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WS re:Invent (이하 리인벤트)가 끝났다. 리인벤트는 AWS에서 주최하는 거대한 클라우드 기술 컨퍼런스로 올해를 10주년을 맞았다. 라스베가스의 호텔들을 통째로 최소 5개 빌려 진행하는, 내가 아는 한 가장 큰 클라우드 컨퍼런스다. 2019년에 AWS에 입사하면서 이 거대한 컨퍼런스의 Breakout 세션 발표를 하는 것은 내 큰 꿈 중에 하나였다. 회사 일에 참여하는 게 꿈이라니 조금 딱하다는 생각도 들지만, 다른 사람들이 그 무대에 서서 발표하는 것을 나를 포함한 정말 많은 사람들이 몇 번이고 돌려보며 공부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아주 자연스럽게 "언젠가는 나도 저기에"라는 마음이 생겼다. 정확히는 저 자리에 서서 말할 수 있을 정도의 전문성을 갖고 싶었다. 그 전문성이란 것을 분해해보면 이런 것들이다. 첫째, 지금 이 순간 이 산업에 필요한 이야기를 정의한다. 둘째, 이를 뚫고 지나가는 데에 필요한 도구가 무엇인지, 청자들이 겪게 될 어려움이 무엇이며 그것을 어떻게 헤쳐나갈지 제시한다. 셋째, 이 모든 것을 적확한 말과 표현으로 전달할 줄 아는 기술이 있어야 한다. 이 모든 것을 갖고 싶었고 마침내 이 세상에 내가 그 모든 것을 가졌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드디어 올해 나는 한 세션의 발표자이자, 여러 세션들을 묶어놓은 트랙의 테크 리드로 참여할 기회를 얻어냈다. 솔직히 이렇게 빨리 '꿈'이라고 할 만한 것을 해내리라고 생각하지 못해 기쁜 한편, 그 어떤 때보다 내 한계를 살 떨리게 체감한 시기였다.
이번 리인벤트 준비 시작은 아주 일찍부터 시작되었다. 리인벤트에서 발표하기 위해서는 정말 엄청난 경쟁을 거쳐야 한다. 이 정도 규모의 무대에서 자신의 전문성을 뽐내고 싶은 사람들은 당연히 전 세계에 걸쳐 너무도 많기 때문이다. 나는 따지자면 이제 아마존 사람이라서 AWS 입장에서는 고객이어서 정보 전달이 조금씩 지연되었다. 게다가 광고할 만한 프로덕트가 명확히 개발 완료될지도 불투명한 상황이었어서 여러 가지로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 모든 일의 시작은 리인벤트에 제출할 기술 컨텐츠를 제안해달라는 매니저의 부탁이었다. 생각나는 주제가 몇 가지 있었고 여기에 더해 팀원들의 아이디어를 반영하기 위해 브레인스토밍 세션을 열었다. 그들에게 리인벤트의 취지, 우리의 위치, 얻고자 하는 것 등등을 충분히 설명한 뒤 몇 가지 안을 받았다. 취합된 아이디어들을 AWS의 언어로 바꾸었다. 한국 지사에 있으면서 많은 웨비나와 마케팅 행사를 진행했었는데 그때 어떤 단어와 문장으로 고객들을 대해야 하는지 익힌 것이 아주 큰 도움이 됐다. 리인벤트에 어울리는 제목과 간단한 소개글을 작성해서 제출했다. 총 제출한 4가지의 안이 모두 선택되었다. 그래서 나는 얼결에 전체 4개 세션을 관장하는 트랙의 오너가 되었다. 그중에 하나는 내가 직접 발표도 해야 했다. 트랙 오너는 사실상 나보다 한 두 직급은 위의 사람들이 하는 일이다. 그리고 한국에서 여러 대고객 컨퍼런스 준비를 해보면서 발표와 트랙 관리를 겸업해서는 그 둘 모두 다 별 볼 일 없어질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상당히 도전적인 일이었지만 하겠다고 했다. 인생에 후진은 없으니까 ⭐️
이제 다음에 할 일은 PM이 돼서 전체 팀이 적절한 발표 자료를 만들고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게 하는 일이었다. 그들의 세션 제목과 소개글을 최종 확정하고, 발표 얼개를 잡아주고, 자료 만드는 데에도 참여해서 장표 한 장 한 장 피드백을 주었다. 팀원들이 적절한 사람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게 미팅을 준비하고, 발표 스크립트를 검수하고, 전체 세션 모두 적절한 피드백 제공자와 함께 최소 4차례 리허설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짰다. 당연히 내 발표 자료를 만드는 것도 별개로 이루어졌다. 특히 내 발표는 우리 프로덕트가 개발된 방식을 소개하는 것이었는데, 여러 팀이 협업하여 만들다 보니 여기저기서 자료를 끌어와야 해서 상당히 시간이 걸렸다.
