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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전씨 Jun 30. 2024

인종차별 당해본 적 있어?

미국 생활 3년차의 인종적 경험

한국에서는 역사 얘기를 하지 않는 이상, 나의 경우 내가 한국인이라는 자각을 아주 활발히 갖고 살지는 않았던 것 같다. 미국에 와서 나의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이 나라는 인간 전면에 나오게 되면서 다양한 생각을 하게 된다. 오징어 게임을 보지 않고 K 드라마를 보지 않고, 솔로지옥도 본 적 없지만 한국을 떠나 살아본 것은 이번이 처음인 토종 한국인으로서, 나의 지난 2년 간에 인종적 경험에 대해서 써 보고 싶다.


인종 차별이란 뭘까

사람들이 "인종차별 당해봤어?"라고 물어볼 때 여기에서의 인종차별이란 뭘까? 대충 세 가지 종류로 나뉘는 것 같다.

1. 미디어에 등장하는 아주 가시적인 멸시 - 예, 식당에서 이상한 대우를 받음.

2. 길가에서 듣는 웃기지도 않는 소리 - 고 백 투 차이나 or 너는 무슨 아시안이야?

3. "어 이거 지금 인종차별인가?" 싶은 잔잔한 소외 - 너무 사소 해서 사실 나도 조금 의식적으로 다듬어 보지 않으면 까먹게 되는 가랑비형 인종차별이 있다


사실 1번과 2번 같이 명백한, 서러워서 울게 되는 종류의 차별은 듣는 사람의 인종이 무엇이든 관계 없이 모두가 같이 욕해 준다. 어떤 사회 집단에 속해있냐에 따라 또 다르겠지만, 그 정도의 사회적 도덕 수준은 보통 미국에 갖추어진 것 같다. 그래서 그 경험을 스스로 정리 하고 넘어 가는데 크게 어려움이 없다. 그냥 진짜 똥 밟았네 라고 하는 건조한 수준으로 넘어 갈 수 있는 것 같다. 이것들을 내가 실제로 경험해본 적 있냐고 하면, 딱 한 번 길을 걸어가는데 어떤 홈리스가 쫓아와서 너 중국 사람이냐, 한국 사람이냐 물어본 적이 있다. 그것 말고는 운이 좋은 것인지 겪어본 적이 없다.


회사에서의 가랑비형 인종차별

그렇지만 가장 힘든 것은 3번 같은 오묘한 인종차별이다. 인종차별이라는 것이 대단한 제도적 차별과 물리적 폭력으로만 경험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잔잔하게 이해 받지 못하는 경험, 배려 받지 못하는 순간들, 무지성을 부끄럼없이 뱉어내는 사람들을 외면해야 하는 경험들이 켜켜이 쌓여 shut down 하게 된다. 말 그대로 가랑비에 옷 젖듯 내 정체성으로 흡수되는 수동적 인종차별이 있다. 모르면 그냥 조용히 있으면 될 텐데 괜히 알지도 못하면서 말을 한 마디 얹는 것, 한국/중국/일본이 다 똑같다고 생각하는 것 등등 종류는 다양하다.


회사에서의 예시를 들어보자면... 유색인종 여성 리더들에 대해서 저 사람은 본인의 인종적/성적 정체성 때문에 저자리 있는 것이라고 은연 중 암시 하는 말들을 듣게 될 때, 그리고 어떤 특정 포지션에는 거의 무조건 백인만 있을 때, 어떤 특정 포지션에 해당 하는 사람들을 모이는 자리에 나만 동양인일때, 전체 조직 미팅에 갔는데 동양인이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때 이럴 때가 그런 묘한 불편한 순간들이다. 이상하고 불편하기는 한데 뭐라고 딱 꼬집어서 이야기 하기는 어려운 그런 상황. 이런 상황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 하면 어떤 교과서적인 답변이 들어올지 나는 정말 잘 알고 있다. 해봤기 때문이다. 어떤 자격 요건에 의해서 채용을 하다 보니 이렇게 된 것이지, 차별의 의도는 없었으며, 이미 기존에 존재하는 시장 풀에서 다양한 인종의 후보자들이 없었기 때문에 이렇게 된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또 다른 긴가민가한 것들을 열거해보자면 이런 것들이 있다. 일단 한국인과 우리 동양 문화를 생각해볼때, 영어가 편치 않은 것은 기본이요, 자신의 영어 실력을 창피해하는 경우도 많은 데다가, 어떤 자리에서 크게 말하는 것 나서는 것 자체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 문화인데, 이 모든 것들을 다 극복해야 겨우 한 사회의 '기본값'이 될 수 있다면? 회사에서 동료들과 담소를 나눌 때, 늘 대화가 놀랍도록 특정 사람들 위주로만 돌아 간다면? 내가 전혀 납득할 수 없는 미국 대중 문화에 대한 주제(스포츠, 리얼리티 TV쇼, 어렸을 때 봤던 만화 등) 가지고 네트워킹 이루어진다면? 이런 것들은 인종 차별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아니라고 하기에는 조금 억울하고, 그렇다고 하기에는 억지인가 싶기도 하고.


