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work Conference 2018, <지속하는 힘> 참석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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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work Conference는 작년에 시작해서 올 해 2회차를 맞이하는 컨퍼런스로, 우리의 관점으로 일을 재조명해 변화를 모색하고 함께 '탁월하게' 일할 동료를 찾고자 하는 자리이다. 일하며 살 수 밖에 없는 우리가 일하며 덜 불행해지는 방법에는 무엇이 있을지, 자기만의 지속하는 힘을 가진 스피커와 함께 보고, 듣고, 토론하며, 지금, 여기를 더 잘 살아내기 위한 답을 함께 찾는 것을 모토로 하고 있다--공식 홈페이지 소개글 참고
페이스북 그룹 <스타트업 여성들의 일과 삶>에서 감사하게도 참여할 기회를 주셔서 다녀왔는데, 정말 여기 안갔으면 내 앞으로 인생을 어쩔 뻔했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좋은 시간이었다. 얼마나 좋은 시간이었냐면, 여기서 들은 내용들을 꼭꼭 씹어서 내 이야기로 만들기 위해 별도로 브런치 매거진(짝짝짝)까지 만들었다..! 오늘 강의를 들으면서 떠오른 이야기들을 정리하여 '일하는 나'에 대해서, 보다 연속성을 갖고 길게 늘여서 써보려고 한다. 이번 글에서는 그에 대한 시작으로, 이번 컨퍼런스에 대한 전반적인 느낌과 각 세션의 핵심 내용을 정리한다.
리웍콘 세션에 본격적으로 들어가기도 전에 여기는 정말 좋을 것이라는 인상을 받았던 점이 몇 가지 있다. 하나는 참석자들에게 사전 공지로,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니 필요한 사람이 있으면 신청하라는 것이었다. 이럴수가! 컨퍼런스에, 그것도 '일'이라는 것을 고민하는 자리에 과연 '엄마'는 초대된 적이 있었는가, 하고 반성하게 되는 대목이었다. 주최 측이 얼마나 고민을 많이 하고 심혈을 기울여 준비한 행사인지 역시 알 수 있었다.
또 다른 한 가지는, 화장실 표지판에 있었던 '성중립'이라는 단어. 내가 사무실 건물에서 프린트된 '성중립'을 보게 되다니?! 이것도 굉장한 충격이었다. 이 공간에 스며있는 새삼스러운 젠더 감수성이 감동적이었다. 이 공간과 사람들의 선한 기운에 압도되었고, "사과는 과일이에요"라고 해도 감동 받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가장 먼저 찾은 세션은 <더 나은 노동을 위한 지혜> 였다. 송지혜 시사인 기자는 어떻게 하면 더 잘할까가 아니라, 어떻게 잘 버틸까 라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겉으로 봤을 때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서 '번듯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자기 자신 포함--지금은 왜 이렇게 이제는 퇴사하려고 애를 쓸까 궁금했다고 말했다. 지난 시간이 자기 자신의 120%를 쏟아부은 기자였다면, 5년차 정도에 번아웃을 한 번 지나고 나니 지금은 80% 만 하면서 '태만하기'를 실천하고 있다고 뒤 이야기를 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쟤는 싸가지가 없네'라고 말하더라도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한 태만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일상의 항상성을 지키기 위한 전략으로서의 태만을 그는 제시했다. 그리고 또 나라는 복잡한 사람을 조금 더 다단하게 표현해보라는 이야기를 했다. 시사인 기자 송지혜가 아니라, 스쿠버다이빙을 좋아하고 운동을 좋아하고 인디음악을 좋아하는 송지혜라고 계속해서 표현해보라는 것이다. '시사인'과 '기자'를 뺀 송지혜가 더 이상 약하기만 한 존재이지 않도록 말이다.
뒤를 이어서 황세원 LAB2050 연구실장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다른 나라의 한 직장 근속년도에 비하면, 정규직 타령하는 우리나라는 사실 초단기근속국가이다. 소위 말하는 좋은 정규직이란 전체 정규직 일자리의 7% 가량 밖에 되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를 소개하면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떠나서 정말로 '좋은 일'이라는 건 무엇인가 스스로 재정의해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고 피력했다. 그리고 저자들이 공저한 <자비없네 잡이없어>에서 2030세대를 대상으로 연구를 수행했고, 이 세대가 원하는 '좋은 일'이란 1) 내가 시간을 투자하면 전문가가 될 수 있도록 해주는 일, 2) 연차 휴가 등등과 별개로 내 일과 내 시간에 대한 통제력을 느끼게 해주는 일이었다고 밝혔다.
제현주님을 처음 알게 된 건, 얼마 전 읽은 <뒤에 올 여성들에게>에서였다. 읽으면서 영어로 바꾸었을 때 꽤 까다로웠을 것 같은 문장들을 많이 접했는데,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너무 번역을 잘해서 대체 번역을 누가 한 건가 봤더니 제현주 대표였다. 이런 이력을 가진 사람이 프로 번역가 보다 번역을 더 잘하다니, 범상한 분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오늘 강의를 듣고 나니 한 층 그 생각이 더 강해졌다.
