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리즈는 제가 1-2월에 약 50분과 커피챗을 하면서 자주 들었던 질문들에 대한 답을 글로 남기기 위해 시작됐습니다. 30분씩 50분과의 대화, 더 길어진 대화도 있었고 사석으로 이어진 인연도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시리즈는 거칠게 말하면 약 30시간의 대화의 기록인 것입니다. 4월 말에 쓰기 시작했고 7월에 마칠 계획이었지만, 너무 게으른 것 50%, 제 인생이 제 스스로도 쫓아가기 어려울 정도의 속도로 계속 바뀌어나가서 그것을 스스로 소화하는 데 시간이 걸린 것 50%의 이유로 11월이 되어서야 이 시리즈의 마지막 글을 씁니다. 제가 9편의 글을 통해 답하고자 했던 것은, '미국에 사는 것 어때'라는 단 하나의 질문이었습니다. 이 글에 도착하기 전까지, '미국에 사는 것'을 경제적 측면, 일, 우정, 사랑으로 구조화하여 답해보고자 했습니다. 이 거대한 질문에 대한 마지막 답으로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아, 사실 '답'은 아닐 것 같습니다. 아직도 이 정체성에 대해서는 답을 못 찾았고 앞으로도 못 찾을 것 같거든요.
저는 늘 ‘사이’에 있었습니다. 어릴 때는 착하다기에는 욕심이 많았고, 공부를 잘한다기에는 수업 태도가 불량했고, 재미있다기에는 얼굴이 쉽게 빨개졌습니다. 지금은 개발자라기에는 개발을 너무 안 하고, 영업이라기에는 숫기가 없고, 시니어라기에는 너무 경력이 없고 주니어라기에는 너무 경력이 깁니다. 여러모로 제가 하는 일, 제 성격 등 저 자신에 대해서 설명해야 할 때만큼 곤란한 때가 또 없습니다. 미국에 살기 시작하면서는 한층 더 복잡해졌습니다. 저는 한국인의 정체성을 가지고 미국에 살면서 잠자는 시간 제외 하루 50% 이상을 영어를 말하며 살죠. 그렇지만 인스타는 한국어로 올리고, 브런치도 한국어로 쓰고, 책도 한국어로 된 책만 읽고, 친구도 한국인들 밖에 없습니다. 여기의 생활에 대해서 세상에 말하고 싶을 때, 제가 생각하는 청자/독자들은 한국에 있습니다. 그래서 이 글도 한글로 쓰였죠. 제가 해결하도록 돕고 싶은 사회 문제, 저를 가슴 아프게 하는 이야기들 역시 한국에 있습니다.
아니 그러면 한국에 가서 살지 싶지만서도, 저는 슬프게도 한국에 돌아가서 잘 살 자신이 점점 사라집니다. 사실 한국에 일 년에 한 번씩 돌아갈 때마다 제가 한국에서 사는 게 안 맞았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태어나고 자란 곳이 사실은 저한테 안 맞는 곳이라니 어이가 없기는 하지만요. 모두가 다 같이 하나의 점으로 수렴해가려고 하는, 미친듯이 열심히 사는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다시 살아갈 자신이 없습니다. 그리고 비한국인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한층 더 “어 나 좀 한국인이 아닌가” 혹은 “덜 한국인인가” 싶은 생각이 드는 때도 많습니다. 저는 기억도 안 나는 아주 오랜 옛날부터 김치를 안 먹었고, BTS와 블랙핑크를 좋아하지도 않고, K드라마도 그다지 많이 보지 않고, 기생충을 그렇게 좋아하지도 않았고, 오징어게임은 아직 안 봤고 앞으로도 별로 볼 생각이 없습니다. 월드컵이나 올림픽을 볼 때 한국팀의 성적이 좋다고 가슴이 뜨거워지지도 않습니다. 게다가 이제는 미국 대통령이 누가 되느냐가 한국 대통령이 누가 되느냐 보다 더 중요한 삶을 살고 있죠. 여기서 영원히 거주할 수 있는 자격을 획득하고자 노력하는 사람으로서, 저는 한국인인 것 같기도 아닌 것 같기도 하다는 기묘한 느낌을 종종 받습니다.
