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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전씨 Jul 06. 2024

미국에서 혼자 살기 외롭지 않냐, 가족편

영원한 그리움을 안고 살기

다른 나라에 사는 것은 영원한 그리움을 안고 사는 것이라고들 한다. 뭘 그리워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뭔가가 없는 채로 살아가니까. 미국에 온 지 2년이 되면서 사람들이 많이 물어보는 질문이 하나 있다. “외롭지 않느냐?” 이 질문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담겨 있는 것 같다. 이 외로움이라는 것에 대해서, 가족, 친구, 연인의 관점으로 깊이 살펴보겠다. 이 글은 가족에 대한 외로움을 생각해보려고 한다.


원가족만큼 이 세상에 복잡한 것이 또 있을까? 가족과 떨어져 있음에서 오는 외로움에 대한 나의 답은 간단하다. 약간 망설이며 no라고 대답할 것이다. 나는 가끔 엄마와 할머니의 뱃살을 그러 안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아빠와 밥을 먹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솔직히 그들을 눈물 나게 그리워하지는 않는다. 가족들과 아주 가까웠던 친구들은 상당히 힘들어하기도 하던데... 나는 한국에서도 자취를 오래 해서 부모님과 떨어져 사는 게 익숙하다. 사실, 이제는 혼자 사는 게 더 편하다.


우리 가족이 각별하고 다정다감하냐면 그렇지는 않다. 나도 동생도 떨어져 산지가 한참 돼서 솔직히 어색하다. 그래도 까르르 웃음소리가 나는 집이다. 그럼에도 내가 집에 있던 게 왜 불편했는지, 태평양을 건너와 살며 그들을 볼 수 '없는' 상태가 되니 적절한 거리감을 두고 생각해 볼 수 있게 된다.


나는 슬펐던 것이다. 나는 다른 사람들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자기 자신이 사라지고 다른 사람들만 남은 인간들 사이에서 자랐다. 친할머니, 외할머니, 아빠, 엄마. 자기 자신은 없고 다른 사람들의 인생을 생각하느라 자기 시간을 다 써버리는 그들이 미웠다. 그들은 늘 희생했기 때문에 나는 그들이 뭘 좋아하는지 잘 모른다. 그들을 아주 먼발치에서 바라보는 나는, 설명할 수 없는 슬픔에 젖어있다. 


그런 한편 그 어느 때보다도 그들을 더 사랑하게 된다. 나와는 너무나 다른 사람들을 만나면서, 내가 그들에게 '유산'으로 물려받은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기 때문이다. 아빠가 내 중학교 1학년 첫 중간고사, 인생에서 본시험 중 처음으로 성적표에 전교 등수가 매겨져 나오는 시험을 앞두고 "100점을 맞아와"가 아니라 "니가 포기하지 않고 힘닿는 데까지 했을 때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스스로 봐"라고 말해준 것, 엄마와 할머니와 목욕탕에 가면 늘 내가 살찐 나 자신을 부끄러워할 때 언제나 우리 딸이 제일 예쁘다고 말해준 것, 내가 먹고 싶다고 한 것을 기억하고 늘 저녁으로 해주던 것, 본인들의 인생이 힘들 때 도망가지 않고 정면으로 맞서는 모습을 보여준 것. 이것이 내가 가족들로부터 받은 것임을, 내가 외계인 같이 느껴지기도 하는 이곳에서 더 선명하게 느낀다.


그런데 최근에 할머니랑 이모가 미국에 와서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낼 일이 있었다. 그 경험은 기쁨과 동시에 약간의 괴로움도 가져다줬다. 이 시간 동안 나는 내가 한국을 떠나야 했던 이유를 다시금, 잔잔하지만 꽤 명확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들과 함께 하는 시간은 더할 나위 없이 즐거웠다. 그렇지만 불편함이 있었다. 우리 모두가 이 상황에서의 '쓸모'에 대해 생각하는 것 같았고, 각자 피해 주지 않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 같으면서 또 그것을 전혀 생각하지 않는 것 같기도 했다. 이모와 할머니는 항상 바지란 떨며 무언가를 하고 있고,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려고 노력한다. 그런 한편 할머니는 내 서랍이나 편지, 지갑 등을 뒤지며 마치 당연한 일인 양 행동했고 이모는 남들 흠을 잡았고 이 세상의 모든 것에 대해 걱정했다. 그렇지만 그들이 웃을 때, 그들이 장난을 칠 때, 그들이 아름다운 것을 보고 진심으로 경탄할 때, 미국 공원에서 한국 나물들을 찾아낼 때, 언젠가는 미국에 와서 김밥을 팔겠다고 할 때 나는 내가 그들을 가슴 깊이 사랑하고 있음을 알았다.


이 짧은 글들에서도 드러나듯, 가족을 생각하면 슬퍼졌다가 눈물이 차오를 정도로 그들에 대한 사랑을 느끼다가 혐오에 가까운 느낌을 받다가 또 다시 사랑하게 된다. 외로움은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나지 못함, 괴로움은 만나기 싫은 사람을 만나야 함이라고 할 때 해외에 사는 것은.. 재미있게도 최소 나에게는 가족들과 사이를 더 좋게 해 준 것 같다. 영원한 그리움이 순기능이 될 때도 있다는 것을 배운다.


P.S. 그들과 떨어져 사는 것이 사무치는 순간도 있다. 그리고 그 경험에 대해서는 한 번 쓴 적이 있다. 이 글에 등장한 삼촌은 한 달 전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인생이 가끔은 정말 블랙코미디 같다고 느껴진다. 

https://brunch.co.kr/@jiwon3889/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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