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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전씨 Nov 02. 2018

나를 앞으로 가게 하는 말들

자꾸 자빠지기만 해서 이제 그만 걸어야지, 하던 순간 마다 만났던 사람들

 IT에 있는 어린 문과 여자라면 그냥 “당연히 모를 것이다, 그게 무엇이든”이라는 상대방의 태도도 견뎌내야 할 때가 많습니다. 내 앞에는 넘어야 할 지식의 산이 너무 커서 얼마나 큰 지도 모르겠는데, 나를 깎아내리는 말들과 맞서다 보면 힘이 빠집니다. 밤새 달리다가도 필연적으로 벽에 부딪히는 순간이 옵니다. 아무리 삽질해도 콘솔에 에러메시지가 멈추지 않을 때, 나는 멈춰있는 것 같은데 다른 동기들은 프로젝트를 턱턱 해낼 때, 나는 해보고 싶은 게 많은데 그냥 가만히 묻어가라는 분위기에 발목 잡힐 때, 회사 시니어들은 왜 다 이 모양인지 미래가 없다 싶을 때, 가고 싶은 회사 공고를 보는데 지원자격을 도저히 만족시킬 수 없을 때. 그럴 때 저를 일으켜 세워주었던 다른 사람들의 말, 행동을 소개합니다. 힘든 시간을 지나고 있는 분이 계시다면 조금은 기운을 얻으시길 바래요.


이름 모를 웹 개발자님

 때는 여름, 아무리 교육을 듣고 혼자 튜토리얼도 해보고 해도 실력이 안 느는 것 같다는 의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에러 메시지들과의 숨막히는 사투를 벌이다가 마침내 "개발은 나랑 안 맞나봐.."하며 쓰러져 있을 때, 이런 글을 봤습니다. 그리고 벌떡 일어났습니다.


사실 개발에 지치고, 개발이 배우기 어렵고 하는 건 항상 있는 일이에요. 재미가 없을 수도 있어요. 그럴 때마다 ‘내 적성은 이게 아닌가? ‘ 하는 분들을 봅니다. …
지금 개발이 좋다고 하면, 스스로의 모티베이션을 만들어가는 노력을 해보세요. 다른 사람이 ‘이래야한다’ ‘이렇게 하자’ 라고 어떤 근사한 동기부여를 해도 그건 자기 것이 아니거든요. 스스로 나아갈 줄 아는 게 재능이에요.

출처: http://woowabros.github.io/woowabros/2017/09/05/juneyoung-techcamp.html


 우아한형제들 기술블로그에, 우아한 테크캠프에 참여했던 김준영님이 남기신 후기글의 일부입니다. 이 말을 보고 울컥했습니다. 나만 지치고 어렵고 재미가 없을 때가 있는 게 아니구나, 그렇지만 하루하루 배운 것들을 정리하며 앞으로 나가고 있다는 것 자체가 나의 재능이구나. 분명 저의 재능인데, 아무도 제게 이런 것들을 알려주지 않았거든요.


실패로부터 배운다는 말이 없었다면 어떻게 살았을까요. 하루하루 계속되는 나의 작은 노력들이 미래의 나를 구원해줄 거라고 믿고 담담하게 가는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하루만 더 잘 해보자, 라는 생각으로 꾹 참고 한 발 더 가는거죠. 이름 모를 웹 개발자님과 우아한형제들의 김준영님께 심심한 감사의 인사를 남깁니다.



J상무

 IBM의 CEO 지니 로메티는 "자신이 보지 못한 누군가가 될 수는 없다"고 이야기했죠. 제가 보는 사람들의 꽤 높은 비율이 사실은 기술자로서 존경할 만한 사람들은 아닙니다. 지니의 인터뷰 기사를 보면서, "그래 이 회사는 나에게 롤모델을 보여준 적이 없어..!"라는 생각을 했고 한 층 더 우울한 날들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올해 처음으로 다행히 닮고 싶은 누군가를 만났습니다. 그 분은 그냥 본인이 하는 일을 할 뿐인데, 다른 사람들이 백 마디 해준 것보다도 더 많은 위로를 받은 기분이었습니다.