매일 "나는 뭐지?" 생각하게 되지만, 여기에 와서 약 2.5년 동안 명확해진 것은 있습니다. 저는 한국어를 읽고 쓰고, 영어를 듣고 말하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읽고 쓰는 것은 듣고 말하는 것에 비해 훨씬 더 내면에 닿아 있는 언어활동입니다. 몇 번이고 다시 읽을 수 있고 몇 번이고 고쳐쓸 수 있는 반면, 듣고 말하는 것은 순발력이 훨씬 더 요구되기 때문입니다. 영어로 듣고 말하고 읽고 쓰는 부분이 더 늘어나면, 저는 조금 더 적극적이고 자신감 넘치는 제 영어 자아와 비슷해지겠죠. 그리고 아마도 저 혼자만이 이해할 수 있는, 한국어로 읽고 쓰는 방은 영원히 제게 남아 있겠지만 더 작아질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여전히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별 헤는 밤>의 아름다움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을 사랑할 수 있을까요? 최은영, 천선란 같은 작가들의 소설을 읽을 수 없는 사람과 평생 살 수 있을까요? 제가 한국 문학의 아름다운 세계를 영어로 온전히 설명할 수 있는 날이 올까요? 그런 한편, 제가 살고자 하는 이곳에서 안정감을 줄 수 있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미국 문화에 대해 속속들이 설명해주는 사람에게 빠지지 않을 요령이 있을까요? 디아스포라 그 잡채인 2.5년의 정체성 이야기였습니다.
쪽글 1: 제 영어를 쓰는 자아는 프로페셔널한 세팅에서 사용되도록 훈련되어 왔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한 가장 영어 공부를 열심히 했었던 때는 TOEFL을 죽도록 팠고, 그 뒤로는 대학 전공 논문을 읽었고, 그 뒤로는 회사에서 비즈니스 상황에서만 영어를 써왔습니다. 그래서 제 영어 자아는 자연스럽게 공적 영역을 기반으로 발달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유리한 방식으로 계발되었달까요? 저는 상황을 주도해야 하는 경우가 많은 일을 하다 보니 (발표, 회의 진행 등), 영어를 말할 때 훨씬 더 높은 에너지 레벨로 말합니다. 그래서 한국어로 말할 때보다 훨씬 더 자신감 있고 에너지가 넘치다는 피드백을 듣게 됩니다. 반면에 한국어로 말할 때에는 훨씬 더 조심스럽습니다. 예전에 비한국인 연인과 함께 있을 때 한국인 지인을 만나게 되는 일이 있었는데, 한국어를 하는 제 제스처와 태도 자체가 너무 달라서 엄청 놀라 했었던 것이 생각나네요.
쪽글 2: 직업인으로서 나의 한가운데에는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 봅니다. 많은 엔지니어들이 Problem solver라고 자신을 소개하죠. 그런데 저는 아주 오랫동안 제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Problem solver는 아니라는 걸 확실히 알았습니다. 내가 해결할 수 있는 아주 정확하게 스콥 다운된 문제라는 건 세상에 별로 없다고 생각해서였고, 그런 문제들이 제 앞에 놓여있다고 해도 그것들에 크게 감명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소설만 읽고 모두가 싫어하는 narrative 쓰는 것을 즐기는 것, '비즈니스 임팩트'에 관계없이 나와 고객에게 중요한 문제를 좇게 되는 것을 돌이켜보며 제 안 깊은 곳에는 storyteller 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이야기'가 그렇게 중요한 사람이 아니었다면 미국에서의 삶이 조금 더 단순할 수 있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