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어떻게보든나는뒤뚱뒤뚱뛰련다.
나는 1년 3개월째 조깅을 하고 있는 거북이 아줌마 러너이다. 매일 아침 8시반 경, 경부고속도로 바로 옆에 있는 길마중길을 뒤뚱거리며 조깅한다. 조깅을 하고 나면 마음에 새로운 바람이 드는 기분이 든다. 종아리나 등근육이 발달하는 것은 덤이다. 하지만 나는 2~3년전만해도 15년째 광화문으로 출퇴근을 하며 몸도 마음도 소진해버린 직장인이었다. 인지삼제라 일컫는 나 자신, 세상 그리고 미래에 대한 부정적 사고가 많고, 조금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금융업의 문화에 오랫동안 노출되어 불안장애를 앓고 있는 워킹맘이었다.
어찌해야 할바를 몰라 하던 일을 계속했다. 인내심이 높아서 그런가? 이유없이 잠이 쏟아지고, 편두통이 생기고, 책상 서랍이 잠겼는데 몇 번이나 확인하면서도 그냥 직장맘으로 사는 나 자신을 대체할 그럴듯한 정체성을 찾지 못했기에, 버텼다. 지금 보면 그런 식으로 셈하며 대안을 찾는 것은 답이 없는 게 당연했다. 15년간 한 업종에 종사하며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는 일에 집중해서 다른 일을 해보지도 않았고 무엇을 좋아하는지조차 희미하기만했으니, 지금 바로 갈아탈만한 가치가 있는 옵션이 없어보였을거다. 나는 냉소적이었다. 돈을 못 버는 것도 두려웠고, 돈 번다는 방패를, 가드를 내리면 어떤 일이 생길지 두려웠다. 누군가의 아내라는 신분으로만 다운그레이드(?)될까봐 나는 스스로를 갉아먹는 상황에 나를 무기력하게 방치했었다. 그러던 어느날, 2022년 크리스마스, 퇴근길 남편이 전화로 덤덤하게, 미국으로 석사연수를 하게 되었으니 같이 가자고 제안했다. 그는 아무리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이지만 나의 표정이 삶에 대한 희망이 너무 없어보인다며 일을 그만두고 새로운 환경에서 진정한 휴식을 취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고민이 되었다. 너무 남들 같아서 설명을 할 필요가 없는 삶을 벗어나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시에 무언가 얻기 위해서는 현재 움켜쥐고 있는 것을 놓아야 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2023년 7월, 미국 북서부의 Oregon주, 그 곳에 오레곤주립대학이 위치한 작은 도시 Corvallis로 나와 남편, 그리고 초등학교 3학년이 딸아이는 이주했다. Zillow로 스스로 집을 알아보고, greatschool.com에서 학교랭킹을 검색해 가고 싶은 초등학교를 컨택해 입학절차를 밟았다. 이사도 안 갔는데 Honda dealership에 연락해 차도 계약해놓았다. 직장다니면서 얻은 무형의 추진력, 영어구사능력이 업무가 없어지니 날개를 단 듯 내가 해야할 일을 찾아 움직이고, 길을 개척하는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성향의 나를 새로이 발견하게 해주었다.
Corvallis는 정말 새로운 곳이었다. 그곳에서 새로운 문화, 언어 그리고 사람 그리고 위대한 자연을 경험할 수 있었다. 이방인으로서의 낯섬 그리고 외로움은 점차 친구들, 이웃들 그리고 다른 학부모들과의 관계로 채워져갔다. 내 삶이 어땠는지 지금 나는 어떤 마음인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을 나는 아주 오랜만에 만나게 되었다. 이야기를 하다가 웃기도 울기도 하고 반갑고 좋으면 서로를 안아줄 수 있다는 것이 나는 좋았다. 겉으로만 봐서는 알 수 없는 상처들이 누구에게나 있고 그것을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이 나같은 사람에게는 유명한 사람을 만나는 것보다 훨씬 중요했다. 우리가족의 삶도 바뀌었다. 각자 삶이 바빠서 저녁때야 겨우 얼굴을 보며 밀린 목욕과 숙제를 해치우기 바빴던 우리 셋은 하루종일 집에서 지루한 삼시세끼를 차려먹기도 하고, 차에 몸을 싣고 한달반동안 미국서부로드트립을 하기도 했다. 돈만 있으면 문제가 해결되는 삶보다 마음을 이해받는 삶이 그 당시 나에게는 필요했고 조금씩 마음이 회복되어감을 느꼈다.