 저희 회사에는 사내 스터디그룹이 있습니다. 보통 몇 번 만나고 흐지부지 되는 경우가 많은데, 올해 한 블록체인 스터디는 굉장히 흥했습니다. 리더의 피나는 노력 하에 멤버 전원이 적극적으로 참여했기 때문입니다. 이 스터디 그룹에서 만난 가장 인상적인 분은, 단연 J상무님이었습니다. 임원이 이런 일반 직원들의 스터디에..? 라는 의아함도 사실 있었습니다. 그런데 약 7개월 간의 스터디 활동 기간 동안 가장 적극적인 참여를 보이신 건 J상무였습니다. 오후 8시에 하는 회의에도, 주말 모임에도 단 한 번의 결석 없이 출석해서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고 사전 자료 조사를 제때 제출했습니다. 사실 저 조차 그러지 못했는데 말이죠.. 결과 발표회 날에는 심지어 본인의 개인 모니터를 손수 들고와 설치하시고, 부스 설치를 위한 준비물도 다 챙겨서 리더가 준비하도록 도우셨습니다. 소위 “막내일”을 다 하시는 상무님을 보면서, 이렇게 하나라도 더 배우고자 노력하고 소탈하게 자기 역할을 해내는 점잖은 어른도 회사에 있다는 것에 적잖이 충격을 받았습니다. 우연찮게 그 분이 곧 정년을 맞이하신다는 말을 전해 듣고 더 충격에 빠졌죠. 그 다음에 오는 감정은 위안이었습니다. 이렇게 평생을 엔지니어로서 곧게 사시는 분도 있구나, 행동으로서 주니어들에게 에너지를 줄 수 있는 단단한 어른이 우리 회사에 있구나, 나도 이렇게 시니어가 되어야 하는 거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그냥 자신이 살아온 방식 대로 살 뿐인데 다른 사람에게 귀감이 됩니다. 놀라울 만큼 강력하게요.


K과장

 클라우드 포탈 개발 프로젝트를 하고 있습니다. 도저히 유지보수가 안될 것 같은 코드를 받아와서 그 틀을 그대로 유지한 채 저희에게 필요한 기능만 욱여넣는 식으로요. 저는 최소 프론트엔드와 백엔드가 구분된 프로젝트를 하고 싶었습니다. 향후 기능 확장 계획만 봐도 이렇게 하면 안된다는 생각이 들어서, 반대 의견을 많이 냈습니다. 그렇지만 개발 경력이 0인 사람이, “이게 내가 해보더니 그렇습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을 이길 수는 없었죠. 저는 납득할 수 없는 의사결정 과정과, 신기술(사실 신기술이라고 하기도 죄송한 앵귤러와 리액트..)에 대한 알레르기적 보수 반응에 정말 실망을 많이 했습니다. 우리 부서 내에서는 개발을 제일 잘한다고 하는 분이 그러시니 더 분통터졌죠. 속상한 미팅을 바치고 우연찮게 PM분과 밥을 먹게 됐습니다. 제 생각을 얘기하고 실망을 너무 많이 했다는 얘기를 쏟아냈습니다. “그래도 그들을 믿고 가자” 내지 "대충 하자" 이런 반응을 기다렸죠.


 과장님의 반응은 뜻밖이었습니다. 지원씨는 남들이 알려주는 걸 그대로 다 받아들이기만 하는 게 아니라 의심하고 비판적으로 보는 게 좋고 부럽다고, 자기도 그렇게 되고 싶다고 얘기해주셨거든요. 그 말이 너무 따뜻해서 왈칵 눈물이 쏟아질 뻔했습니다. 세상에는 이렇게 말해주는 어른도 있구나 싶어서(내 칭찬해줘서 아님ㅎㅎ)세상에는 정말로, “참고 버텨, 안정적인 게 최고야, 일 벌이지마”라고 이야기하지 않는 시니어가 있구나, 온갖 부양가족 걱정만 늘어놓거나 묻지도 않은 자신의 과거에 대해서 일장연설 하느라 내 문제는 관심도 없는 사람들만 있지 않구나, 라는 걸 보게 돼서 정말 안심이 됐습니다. 본인도 힘드실텐데 기운 내서 잘 해보자고 이야기해주시는 과장님이 있어서, 정말로 조금 더 힘을 내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존재 만으로 위로가 되는 사람

어떤 사람은 그 사람의 모습으로 그 자리에 존재하고 있는 것 만으로도 타인에게 위로와 귀감이 되기도 합니다. 그들은 위인이 아니고 평범한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죠. 그들을 제 등에 업고 오늘도 한 걸음씩 꾸준히 가봅니다. 그러다보면 저도 그런 멋진 사람이 되어 있길 바라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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