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중독 MZ가 재테크를 결심한 이유
잘하는 것을 할 것인가 좋아하는 것을 할 것인가, 중학교 때(혹은 더 이전)부터 시작된 진로 탐색의 첫 질문은 늘 이것이었다. 그리고 나를 포함한 많은 아이들이 낭만에 젖어 돈을 적게 벌어도 좋으니 좋아하는 일을 해야 행복할 것 같다고 대답했었다. 만약 지금 그렇게 말하는 누군가를 만나면 비릿하게 웃으며 속으로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너네 집에는 돈이 많구나?” 그렇다고 자신의 일을 돈벌이 이상으로는 결코 여기지 않는 사람들을 만나면 또 다른 불쾌감이 인다. 어떻게든 남에게 책임을 미루고 최선을 다해 아무 말도 하지 않으려고 하고 책상에서 주식이나 게임만 하며 하루를 소진하는 사람. 제발 그 공간에서 최선을 다해 살고 있는 내가 바보 같게 느껴지게는 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고 싶다. 이런 두 부류의 사람들을 그냥 남의 인생이라고 생각하고 지나가지 못하는 이유는 여전히 ‘일’에 대한 나의 입장 정리가 되지 않았기 때문임을 잘 안다.
9N년생(N <5) 생계형 직장인 7년 차. 밀레니얼과 Z세대로 분류되는 사람들 사이 어딘가의 인구 집단. 그중에서도 우리 부모님은 나에게 집을 해주거나 몇 억 정도를 척척 내어줄 만큼의 재력가가 아니라는 점에서 평범하거나 평균 이하의 경제력을 가진 사람.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할 뿐이라고 말하고 그렇게 살아가는 고고한 나는, 인정하기 어렵지만 완전 생계형 직장인이다. 내가 좋아하는 일과 그냥저냥 잘할 수 있는 일의 선 위에서, 지금 내가 하는 일은 그 사이 어딘가이다. 내가 일을 계속해서 좋아하며 잘하기 위해서, 서로 독립된 상태에서 건강한 긴장 관계를 유지하며 갈 수 있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근로로부터의 경제 자립이 필요하다. 주변 친구들이 많은 부분을 포기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집이 내 소유가 될 수 있을 리 없다라든가, 물가를 쫓아가지 못하는 연봉 인상률이라든가… 그렇지만 우리는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나는 일을 열심히 하지 않는 사람들을 진심으로 이해하지 못하며 살았었다. 이왕 한 번 사는 인생인데 왜 저렇게 살지? 같이 나이가 먹은 ㅇㅇ님이랑 비교해봤을 때 진짜 너무 격 차이 난다, 이렇게 생각했었다. 일 잘한다는 게 최고의 칭찬이고 일 못한다는 게 최악의 모욕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너무나 사랑하고 존경했던 나의 첫 매니저는 정말 열심히 사는 사람이었다. 순수하게 늘 최선을 다하고 돌아오는 결과를 묵묵히 받아들인다. 성취는 덤덤하고 소박하게 축하하고 실수는 감싸주고 바로 잡아주었으며 실패에는 가슴 아파했다. 모든 일을 진심으로 대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요령 피우지 않는 투박한 멋을 배웠다. 그리고 그에게서 배운 그런 부분이 나에게 아직도 많이 남아있다. 그런데 그는 종종 나에게 “나처럼 살지 마라, 나보다 더 훌륭한 사람이 돼라”는 말을 했다. 머지않아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점차 느끼게 됐다. 나는 곧 그의 팀을 떠나 엔지니어가 되기 위한 모험을 떠났다. 누군가의 인정보다 중요한 것은, 회사나 타인의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나 스스로의 기준에 의해서 만들어가는 나만의 이야기라는 것을 체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그렇게 속세의 많은 것과 단절한 채 나의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몰두했다.