솔직히 리인벤트를 준비하는 것은 고통스러웠다.
1. 아직 우리 프로덕트가 완벽히 준비되지 않은 상태였다. 지금도 퍼블릭하게 공개되지는 않은 상태이다. 세션 주제 접수 이후 조직 내 우선순위 변경이 몇 차례 있었고, 이 때문에 최초에 리인벤트에 가고자 했던 목표를 이루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약속했던 세션들을 준비해야 하는 사실은 변함이 없는데, 제품이 사실상 없는 상태에서 발표를 해야 해서 리인벤트에 가서 조직 차원으로 얻을 게 있을지 스스로 납득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행사의 팔로업을 어떻게 할 것인가, 성과를 어떻게 나누어줄 것인가, 우리가 조직에 기여하는 바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등등 정작 중요한 부분을 커뮤니케이션하는 데에 힘이 달렸다. 달리 말하면 리인벤트가 우리 비즈니스에 아주 명확한 득을 가져다주리라는 확신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제품 개발 우선순위 변경/푸시를 끌어내지 못했다. 그나마 팀원들이 정말 열심히 해줘서 이가 없이 잇몸으로 컨텐츠를 만들었다. 우리 팀의 입장보다는 리인벤트에 참여하는 고객들의 관점에서 AWS의 기술 세션 모습을 갖추기 위해 조금 더 시간을 쏟았다. 어차피 세션 중에 제품 광고를 할 생각은 없었으므로 세션 내용 자체에 변경이 아주 많지는 않았다. 대신 추후 팔로업 프로그램을 방향을 수정해야 했다. 때맞춰 입사해준 마케팅 매니저가 열심히 도와준 덕분에 대강 얼개를 잡고 행사에 참여할 수 있었다.
2. 미국에서 일하면서 언어적 장벽을 꽤나 크게 느끼고 있기는 했지만, 리인벤트 발표 준비만큼 나 자신을 시험에 들게 하는 일은 없었다. 한국에 있을 때는 사람들이 나보고 영어를 잘한다고 해주니까 그저 그런 줄 알았다. 응 아니야~ 이 50분이 채 되지 않는 발표를 준비하기 위해 같이 발표를 준비한 동료와 적어도 30번 정도는 미팅을 했다. 수 없이 많은 기술 문서를 내부 위키에서 발굴해냈고 이것을 어떤 흐름으로 논리적으로 설명할 것인지 치밀하게 준비했다. 같이 발표한 동료가 나보다도 주니어여서 내가 리딩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나는 계속해서 보스 우먼이었는데 영어로 발표를 해야 할 때는 그저 외국인이었다. 스피커 코칭 세션을 세 차례 정도 받았는데 매번 받은 이야기가 ‘니 개성을 보여줘’였다. 내용을 정확히 전달하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힘이 부치는 나에게는 너무도 어려운 요청이었다. 그에 반해 내가 내용을 코칭한 모든 세션 발표자들은 너무도 훌륭한 ‘영어’ 발표자들이었고 그들은 매번 무대를 장악했다. 내 모국어가 영어가 아니라는 사실이 자꾸만 인식하게 되었다. 스크립트 문법과 문장 부호가 피드백으로 남겨질 때, 리허설 후 악센트가 있다는 피드백을 받을 때, 발표 연습을 녹화한 것을 도저히 들을 수가 없을 때 특히 그랬다. 어쩌겠는가? 다시 태어나지 않고서야 방법이 없다. 발표를 한 달 남긴 시점부터 매일 하루에 두 번씩 연습을 했다. 공식 리허설과 합치면 약 50번 정도는 연습을 했다고 자부할 수 있다.
3. 지금까지는 나 혼자서 관리하며 끌고 갈 수 있는 규모의 프로젝트들만 해왔던 것 같다. 하나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여러 동료들을 일하게 만들어야 했던 첫 번째 프로젝트를 생각해보면, 계속해서 그 규모가 커져오기는 했지만 “어 조금 힘에 부치네?” 정도의 느낌이었고 어찌어찌해낼 수 있었다. 그런데 리인벤트는 업계 최대 사이즈이기 때문에 당연히 나 혼자 세션 4개를 다 기획하고 일일이 피드백을 주고 일일이 모두의 일정을 확인하여 리허설을 잡을 수는 없었다. 매니저가 나를 도와줄 사람을 붙여주었다. 게다가 주변 사람들이 다 나서서 도와주겠다고 손을 내밀었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그들을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 전혀 몰랐다. 한 번도 내가 모든 일을 해내지 않는 상황에 있어본 적이 없었던 데다가, 인턴 시절 잡일만 주던 사람들을 오래도록 미워했었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갈피도 잡히지가 않았다. PMO 역할을 해준 동료와 결국 일을 절반씩 나눠서 했는데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이것이 정말 최선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내 일을 오프로딩하면서 큰 스케일의 일을 해내는 기술을 이제는 알아야 하는, 시니어가 되어야 하는 자리에 마침내 왔음을 피부로 느꼈다.
