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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전씨 Sep 08. 2024

I 90% 내향인, 미국에서 친구 사귀기

친구 잘 사귀고 잘 산다는 얘기는 못 되는, 강제 외향인의 생존기

나는 외향인으로 오해받는 내향인이다. 아래 내용을 쓰다 보니 내가 생각하기에도 내향인 아닌가 싶기는 한데... 모든 인간과의 상호작용 이후의 내 에너지 레벨은 생각해 보면 나는 내향인인 것 같다. 일단 그렇다.


1. 업에서는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갖는 것이 자산이다 보니, "다음에 점심 식사 한 번 하시죠"라고 제안하는 것이 말버릇이 되었다. 그냥 그러고 어물쩍 넘어갈 수 있으면 좋으련만 내뱉은 그 말에 책임을 지지 않고서는 배길 수가 없었다. 나는 그래서 자연스럽게 처음 만나는 사람과 최대한 어색하지 않게 대화를 시작할 수 있는 기술이 생겼다. 외향+1

2. 내가 하는 일은 본질적으로 내가 가진 정보를 잘 구조화해서 상대방에게 전달하고 내가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프로젝트를 끌어가야 하는 일이다. 이 짧은 문장에서도 '내'가 세 번이나 등장한 것처럼, 나는 일하고 있을 때 늘 존재감을 드러내고 사람들을 통솔해야 한다. 외향+1

3. 서은국 교수의 저서 <행복의 기원>에서는 사람에게 가장 즐거운 자극이 타인이라고 말한다. 나에게는 정말 그렇다. 내가 가장 깊이 즐거웠던 순간들을 생각해 보면, 1/ 정말 순수한 궁금증과 열린 마음으로 독서모임을 하던 때, 2/ 같이 한 주제로 공부하고 토론하던 대학 수업들과 스터디모임들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 즐거운 자극(?)들을 위해서 모임을 만들고 운영하는 것을 아주 어렸을 때부터 해왔고 지금도 하고 있다. 외향 +1

4. 그래서일까? 진짜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나는 대게 불러줘야 자리에 나가는 사람이었다. 고맙게도 내 주변에는 늘 만나자고 해주는 친구들이 있었다. 관계가 깊어져서 내가 자연스럽게 종종 그들이 보고 싶은 마음이 들 때면 그때서야 연락을 하고는 했었다. 외향 -1

5. 이렇게 일과 모임과 친구들과 지내는 생활을 하다가 나에게 남는 시간이 있으면 나는 무조건 그 시간을 혼자 보냈다. 외향-1?



뭐 나의 기본적 성향은 그렇고. 처음에 미국에 오는 것이 결정되었을 때는 여기에서의 생활에 대한 어떤 기대도 환상도 없었다. 인생의 너무 큰 변화 앞에서는 신기하리만치 말도 생각도 없어졌다. 그래서 내가 얼마나 좋은 친구들, 평생 일궈온 서포트 시스템을 두고 가는지에 대해서도 충분히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런데 너무 당연히도 20대 후반, 30대 초반에 동료나 지인이 아니라 '친구'를 만들기는 이미 이 자체로 너무 힘든 일이었다. 2년 전, 나는 미국 상공에 갑자기 똑 떨어진 것과 진배없었다. 학교에 다녔다면 자연스럽게 수업을 같이 듣는 친구들이 생겼을 것이고, 가족이 있었다면 그들을 통해서 친구를 만났을 것이고, 아이가 있다면 아이의 커뮤니티를 통해 친구를 만났을 수도 있었겠지만, 직장을 통해(심지어 주재원도 아니고) 나 혼자 덜렁 미국에 왔기 때문이다. 채집과 수렵의 시절, 다른 사람과 함께 있어야만 생존할 수 있었던 이들의 후손인 것을 증명하는 것처럼 나는 미국에서 훨씬 더 생존형 외향인이 되었다. "살기 위해서는 친구를 만들어야 해!"라고 생각한 것도 아닌데 본능적으로 사람들을 찾아 나섰다.


다행인 점이 있다면 시애틀은 나 같이 커리어 하나만 보고 이사 온 young professional 이 많다는 것이다. 학부, 대학원을 졸업하고 곧장 온 사람도 많고 다른 지역에서 이사 온 사람도 많고 기본적으로 transplant 가 많다. 그래서 사실 처음에 적응하고 새로운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게 미국 다른 도시들에 비해 크게 어렵지는 않았다. 링크드인을 통해 나랑 비슷한 백그라운드가 있으면서 시애틀 도심에 사는 것 같은 분들한테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고, 다른 회사 동료를 통해 아는 분들을 만나기도 했고, 이렇게 알게 된 친구들을 통해 다른 친구들을 소개받기도 하고, 그렇게 하게 된 뒤에 그 사람들을 모아 다 같이 만나기도 하고, 회사 채널에 스터디를 모집해보기도 하고. 한국에서 그렇게 술문화와 모임 문화를 즐겼던 것은 아닌데도 외롭기는 하다. 외롭지만 또 새로운 재미가 있다.


이 과정에서 내가 깨달은 것들은 이렇다.

1.  혼자서는 생존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내가 외롭다는 사실 역시 받아들여야 한다. 나는 이걸 받아들이는 것 자체가 도전이었던 것 같다. 나는 내가 잘 살고 있다면 외로워서는 안 되고 혼자서도 즐거워야 하고 우정이든 사랑이든 어떤 관계를 갈구해서는 안된다는 일종의 강박이 있었던 것 같다. 근데 그 누구도 혼자 살 수 없고, 미국에서 살기로 결정한 이상 나는 나 스스로를 독립자로 세상에 던진 것이다. 외로운 것은 너무 당연하다.

2. 사실 한국에서였으면 공통분모가 별로 없어서 친구가 되지 못했을 사람들인데도, 비슷한 연령대의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친구가 되기도 한다. 한국 대비 '다름'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다면 여기서는 친구를 사귈 수 없다.

3. 느슨한 관계를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내게 우정은 상당히 타이트했던 것 같다. 10시간 이상 같이 앉아 있었던 고등학교 친구들, 주 5일 8시간은 무조건 함께 있는 회사 친구들, 매일 같이 주고받는 연락, 갑자기 뭔가 당기면 수시로 치던 번개, 어느 동네에 가면 무조건 했던 연락... 이걸 여기서 가질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성인이 된 이후의 관계에서는 이 정도의 타이트함은 지속가능하지 않은 것 같다. 한 달에 한 번 봐도 편안하고 좋은 그 느슨함, 그리고 그 사이 여백에서 나 스스로 즐거움을 찾을 수 있는 여유가 필요했다.

4. 그만큼 우정을 지속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의식적으로 먼저 연락을 하고, 의식적으로 서로를 위해 시간을 내고, 의식적으로 함께 보내는 시간을 계획하고. 내가 할 거 다 하고 남는 시간에 친구를 생각하는 게 아니라, 친구를 위한 내 마음속 공간을 계속 확보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내가 요즘 하는 고민은, 아무래도 내 네트워크인 회사를 기준으로 친구 관계가 뻗어져나가다 보니 + 아무래도 마음이 맞는 사람들이 한국인이다 보니 거의 한국인 친구들 밖에 없는데 그래도 될까 하는 것이다. 몸은 미국에 있지만 작은 한국 속에서 살고 있는 걸까 싶기도 하고. 어떻게 더 다양한 인종과 문화의 친구들을 사귈 수 있을까 하는 점이 좀 고민스럽다. 내년에는 좀 더 좋은 답을 갖고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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