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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전씨 Nov 18. 2018

낭중지추로 산다는 것

내 세계를 지키는 것과 '회사원'으로 산다는 것의 괴리

커버 사진 출처: @chaichai.y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자 합니다. 2주 전 브런치를 열고,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관심과 응원을 받았습니다. 남겨주신 댓글들을 몇 번이고 다시 읽다가, 어딘지 모르게 먹먹해져서 먼 산을 한 번 보았다가 다시 읽기를 반복했습니다. 몇 번 답댓글을 달아보다가, “내가 느낀 감동과 용기는 이정도 말이 아닌데” 싶어서 몇 번을 지웠다가 이내 아무 말도 할 수 없어 댓글창을 닫았습니다. 더 많은 말을 하고 싶은데 지금 저의 그릇으로는 전할 수 없는 크기의 말이라, 그저 제 안에 꼭꼭 쌓아 살아가고 글쓰기 위한 연료로 태우겠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제 매니저와 저의 인연은 굉장히 깊습니다. 인턴 면접 때 처음 만나서 저를 '키웠'고, 중간에 1년 정도를 제하고는 계속 저의 인사관리자였습니다. 제가 인턴을 마무리할 때 즈음에 저에게 그 분이 "너는 주머니 속의 송곳 같은 사람이다, 니 존재감이 너무 큰데 그게 과연 좋은 점일지는 잘 모르겠다"라고 말씀하셨죠. 이게 과연 칭찬인지 욕인지 알 수 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고민에 빠졌죠. 제가 생각했을 때 저는 하고 싶은 말은 해야 한다는 것 빼고는 사실 특별할 거 없는 정말 평범한 사람입니다. 특출난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고 특출난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많은 사람들 중에 한 사람인 것 같은데, 왜 회사에서 나를 가장 오랜 시간 유심히 지켜본 사람은 자꾸 나에게 '보편적이어 질 것'을 요구하는지 이해하기 힘들었죠. 나의 개성과 세계라는 건 제 기준에서는 너무 흐릿하고 보잘 것 없는데, 이 마저 회사 울타리 안에서는 몰래 갖고 있기도 힘든 것인가? 나는 정말로 그렇게까지 표가 나는 괴짜인가? 그럼 나 스스로를 좀 회사에 맞게 깎아 나가야 하는 걸까?


그 얘기를 듣고 나서 최대한 사람들의 눈에 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저는 권력 구조 제일 끄트머리에 있었고,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사고 싶었죠. 여성혐오적 발언을 듣거나 사회적으로 비판 받아야 할 발언들에도 그냥 침묵했습니다. 회사에서는 적을 만들면 안 된다고 배웠고, 저 역시 사람들과 날을 세우고 싶지 않았으니까요. 그런데 그런 얘기들을 듣고 가만히 있는 것은 점점 저를 좀먹었습니다. 사람들에게 가식적으로 대하게 되니 그 과정에서 엄청난 에너지를 소비하게 되고, '사실은 그게 아닌데? 내 생각은 좀 다른데?'라는 걸 표출하지 못하니 스트레스를 받았으며, 가장 나쁘게는 저의 가치관이 점점 위축되는 느낌이었습니다. 저의 진짜 생각을 표하는 순간 비난을 받게 될 것 같다는 형체 없는 공포감을 항상 품고 살았습니다. 표현되지 않는 생각은 증발되기만 했고, 말할 수 없는 갑갑함과 진심 없는 웃음 만이 제게 남았습니다.