4. 내 세션 제외 총 3개 팀의 발표 자료를 관리하고 그들의 발표 퀄리티를 높이기 위해 시간을 굉장히 많이 썼다. 사실 이 리인벤트 프로젝트에서 가장 어려웠던 게 이 부분이었다. 미국에 와서 가장 크게 문화 차이를 느낀 것이기도 하다. 팀원들 발표를 준비시키면서 한국에서 했던 것처럼 했더니 푸시백을 당했다. 마이크로 매니징 하는 것 같았다. 얼마나 관여하고 얼마나 관여하지 말아야 하는지를 몰라서 힘들었다. 한국에서 이렇게 비슷한 세션 프로그램을 준비할 때에는 발표자들이 PM을 전적으로 믿고 따라주었다. 리허설을 한 번만 잡아놓으면 두 번 해야 하지 않을까요? 하는 식의 피드백을 받아본 적은 있지만, 준비 미팅 덜하고 싶고 나한테 다 맡겨달라 하는 경우는 사실 많이 겪어보지 못했다. 나 역시 발표를 많이 하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적정선을 안다고 자부했다. 그 준비 미팅에서 피드백을 드리고 그게 타당하다고 생각하면 거의 100% 반영해서 그다음 시간에 다들 준비해서 돌아오시고는 했다. 만약에 일정이 도무지 안된다면 제안된 날짜 말고 다른 구체적인 이 날짜에 하면 안 되겠냐고 미리 양해를 구하는 것이 당연했다. 그에 비해 미국 팀원들은 자율을 조금 더 원했다. 최초 발표 자료 제출 일정이 맞추어지지 않는 것은 당연했고 피드백을 암만 줘도 결코 반영되지 않았다. 막판에 리허설을 할 때에는 총 4가지 다른 성격의 패널들과 진행할 것으로 계획을 공유했는데, 이건 시간 낭비라고 생각한다는 답변을 받았다. 거의 전원이 그렇게 생각해서 꽤나 놀라웠다. 미국에서 팀원들과 적정 거리를 유지하면서 좋은 퍼포먼스를 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아직 잘 모르겠다.
그럼에도 우리는 꽤나 좋은 현장 피드백을 받고 세션들을 마무리했다. 동료들이 무대에서 빛나는 모습을 보니 정말 기뻤다. 내가 걱정했던 모든 것들이 사실 그럴 필요 없었음을, 팀원들을 훨씬 더 많이 믿었어야 했음을 배웠다. 리인벤트가 다가오기 30일 전부터 나는 디데이 앱을 깔고 언제 이게 끝날지 손을 꼽아 기다렸다. 해내고 나니까 기쁜 마음보다는 솔직히 너무 지쳤다. 그리고 아주 자연스럽게 뭘 더 잘했어야 했는지, 앞으로 뭘 더 잘해야 하는지가 머리에 먼저 떠올랐다. 시애틀로 다시 돌아오는 길에, 꼭 하고 싶었던 것을 해내는 게 사실 얼마나 나를 허무하게 만드는지 생각했다. 자랑스럽게 생각하기는 하지만 잠시라도 기쁘지 않아서 조금 놀라웠다. 그저 안도감만이 차올랐다. 나를 계속 분주하게 만드는 이 성취욕과 승부욕이라는 건 대체 뭘까? 주변 사람들이 잘했다고 일깨워주지 않으면 나는 스스로를 칭찬할 줄 전혀 모르는구나 싶었다. 그래서 나를 칭찬해주려고 이렇게 회고를 남긴다. 이 모든 과정을 과거의 나 스스로와 싸워 이긴 것이고 그 내내 나쁘지 않은 방법으로 잘 싸웠고 많이 배웠다.
내 세션 발표 당일은 놀랍게도 내 생일이었다. 생일에 진심인 내 동료들 덕에 200여 명 가까운 사람들에게 생일 축하를 받았다. 스태프로 계시던 할머니께서 세션 후에 정리 중인 나에게 조용히 다가와서는, 너 웃는 게 정말 예쁘고 앞으로 웃을 일이 많았으면 좋겠다, 생일 축하한다라고 말해주셨다. 평생 잊지 못할 날일 것이다. https://youtu.be/BSh1ah8ej3M?t=28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