻗어 있는 발자국의 선형을 보자, 나는 고양이 특유의 가벼움이 부러웠다. 아무 울타리에도 묶이지 않은 채, 필요하면 다가와 머물고, 다시 홀가분하게 사라질 수 있는 존재. 나도 언젠가는 저렇게 경계선을 넘어볼 수 있을까.

어린 시절의 기억은 분절되어 있어, 어떤 사건이 계기가 되어야 끄집어낼 수 있는데, 내게는 그 순간이 그랬다. 고양이의 발자국을 가만히 보다가, 과거의 한 장면이 필름처럼 스쳐가게 되었다. 어릴 적 우리는 울타리 너머 공터에서 비밀 기지를 만들곤 했다. 낡은 이불을 천막처럼 걸고, 나뭇가지를 세워 울타리 모양을 흉내 내며 하루 종일 놀았다. 기지를 만드는 일을 전두지휘 하는 것은 큰 언니 수진의 몫이었고, 땅을 파고 기지의 모양을 세우는 것은 둘째 언니 혜진의 몫이었다. 어렸던 나는 작은 나뭇가지나 돌멩이, 공간을 꾸미기 위한 인형 따위를 집 밖과 안에서 주워다 날랐다. 그때의 울타리는 우리를 가두는 벽이 아니라, 새로운 세상으로의 모험이었다. 안과 밖을 오갈 때마다 우리의 기지는 조금 더 넓어졌고, 우리 세 자매는 작은 모험가가 되었으니까. 지금은 각자의 방식으로 서로 다른 울타리를 붙잡고 있는 우리지만, 고양이가 남긴 젖은 발자국과 어린 시절의 비밀 기지를 떠올리자, 울타리가 완전히 우리를 가두고 있진 않다는 걸 알 것 같았다. 언젠가 또 다른 울타리를 넘어가게 될지라도, 그 기억만은 우리 셋을 잇는 다리처럼 남아 있을 거라고. 젖은 발자국으로 흔적을 남긴 고양이처럼 말이다.




· 이 이야기는 현대 가족의 서사를 담은 허구의 소설로, 모든 인물과 사건은 작가의 상상에서 비롯되었습니다.

· 본 작품은 1부 〈한강에는 금붕어가 산다〉, 2부 〈수관의 수줍음〉, 3부 〈해묘 군락〉으로 이어지는 연작 소설입니다.

토,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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