보편의 범주를 정의하는 힘에 대하여

 그로부터 약 3년이 흐른 뒤 비슷한 이야기를 또 들었습니다. "너는 좀 보편적이어질 생각은 전혀 없니?" 저는 의문을 멈출 수 없었습니다. 나는 관리자들이 요구하는 성과를 매해 성실하게 달성/초과 달성하고 있는데, 그리고 사람들과도 잘 지내는 것 같고 협력해서 일하는 데에 지장이 별로 없는데 왜 자꾸 나는 '평범해지라'는 말을 계속해서 듣는 걸까. 그러던 어느 날, 다른 관리자급의 사람과 토론(?)을 하던 중 약간의 힌트를 얻게 됩니다. 상황은 이랬습니다. 제가 참여하고 있는 프로젝트에서, 그 관리자가 급하게 추가했던 요건이 하나 있었는데 제가 딱 잘라서 이래이래서 말씀하신 기간까지는 못한다고 얘기했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이렇게 요건이 변하고 재촉만 하시니 어떻게 해야 될 지 잘 모르겠다는 이야기도 덧붙였죠. 그는 제 이야기를 듣더니, "지원은 다 좋은데 자기 주장이 너무 강해"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꽤 혼란스러웠습니다. 그게 관리자급에서 저를 좋아하는 이유였거든요. 게다가 이런 걸 내세워서 회사 분위기를 확 한 번 바꿔주기를 바란다고 이야기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런데 제 장점이라고 추켜세워주었던 것을 이제는 단점이라고 콕 찝어서 후려쳐버리니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었습니다. 그리고 찾아오는 것은, 저의 '자기 주장'이랄 것이 그들이 수용할 수 있는 범주를 벗어나는 순간 '고집'과 '싸가지'의 문제로 가버린다는 깨달음이었죠. 보편적인 면모를 유지하면서 보편적이지 않은 일을 해내기를 바라는 이중 메시지 안에서 저는 혼란스러웠습니다. 이 사람들이 요구하는 '보편'이라는 게 도대체 누가 정한 걸까, 나는 어떻게 새로운 사람이어야 하는 걸까 대체, 그들이 보편의 근거로 내세우는 "어쩔 수 없는 상황들에 적응하며 오래 가기 위해서"라는 건 누가 정한 걸까. 보편탈트붕괴가 올 판이었습니다.



저는 그래서 어떻게 이겨내고 있냐면요,

 저는 학부 시절부터 한나 아렌트를 굉장히 좋아했습니다. 그는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을 세상에 소개한 것으로 유명한 독일 철학가인데요, 그의 저작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유대인 학살을 실제로 행했던 사람들은, 대단한 악인일 것 같지만 사실은 대단히 평범한 옆 집 사람일 뿐이며 악은 언제나 도처에 널려있는 평범한 것이라는 말을 합니다. 저는, 평범한 회사원일 뿐인 저는, 제 작은 소소한 삶에서 지켜야 할 단 한 가지가 있다면 악의 평범성에 대한 저항정신이라고 생각합니다. 폭력과 비폭력에 대해 고민해본 적 없는 이들이 권력을 쥘 수 있도록 체제가 디자인되어 있으니, 사회는 더 좋은 곳이 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저 한 사람 만큼은 그 체제에 대해 의문을 던지고, 제게 주어진 반경 내에서 제가 바꿀 수 있는 판을 바꾸며 사는 게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사는 건 당연히 힘들죠. 먹고 살기야 당연하고, 내 마음 지키고 내 철학 세우며 살기는 더더욱 힘듭니다. 그렇지만, 그래도, 제가 인간의 존엄을 달고 있는 사람으로서 이것 하나는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고 지냅니다.


 아니 회사 사람들이 대단한 악인도 아니고 그냥 그들도 시키는 일 하는 것 뿐이고, 살다보니 그렇게 된 것 뿐인데 이렇게까지 생각할 것이 무어있느냐 하실 분들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이런 작은 것들이 모여서 제 말 한 마디와 행동거지 하나가 되며, 제 존재를 증명하는 저만의 작은 경험들이 모여서 지금과 앞으로의 제가 된다고 생각해요. 근거를 갖춘 자기 표현을 멈추지 않는 것, 생산적인 갈등을 두려워 않는 것, 그리고 이걸 매일의 삶에서 작게라도 표현하는 것, 이것들이 제 삶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저는 제 스스로가 떤 사람인지 잊을 지경까지 가는 것보다는, 그냥 차라리 송곳으로 남는 편을 택했습니다. 나를 흔드는 말을 만날 때마다, 뜨거운 물로 샤워하면서 다시 한 번 그 생각을 다잡는 것으로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는 것, 그리고 각자의 자리에서 분투하는 더 많은 송곳들을 기대해보는 수밖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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