이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나

이런 것들을 2년 넘게 겪은 나는 이렇다. 아래 인용문이 내 경험을 완벽하게 요약해준다.

모든 사회적 신호를 박탈당해 나의 행동을 타인과의 관계에 비추어 가늠할 수단이 없으니 유령 취급을 당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래서 나는 어떻게 행동하면 좋았을지, 무슨 말을 하면 좋았을지 내 생각을 샅샅이 점검한다. 내가 보는 것, 내가 듣는 것을 신뢰하지 못한다. 자아는 자유 낙하하는데 초자아는 무한대로 커져서, 나라는 존재는 부족하다고, 결코 충분치 못하다고 다그친다. 그러므로 더 잘하고, 더 잘되려고 강박적으로 노력하며, 자기 이익이라는 이 나라의 복음성가를 맹목적으로 따라 부르고, 내 순가치를 늘려 내 개인적 가치를 입증해 보이는 짓을 이 세상에서 사라질 때까지 계속한다.
- <마이너 필링> 캐시 박 홍

사회적 신호가 없다는 것이 아주 적확한 표현이다. 기본적으로 내가 형성해온 자아 개념과 너무나도 다른 기준으로 사람들이 나를 바라보고, 나는 그 기준을 전혀 모르기 때문에 내가 어떻게 비추어지는지 전혀 알 수가 없다. 그 어느 때보다 미디어의 폭력적인 발언들과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하는 말, 그들이 나를 평가하는 방식, 그들의 의견에 훨씬 더 취약해진다. 속이 시끄러우니 그냥 일단 최대한 잘 보이기로, 내가 잘하는 것을 더 잘하기로 결심한다. 내 순가치를 폭발적으로 늘리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는 한편, 나는 나 스스로를 가랑비적 인종차별 경험에서 방어하기 위해 마음을 닫기 시작했다. "저 백인 남자들이 날 이해할 수 있을리 없어." 내 문화에 대한 무지를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되는 백인 남자 리더들을 볼 때마다 이런 생각이 자동으로 들었다. 마음과 함께 입도 닫았다. 하고 싶은 말은 있지만 입 밖으로 내지 않는다. 그 말들이 내 안에 쌓인다. 이게 나한테 좋을리가 없다.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런 아저씨들처럼 임원 같이 높은 자리에 오르려면, 이정도의 감수성을 가지는 것이 ‘노력’인데 당연히 다른 비즈니스 과제들이 비해 우선순위가 떨어지는 노력이 된다. 그럴 수록 내가 더 성공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그것이 다 무슨 소용이 있나 싶기도 하고 하루에도 마음이 열두 번 바뀐다.


미국 생활 2년 3개월 차에 접어드는 지금은, 나 자신을 위해 이런 인종에 대한 예민성을 약간은 접어두기로 했다. 이 예민성은, 내 현실에서 인종차별적 경험에 무뎌지겠다기 보다는 그것에 대한 나의 대응을 달리 하겠다는 것에 가깝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1. 나는 '주류' 미국인들에게 counter racism 을 갖지 않을 것이다. 예를 들면 "저 백인 아저씨가 내 어려움을 뭘 알겠어"라는 식으로 말이다. 내 정신 건강과 성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많은 상황에서 나는 그들의 마음을 사야 한다. 나는 전략적으로 그들과 대화해야 하고, 내 문화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사실 돌이켜보면 꽤 많은 사람들이 정말로 모르고 가르쳐주면 배울 의지가 있는 사람들이기도 했고, 나를 진심으로 많이 도와주기도 했었다. 결과적으로 내 마음을 닫는 것은 내 손해이다. 그래서 counter racism 에서 의식적으로 벗어나려고 노력하고 있다.


2. 나는 그 어떤 인종에 대해서도 일반화 하는 발언을 하지 않을 것이다. 미국에 사는 한국 친구들의 인종 차별적 발언을 너무 많이 들으면서 그 위선을 참을 수 없게 되었다. 대체로 그 발언은 중국이나 인도를 향한다. 백인들은 닮고 싶은 것인지 그들이 사회적으로 우위에 있다고 생각해서인지 입에 담지 않고, 흑인은 상대적으로 덜 만나게 되어서인지 전통적으로 인권 운동에 힘써온 사회 집단이어서 그런 것인지 언급하지 않고.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인종으로 일반화되는 어떤 발언을 들을 때, 자꾸 미러링이 된다. 모든 사건을 인종으로 이해하는 것을 의식적으로 멈추려고 한다. 어디에서건 무슨 상황에서건 이해를 포기하는 순간부터가 차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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