오늘 세션은 홍진아님께서 모더레이터로 이끌어주셨다. 두 사람의 호흡이 굉장히 좋아서 보는 내내 편안하고 즐거웠다. 처음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현주님은, "일을 좋아한다는 것과 승진과 연봉 인상 같은 물질적인 욕망이 곧 일치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어서, 일을 좋아하고 잘하고 싶은 게 부끄러웠다. 그렇지만 그 세속적인 목적을 떠난 뒤에도 일을 좋아하고 열심히 하는 나 스스로를 발견했다. 그런 관점에서, 승진과 돈 등등을 덜어내고서 일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밝혔다. 이야기 꼭지 중에서 흥미로웠던 것 두 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살아 있는 인간은 언제나 미래를 더 나은 것으로 만드는 선택을 할 힘이 있다.
'나는'을 주어로 각자의 일 이야기하기,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이야기가 이어졌다. 인용된 책의 문구를 보면서, 이 문구가 노오오력을 해야 한다고 읽히지 않았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오랫동안 다녔던 회사를 포기한 뒤 그 어떤 곳에 속한 누군가가 아닌, 명함의 타이틀이 모두 지워진 한 사람으로서의 분투 결과라고 읽어주기를 바란다고. 일하다 보면 분명히, 조직에서 오는 구조적인 압박을 마주하게 되는 때가 온다. 그리고 언제나 그 안에서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은 분리된 또 하나의 층위로서 존재한다. 정말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고 느낄 때에도 사실은 내가 반드시 지키고 꾸려나가야 할 나만의 이야기라는 것은 별도로 존재한다는 이야기이다. '나'의 서사에 담길 이야기를 정립하고, 일하면서 발생하는 많은 일들을 엮어서 스스로의 경험으로 재구성하는, 즉 그럼으로써 나 스스로를 온전히 '주체'일 수 있도록 하는 연습이 필요하다고 그들은 말했다.
그리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 필요한 두 가지로 이어졌는데, 하나는 소소하고 확실한 성취를 만들어나가는 것이요, 둘째는 일의 큰 단위를 쪼개어 작은 단위로 만들고 일단 시작해보는 것이었다. 제현주 작가는 '소확성'에 대해 이야기하며, 이른바 운7기3의 세상인데 성공이라는 건 당연히 내 맘처럼 되는 것이고 그렇다면 작지만 늘 있는 성취들에 집중하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큰 프로젝트에서 대충 A, B, C, D 라는 일을 해야 할 때 일단은 A를 시작할 수 있는 힘, 그리고 그게 만약에 실패한다 해도 "나는 A를 해봤어"라고 스스로의 자원으로 만드는 시도가 의미 있다는 것이다. 숨이 조여 오는 것 같은 상황에서도, 우리는 언제나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전문성이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인정이라면,
탁월함은 자발적인 동기부여를 통해 스스로 쌓아가는 역량이다.
내가 정말 요즘 많이 고민하고 있는 부분이었다. 연차라는 것은 그냥 시간이 흐름에 따라 쌓여가는데, 과연 나는 그만큼 성장하였는가, 그렇다면 그것을 어떻게 증명할 것인가 등등. 더 오래 건강하게 일하기 위해서, 제현주님은 전문성과 탁월성이라는 것을 분리하여 생각하고 가꿀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전문성이라는 것은 외부적인 타이틀 때문에(예: 변호사 3년차) 으레 갖고 있겠거니 하는 능력이라면, 탁월함이라는 것은 오로지 같이 일을 해봤을 때에만 나타나는 '한끝'이다. 그 탁월함이라는 게 정말로 유의미한, 같이 일하고 싶은 사람의 특징이라고 생각한다고 이야기했다. 주어진 100은 누구나 다 해야 하는 일이지만, 늘 그 외에 숨겨놓은 마음속 궁금증 내지 아이디어 +10이 항상 있는 사람, 그 사람이 있음으로서 무언가 확실히 달라지는 한끝이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고도 말했다.
우리가 소위 말하는 '일 잘하는 사람'이란 대체 무얼까, 로 이야기가 옮겨갔다. 제현주님의 답변이 인상적이었다. 그는 일하는 사람에게는 늘 두 가지 차원이 같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시장에서의 가치와 개인의 가치이고, 일 잘하는 사람은 보통 이 두 전혀 다른 차원에서 균형을 잃지 않는 사람이라고 이야기했다. 시장의 가치는 말 그대로 자본주의 시장에서 효용이 있는 것을 뜻하는 반면 개인의 가치라면, 일하는 사람 본인은 어떤 걸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지, 본인에게 가치있는 게 뭔지를 뜻한다. 개인의 가치를 자폐적으로 가두지 않고, 그 가치가 시장에 나왔을 때 어떻게 효용을 갖는지 고민을 멈추지 않고 가꾸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다. 누가 긁어주었으면 했던 부분들이 생각보다 많이 해소되었다. 이걸 어떻게 하면 잘 구조화해서 정리할 수 있을까, 여기서 시간을 보낼 수 있게 해주신 분들을 위해 어떻게 글로 풀면 좋을까 고민이 많이 된다. 먼저 현장의 느낌과 내 벅참이 가시기 전에 나누고 싶어 이렇게 짧은 후기를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