'혼자만 잘 살면 뭐하누', 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건 누군가의 엄마가 되면서 인 것 같다. 살면서 처음으로 남의 도움이 절실해지고, 겸손해지고, 또 함께 살아가는 삶을 알게 된 것이다. 한국에서도 같은 엄마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지만, 사회 전체적으로는 각박하고 냉소적인 분위기를 느낄때가 많았다. 이와는 달리 Corvallis에서는 Oregon State University의 Family resource center에 속한 International Moms Group가 엄마라는 역할이 지니는 무형의 가치들을 발견하게 해주었다. 항상 남보다 뛰어나야 살아남는다, 라고 무의식중에 생각하고 살았고, 그래서 삶이 많이 고달팠었는데, 다시 즐거워지는 법은 의외로 간단했다. 같이 음식을 먹고 기쁨과 슬픔을 나누는 것이었다. 편리함을 이유로 맛있는 음식을 시켜먹고, 더 예뻐지는 시술에 대해서 얘기하고, 남의 험담을 하며 내 마음에 스스로 생채기를 내오지 않았나,는 생각도 들었다.
많은 나눔과 사랑을 뒤로하고, 우리는 2025년 여름 한국으로 돌아왔다. 나는 외국계은행에 재취업을 하지 않고 상담심리대학원에 진학하기로 결정했다. 비록 20년 전이지만 학부전공이 심리학이어서 기초과목들에 대한 이해도 있었고, 연구자보다는 실제 상담자로서 진로를 설계하고 싶다는 바람이 컸다. 덧붙여 실제 한 아이를 양육해본 경험, 그리고 20년동안 사회에서 생활했던 사람경험들이 누군가의 어려움을 바라보는 시각과 깊이에 도움이 된다는 판단도 있었다.
2025년 2학기, 첫학기를 끝낸 지금, 배움의 기쁨, 그리고 새로운 관계들의 탄생에 대한 설레임과 함께, AI가 가져 온 학습방법의 대변혁, 그리고 상담사의 역할 변화에 대한 고민을 동시에 가지게 되었다. 상담에는 국가자격증이 없고, 민간자격증도 취득이 어려울 뿐 아니라 자격증이 상담의 실력을 담보해주지 않는다. 새 시대가 요구하는 인재답게, 나는 나의 직무와 직업을 스스로 정의하고 그 룰을 만들어나가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해야 할 일에 이끌려 강제적으로 따르면 보상이 따르겠지, 라는 수동적인 생각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마음이 이끄는 방향으로 걸어가야 나만의 자리를 찾을 수 있다는 깨달음도 많은 배움들을 통해 얻을 수 있었다.
한학기동안 대학원에서 배운 모든 과목들이 나의 삶에 그저 짧은 지식으로 스쳐 지나가지는 않았다. 특히 마인드풀니스 과목을 수강하며, 나의 불안의 근원을 들여다보고, 현재를 충실하게 살지 못하는 걱정어린 스탠스를 알아채고 충만한 하루하루를 위한 노력의 방법을 알게 되었다. 매일 아침 이제 나는 거북이 러너 + 명상 아줌마이다. 자애와 마인드풀니스명상(위빠사나)로 하루를 시작하며, 매일 먼지같은 진전이라도 그것이 현재에 충실하다면 그것이 행복이라는 것을 반복적으로 되새김질한다. 또한 내담자의 사례를 깊이있게 이해하게 도와준 대상관계이론, 인간의 발달과정을 심리학적으로 살펴본 발달심리학, 상담에서 이용할 수 있는 심리이론을 탐색한 상담 및 심리치료이론 모두 상담사로 성장하기 위해 필요한 자양분이었다고 생각한다.
비록 상담과 관련없는 금융계에 종사했었지만 나의 과거 삶의 경험이 상담자로서의 이력에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회초년시절 순수한 우정이 직장내 필요로 인해 변하는 것도 경험했고, 육체적 정신적으로 소진된 상태에서도 상담, 병원 운동 등 나름의 자기돌봄을 하며 삶을 버티는 시기도 겪었다. 이 사람이라면 나와 평생을 함께 할 상대라고 생각했던 배우자와도 출산 이후에는 육아와 가사역할이 편중되어 나 자신이 없어질만큼 감정을 담아 싸우기도 했다. 나의 시련들은 나를 더 이상 아프게 만들어주지는 못했다. 대신 남의 아픔을 선명히 느낄 수 있는 공감능력을 선물로 받았다. 아픔을 남에게 이용당할까봐 감추고 살았던 철옹성같던 사무실보다, 작디작은 상담실에서 나의 약함이 이롭게 쓰일 수 있는 삶이 있음을 느꼈고 앞으로는 그 길을 추구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