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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전씨 Nov 11. 2024

미국에서 2년 반, 국제 연애 르포

외롭지 않냐 - 미국에서 연애하기

미국에서 연애하는 것은 때로는 너무 쉽게 느껴지면서도 끝없이 어렵게 느껴진다. 데이트를 시작하는 것은 아주 쉽다. 앱에 가입하고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 ‘좋아요’를 누르고, 문자로 대화를 이어가다가, 서로 마음이 맞으면 다음 데이트, 또 그다음 데이트로 이어진다. Situationship 같은 복잡한 문화 때문에 진지한 연애가 어려운 건 나도 경험했지만, 일단 데이팅 시장에 들어가고 싶다면 진입 자체는 아주 쉽다. 하지만 다양한 사람들과 겪은 시츄에이션쉽, 진지한 연애, 몇 번의 데이트, 혹은 첫 만남만 하고 남이 되는 등의 경험을 통해 깨달은 것은, 인종 문제와 자신의 문화적 수용력을 이해하지 않으면 의미 있는 연애를 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것, 상대가 원하는 것, 그리고 우리가 함께할 미래, 이것만으로도 이미 머리가 아픈 삼차 방정식인데, 여기에 인종 문제까지 더해진다. 마치 대학 입시 범위가 확률과 통계인 줄 알고 공부했는데, 갑자기 미적분이 추가된 느낌이다. (12학번 소리질러)


어떤 상황으로 낯선 나라에 살게 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처럼 어느날 별안간 그냥 생면부지 남뿐인 나라에서 자리 잡고 살게 되는 경우 우리는 한 인간으로서 너무도 취약한 상황이 된다. 내가 절벽에서 떨어지는 것 같을 때, 날 잡아주는 손 하나만 있으면 그래도 갈 수 있을 것 같은데 그 손 하나가 없을 때, 근데 이런 상황에 있기로 선택한 것이 나 스스로라서 그 누구도 탓할 수가 없을 때, 정말 이 세상에 단독자로 왔다는 사실이 피부를 뚫고 내게 전해지는 느낌이다. 고백하자면 나는 미국에 사는 내내 내가 혼자인 게 너무 무섭고 불완전하게 느껴졌고, 내가 안정되기 위해서는 짝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내 안에 깊은 곳에 뱀처럼 또아리를 틀고 있었다. 너무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사실이다. 그래서 연애에서 유독 실수를 많이 했다. 지난 2년 반을 돌아보면 여러 실수가 있었다.


첫째, 그 사람이 좋아서가 아니라 외로워서 사람을 만났다. 처음 사귄 남자친구는 정말 다정한, 나와 거의 비슷하게 다른 나라에서 이주해와서 새롭게 터를 잡고 있는 사람이었다. 내가 미국으로 이사온지 한 달 만에 만난 사람이었고, 만나기 시작한지 한 달 만에 진지하게 사귀는 사이가 됐다. 처음부터 이런 정도의 호감으로 사귀는 게 맞나 의심이 들었지만 뭐 사람들이 여자는 남자가 더 좋아하는 연애를 하는 게 좋다고 하니 한 번 해보자는 생각이었다. 초반에는 재미있었다. 비슷한듯 너무 다른 문화권에서 온 그를 공부하고 함께 새로운 터전을 개척해나가는 것이 재미있었다. 새로운 자극으로 샤워를 하는 기분. 그렇지만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그가 무심코 하는 말들이 거슬릴 때도 많았고 너무 다른 문화 때문에 앞으로 우리가 어떤 미래를 함께 할 수 있을지 의문도 들었다. 우리가 같이 살게 된다고 하면, 아주 작게는 완전히 채식주의자인 그의 가족이 그 집에 왔을 때 냉장고 속 내 소고기 미역국은 어떻게 할 것인지, 더 크게는 종교가 없는 데다가 인종까지 다른 내가 아주 독실한 그의 부모님에게 승인 받을 수 있을지 등 대답하기 어려운 문제들이 너무도 많았다. 게다가 둘 다 비자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었던 점도 피로하게 느껴졌다. 함께 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미국인들이 스몰토크를 할 때 어떻게 할지, 팁은 얼마나 줄지, 택스는 어떻게 하는게 좋은지 같은 아주 작은 순간들이 피로하게 느껴졌다. 여러 차례 헤어지려고 시도했다. 그렇지만 정말 혼자가 될 거라는 사실은 상상을 초월하게 무서웠다. 더 이상 내가 이사할 때 도와줄 사람도 없고, 내가 아플 때 병원에 실어다줄 사람도 없고, 내가 장을 봐야 할 때 데려다줄 사람도 없고, 무거운 걸 들어야 할 때 같이 들어줄 사람도 없다는 사실이 견딜 수 없이 두려웠다. 그렇지만 결국 내 마음 속의 사랑이 마침내 거덜이 나서 우리는 헤어졌다.