커리어는 비싸다. 노동의 가치는 시간이 갈수록 줄어들고 ‘잘 나가는’ 커리어를 만들기 위해서는 더 많은 자본과 노력을 투자해야 한다. 나의 경우 1년 동안은 패스트캠퍼스 강의를 거의 쉬지 않고 계속해서 들었으며 유료 스터디에도 들락거렸다. 지금 회사에 와서도 야밤까지 하는 학원에 다니고 체력을 최대한 아껴 최대의 퍼포먼스를 내기 위해 회사 근처에 산다. (그렇게 하기 위해 매월 숨만 쉬어도 100만 원이 나간다.) 매일 가장 늦은 시간까지 메신저에 남아있고 작은 문제를 치열하게 고민해서 나만의 디테일을 만들고 혼자 만족하고 가끔 알아봐주는 사람들에게 고마워하며 산다. 상당히 오랜 시간을 그렇게 살았기 때문에 나는 정말이지 일을 열심히 제대로 하지 않는 사람을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가끔 알다가도 모를 위화감을 느끼는 순간들이 있다. 예를 들면 나랑 같이 맨날 밤까지 남아 있던 동료 집이 트리마제였을 때, 결혼하는 동료가 부모님의 도움을 조금 받아 마련한 신혼집이 도곡동일 때, 이상하게 누군가의 차를 얻어 탈 때마다 하나도 빠짐없이 외제차였을 때, 동료들이 서로를 부자라고 놀리며 “부모님 돈이지 제 돈인가요ㅎㅎ”라고 너스레를 떨 때, 누가 어마어마한 부자라는데 그 누군가가 너무나 많을 때.
그럼에도 나는 현실을 마주 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듣게 된 부동산 강의에서 커리어라는 게 원래 사치스러운 것임을 마침내 깨닫게 됐다. 이 부동산 강의는 돈도 빽도 없는 평범한 직장인들이 부자가 된다는 모토로 한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운영되는데, 그 커뮤니티에는 몇 십억 자산 달성을 한 사람들이 후기를 남긴다. 그들이 입을 모아 하는 이야기는 회사는 우리 인생을 책임져주지 않으며 회사 일은 자연스럽게 후순위, 투자를 일 순위로 놓고 시간을 써야 한다는 것이었다. 회사에서 보내는 시간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커리어 욕심을 버려야 한다는 이야기도 많이 해주었다. 나는 사실 이 부분을 100% 수용하기 어려웠다. 지금까지 살아온 내 인생의 방향성과 너무나 달랐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들의 말이 일리가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었다. 그리고 아프게 깨달았다. 커리어는 나에게는 사치라는 것을.
나는 일을 좋아한다. 필요 이상을 하고 싶은 이 마음을 부여잡지 못하여 하염없이 일에 빠져 살고 있다. 가끔 진절머리가 나지만 내 일을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어서 나는 자부심을 느낀다.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나는 재테크를 열심히 할 것이다. 나의 신념과 기준을 다지고 ‘기술’로 뭔가 자유롭게 할 수 있기 위해서 나는 회사 월급으로부터 독립할 것이다. 주에 40시간 투자 공부를 하라는 고수들의 삶의 지향을 따라 살기는 어려울 수도 있을 것 같다. 원래 내가 지금 일에 헌신하고 있는 정도가 있으니까. 그게 어느 정도 갈무리가 된 뒤 투자 실력이 어느 궤도에 오르기까지는 일의 양을 보수적으로 맞춰갈 것이다. 월급이 더 필요해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만류해야 하지는 않아도 되도록, 돈이 아니라 내게 진짜 중요한 부분에 집중해서 최선의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성취와 일을 사랑하고 그보다도 내가 내 삶의 결정권자이기를 바라는 한 사람으로서의 깨달음이었다. 정말 먼 여정이 되겠지만 깨달은 것만으로 큰 첫걸음이니 멈추지 말고 조금씩 꾸준히 해보자. 나 자신 힘내…!
https://youtu.be/7hH3c_GYYTE
https://youtu.be/2g8GvtIfvT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