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염전씨 Jan 03. 2023

독립과 고립 사이의 2022년

나는 “쟤는 혼자서는 할 줄 아는 게 없어”라는 말을 들을 바에야 영원히 고립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혼자 남는 것은 무서운 일이지만 다른 사람에 맞추어 휘어지는 것이 훨씬 더 무섭게 느껴진다. 나는 늘 나 스스로를 독립적인 인간이라고 말하고 다녔지만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들의 등 뒤에서 쉬어가지 않고서는 한 순간도 살지 못했다. 올 한 해는 그 모든 것으로부터 독립해야 했던 해였다. 6년 가까이 사귄 애인과 헤어졌고 매일 나를 웃겨주던 친구들이 없는 전혀 새로운 나라에서 새롭게 혼자서 살아야 했다. 너무나 많은 것을 자발적으로 두고 가기 때문에, 내가 그곳에서 행복하지 않다면 나 자신을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았다. 행복한 순간들을 지나면서도 뒤돌아서 나 자신을 서슬퍼런 눈으로 노려보았던 것도 사실이다. 결과적으로는 나의 새로운 환경이 너무도 마음에 든다. 2023년에는 나를 노려보는 나 자신과 화해하는 일이 남았다.


2022년에 있었던 일과 감상

미친 듯이 페달을 밟고 나면 관성으로 가게 되는 구간이 있는데, 올해가 그런 해처럼 느껴진다. 이가 부러질 것처럼 꽉 깨물고 살았던 나에게 선물이 많이 주어졌다. 첫 책이 나왔고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랑을 받았다. 내 얘기를 세상에 내놓은 보상으로 값진 조언도 많이 받았다.

이전까지의 내 인생은 외주 주는 인생이었다. 요리를 하는 건 시간 낭비라고 생각해서 거의 모든 끼니를 사 먹거나 배달해 먹었다. 자기계발 이외의 것에 시간을 쓰는 것은 사치라고 생각해서 생활인으로서의 기능은 완전히 포기했었다. 내가 누려왔던 모든 인력 서비스를 월급으로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지역에 살게 되면서 내 생활은 완전히 바뀌었다. 음식을 해 먹게 되고, 운전을 하게 되고, 공구로 무언가를 조립하게 되었다. 생각보다 기쁜 일이었다.

새로운 취미도 많이 도전했다. 등산과 테니스 같이 내가 하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들을 자연스럽게 하게 되었다. 세상 열린 사람처럼 떠들며 다니지만 마음이 늘 닫혀있는 건 나였다. "내가 저런 것에 관심 있을 리 없어"라고 말하며 걷어차버린 멋진 것들이 얼마나 많을까?

일적으로는 가장 많이 한 생각은, 내가 지금 참 많은 것들의 사이에서 어디에도 도달하지 못한 채로 있다는 생각이었다. 나는 개발자인 것 같으면서도 PM 같으면서도 영업 같으면서도 작가 같았다. 실상은 넷 중 무엇도 아니다. 나는 주니어인 것 같다고 스스로 느끼지만 주니어는 아니고 모두가 그 이상을 하기를 기대하지만 시니어는 아닌 것 같다. 나는 독립적으로 일하는 사람 같으면서도 어떤 부분에서는 남들에게 너무 많이 의존해 버린다. 나는 한국에서는 미국에서의 일을 동경하고 미국에서는 한국의 동료들을 그리워하며 그 둘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다. 성장에 미친 것처럼 달리다가도 어떨 때는 일을 하기는 하는 건가 싶을 정도로 게으르다.

"꿈이 뭐야?"라고 물으면 대답을 못하고 한참 망설여야 했던 나에게도 꿈이라고 말할 수 있을 만한 것이 있었다. 리인벤트 무대에서 발표를 하는 것이었다. 올해 이 꿈을 생각보다 일찍 이루었다. 노력한 만큼 모두에게 인정을 받았다. 사람들이 직접 축하한다고 말해주면 멋쩍어서 아니라며 손을 내젓고 말을 돌렸지만 완벽한 내숭이다. 나는 대단히 이 일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어려움을 돌파했던 나 자신의 힘을 잊지 않을 것이지만 부족했던 부분들은 멋지게 채울 수 있는 방법을 찾을 것이다.

새로운 환경에서 힘들 법도 한데 운 좋게 좋은 친구들을 많이 만났다. 내 사주가 꽃나무 같은 사주라 사람들이 많이 좋아한다던데 역시 그래서일까?ㅎ 새로 만난 친구들이 많은 만큼 오랫동안 연락을 하지 않고 지내다가 오랜만에 다시 만난 친구들도 많아서 기뻤다.




연말에 친구들과 여행을 다녀왔다. 2022년의 마지막 날, 문을 연 이자카야를 겨우 찾아 들어가서 친구들과 2022년의 감상과 2023년의 다짐을 나누었다. 한 친구가 2022년이 '이제는 알 것도 같아' 였다면 2023년은 이제 알게 될 거야!라고 말했다. 그 말이 강렬하게 마음에 남았다. 이제 사회생활도 조금 했고 내 취향도 조금 아는 것 같고 내가 뭘 원하는, 어떤 종류의 사람인지 알 것도 같다가도 아직 잘 모르겠기도 해서 오히려 더 헷갈린다. 나는 나를 아나? 세상을 아나? 어른인 것만 같던 나이가 실제로 되었는데 나는 어른인가? 어떨 때는 꽤나 알 것 같다. 내가 말하는 목소리를 내가 들을 때면 제법 뭔가 아는 사람 같다. 그런데 어느 날은 바보천치 같고 인생이든 나든 알 것도 같다가도 모르겠다. 그래도 말간 희망으로 최선을 다해 천방지축 살아보면 알고 싶은 게 무엇이든 알게 될 거라는 그 낙관, 내 삶이 더 나아지기를 바라는 힘없고 파리한 기대, 권태와 안온을 걷어내야 겨우 살짝 보이는 희망, 어쩐지 눈물이 조금 묻은 것 같은 이 모든 착한 마음들에 눈물이 속절없이 흘렀다. 이 마음을 잘 안고 최대한 오랫동안 지키고 싶었던 것 같다. 2023년에는 거창한 공부 계획도 일 계획도 없다. 그 어디에도 도달하지 못한 채로 사는 이 느낌 속에서 그저 조금 더 건강하게 지내보고 싶은 마음뿐이다. 모두들 평화롭고 효율적이고 건강한 한 해가 되시길!

작가의 이전글 re:Invent 2022 발표자/트랙오너의 회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