둘째, 충분히 상대를 알아보지 않은 상태에서 너무 빨리 혼자 빠져들었다. 미국에서의 첫 진지한 연애가 끝나고 ‘미국인‘을 만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외국인으로서 살아가는 게 녹록지 않음을 1년 반 정도 느낀 뒤였다. 나 혼자 외국인으로서 나 자신을 거두는 것도 충분히 어려우니, 상대방은 그런 어려움이 없었으면 좋겠고 내가 이 미국 사회로 잘 진입할 수 있게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다가 너무도 내가 좋아하는 외모의, 내가 너무 좋아하는 특성들을 모두 갖춘 미국인이 하늘에서 똑 떨어졌다. 이렇게 사회적 정체성으로만 납작하게 눌러 말하기에는 억울할 정도로 우리는 너무도 비슷한 결의 결핍을 갖고 있었다. 나는 자연스럽게 짧은 시간 동안 우리가 앞으로 어떤 모습일지 상상하며 그에게 풀악셀을 밟고 빠져들었다. 그와 사귀는 동안 나는 사랑과 건강하지 않은 희생의 경계는 어딜까 계속 생각하게 됐다. 막판에 나는 관계를 이어가기 위해서 맘에 들지 않는 점도 최대한 참았다. 더 원해도 참았다. 그 과정에서 자꾸 불안해져도, 커져가는 내 마음과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에 잡아 먹힌 듯한 날들도 그저 참았다. 나는 원래 인내심이 좀 부족하니, 이건 내가 더 좋은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이라고 나 자신을 세뇌했다. 그렇지만 아무리 다른 사람이 되려고 노력해도 결국 나는 그저 나일 수밖에 없어서 헤어졌다. 이번 이별은 유독 더 힘들었는데, 거기에는 그에 대한 나의 사랑 외에도 아주 많은 나의 욕망들이 얽혀있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그 사람을 마침내 행복하게 해줄 수 있을거라는 이타성의 가면을 쓴 이기적 희망, 미국 사회와의 연결고리, 내가 부르면 언제든 닿을 수 있는 존재가 있다는 안정감, 물리적으로 안전하다는 느낌, 어떤 sense of community 등 그 가지 수를 셀 수 없었다. 그 욕망들이 내 마음 속에서 차지하고 있던 부피는 앞으로 시간이 얼마가 흐르든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이 글을 만약 그가 읽는다면, 이런 내 욕망을 한 사람이 다 채워줄 수 있을리는 절대 없으므로 결국 우리는 안될 수밖에 없었을 테니 죄책감 갖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다.)


셋째, 인종적 다양성을 받아들이고 직업과 사회적 배경의 귀천 없이 한 사람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는 나의 교과서적 도덕 관념과 나 자신이 소수자라는 정체감이 더해지면서 나에게 맞는 사람을 잘 선별하지 못했다. 내가 기본적으로 호기심이 많은 것도 한 몫 했겠지만, 다양한 인종, 그것보다 더 다양한 직업, 나와 너무도 다른 생애주기에 있는 사람, 다양한 성적 지향의 사람들을 만났다. 다양성을 받아들이고 실제 내 삶 속에서 진정으로 존중하는 방법을 고민하는 것은 21세기를 사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다. 게다가 내가 그 ‘다양성’에 포함되는 사람임을 점점 더 강하게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더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 한 편 나는 그리고 직업과 사회경제적 지위가 정말 균일한 사람들(빅테크에 근무하는 한국인)만 만나며 지내고 있었기 때문에 다양한 사람들을 더 만나고 싶다는 열망이 있었다. 그리고 이 믿음과 행동 철칙은 변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내가 내 삶의 정말 많은 부분을 공유해야 하는 파트너를 전제로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내 행동 일거수일투족을 모두 설명할 수 있을까, 내 일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뻔히 아는데 상대방이 나에게 해주는 격려의 말들에 위로를 받을 수 있을까, 나는 9-5 사무직이 아닌 사람의 생활 패턴을 이해할 수 있을까 이런 의문들이 피어올랐다. 여전히 답은 내리지 못했다.




길게 말했지만, 미국에 이주해와서 시행착오 없이 건강한 연애를 하기는 정말 어려운 것 같다. 우리는 약해지기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사랑 후에 오는 것들> 드라마의 한 에피소드가 자꾸 쇼츠로 알고리즘에 떴다. 한국인인 이세영이 일본에 가서 살며 만난 일본인 남자친구와 함께 살게 되는데, 그가 일 때문에 자꾸 이세영을 혼자 두고 외롭게 하는 상황이었다. 이 때문에 실갱이를 하는 상황에서 이세영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혼자 두지 말라고 했잖아, 여기는 외국이고 니가 없으면 나는 혼자란 말이야”라고 한국어로 폭발하는 장면이 나왔다. 한가하게 목욜을 하다가 봤는데 그 장면을 계속 돌려보면서 목 놓아 울었다. 내가 자존심이 상해서 차마 입으로 뱉지 못했던 말이, 내가 이번 여름 내내 너무 힘들었던 이유가 스크린에서 남의 입을 통해서 흘러나와서 내 안의 둑이 무너진 것 같았다. 더 이상 부정할 수가 없었다. 나는 너무 약하고 외롭고 찌질하고 세상에 홀로 남겨진 것 같았다.


꽤 긴 방황을 하고 있는 지금, 내가 나 자신을 위해 바라는 것들은 명료해진다. 나는 내 불안과 insecurity 와 외로움과 고독보다 강한 존재라는 것을 잊지 않는 것. 내가 느끼는 감정들을, 내 요구들을 미안해하지 않는 것. 내가 모든 걸 다 보여줬을 때 도망가는 사람에게 나를 사랑해달라고 애걸복걸하지 않는 것, 앞으로 가지는 못해도 후진은 하지 않을 것, 지금처럼 못난 소리하는 것을 두려워 않을 것, 연애라는 도구를 통해 얻고자 했던 것들을 스스로 책임지고 찾을 것, 내 삶의 주도권을 다시 찾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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