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살내딸의외국에서친구사귀기
오늘은 3년전 미국에 처음 도착해서 처음 사귄 가족에 대해서 써보려 한다. 우리가 코발리스의 타운하우스에 이사를 가고 2주 정도 지나서, 집앞에서 누군가 다가와 너는 몇살이니? 어디서 왔니? 우리애들하고 놀래? 라고 다가온 키 큰 검은 머리의 스페인 남자아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마누엘이었고, 당시 그의 둘째딸인 엘사가 다현이와 동갑인 9살이었다. 바로 옆집이었는데, 우리집에 놀러와- 라고 초대를 해 준 그 남자의 초인종을 누르고, 그 이후로도 우리의 인연은 지속되고 있다.
일단 그 당시의 일기를 발췌해본다.
미국에 온지도 벌써 4주가 좀 안 되었다. 미국으로 떠나기 1주일 전 부러진 다현이의 팔이 미국에서 제대로 붙을 것인지 노심초사하는 마음과 몸이 불편해 지니 도움을 주기보다는 보살핌이 필요해진 아이에게 짜증이 나는 마음이 복잡했다.
학교도 안가고, 엄마 아빠와 함께 매일 여행을 다니는 삶.
어쩌면 모두가 꿈꾸는 그런 상황일 것 같다. 나도 남의 가족이 오롯이 자신들만의 삶을 누릴 수 있는 기간이 주어지는 것을 본다면 틀림없이 부럽다고 했을 것 같으니까.
실상 공짜는 없다.
우리가 다니는 여행 (길게는 이 미국집이 우리에게는 2년의 여행일 것이고, 짧게는 미국 근교와 인근 나라를 다니는 것이 짧은 여행들이겠지)들의 여정은 우리가 직접 정해야 하며, 그에 관련된 숙박과 교통 경비를 부담하고 계획을 짜는 것 역시 당사자인 우리들이다.
체력이 좋다면 뭐 매일이 신나겠지만 인간의 몸은 신비하게도 밸런스를 요구한다. 오늘 무리하면 내일 스케쥴이 빵꾸가 나고, 지친 몸을 돌보지 않고 계속 굴리면 다니고 싶은 의욕이 사라지는 신비한 마법을 나에게 걸어버리더라.
뭐 어릴 때 친구들과 하는 여행에서는 그저 잘 장소만 있다면 오케이였는데, 이제는 잘 자야 다음날 돌아다닐 수 있다. 아이도 마찬가지더라. 잘 씻기고 잘 먹어야(심지어 입맛에 맛는 한식으로다가!) 다음날 힘을 내서 따라와준다.
여행을 할수록 여행은 건강할 때 다녀야 하고 내 체력 내에서 즐길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절감하게 된다.
다현이는 미국에 와서 동네 운전면허발급소(DMV)도 가고, 도서관도 가고, 마트도 가고 나름대로 며칠동안 동네여행을 나와 용진이와 같이 했다. 자동차가 발이 되어야 하는 지역이라 차가 한대면 셋이 같이 가게 되는 일이 많다. 신기해도 아이는 무엇이든 깊이 받아들이기를 어려워한다. 당연하다. 영어를 잘 못하는데 한국도서관처럼 책에 푸욱 빠져 몇시간이고 있을 수도 없고, 낯선언어와 다른 문화의 사람들이 곁을 지나다니는 것조차도 알게 모르게 신경쓰이는 일이니까.
해서 매일매일 뉴진스의 영상을 보고 춤을 따라하는 게 그 아이의 낙이었다. 귀엽고 참신한 포즈들을 배워서 혼자서 연습하고 이상한(?)가사들을 흥얼거리며 심취하는 게 나름의 도피처인 것 같아서 아예 막지도 못하고 고민만했던 것 같다. 아직 학교나 기관에 다니지도 않고(개학 전이니) 아는 사람이 없으면 또래를 마주칠 일도 없는 이 지역의 특성상(타운 하우스이지만 서로 마주치는 일도 없고 반갑게 인사만 겉치레로 How are you~하고 선 긋는 것이 지금까지 내가 겪은 미국인들이다) 누군가를 알기는 더더욱 어렵다.
지나가는 사람들한테 하이만 연발하고 쌩 지나감을 겪으며 하이 하우 알 유? 이것만 반복체득이 되가던 한 일주일 차인가, 옆옆집에 있는 사람이 인사를 하길래 하이- 하고 있다가 우연히? 조금 더 다가가서 인사를 하게 되었다.
우연히도 그들은 스페인에서 여름휴가를 온 가족이었고 이방인(?) 플러스 아이들을 위해 여러가지 활동을 찾아다녀야 하는 처지가 비슷했다.
그 집에는 딸이 두명 있는데 그 중 막내딸이 다현이와 동갑이다. 이름은 엘사.
영어를 못하는 엘사와 영어를 학원에서만 배운 다현이는 처음에는 어색해했다. 이집 아빠인 마누엘은 오후에 놀러와도 된다고 해서 초인종을 눌렀는데 다현이는 사색이 되어 벌벌 떨며 무섭다고 했었다. 이때 내가 엄중하게 말해줬다. "다현아, 너는 영어 공부를 하러 가는 게 아니야. 지금 놀러 가는 거야. 친구랑 논지 오래됐지? 어떻게든 놀아야 하지 않겠니?!" 다현이는 갑자기 정신이 퍼뜩 들은 듯 고개를 퍼덕거렸다. 그리고 엘사네 집에 들어가서 쭈뼛쭈뼛 쫄쫄쫄 엘사랑 그녀의 언니 카를라를 쫓아다녔다.
한시간 정도 지나 말도 안 통하는 보드게임을 엄마들이 좀 알려주고 하게 하다가 가만히 놔두니 자기들끼리 손짓발짓도 하고 이리저리 재밌는 것도 하고 뭔가 계속 하기는 했다. 게다가 이집 엄마인 마리올라는 스페인 사람이라 그런지 오늘도 만나고 내일도 애들이 만나고 서로 집에 놀러다니고 이런 거에 거부감이 없었다. 딩동딩동~매일 초인종을 누르고 러브레터를 보내는 스페인의 정서가 어렸을 때 나의 놀이방식과 비슷해 나도 싫지 않았다. 오늘 집에서 약속 잡아서 놀아도 저녁에 잠깐 애들끼리만 한 집에서 논다거나 하는 것에는 항상 열려있었다. 10분 20분도 미리 약속을 잡아야 하는 미국가정과는 달랐다. (물론 나중에 친해진 미국 가정들 중에는 유연한 가정들도 있었다. 모두가 다 타이트한 건 아니었다.)
그때부터 엘사와 다현이의 번역기 + 몸짓 + 컴온(유일한 영어) 콜라보의 같이 놀기가 시작되었다. 번역기로 "깔깔깔" 이런 것을 치고 서로의 언어를 확인하고 미친듯이 웃는다거나, "나 화장실 갈래"를 몸짓으로 시전하면 다른 사람이 오케이를 손짓으로 확인하는 몸개그까지. 그들의 노력은 지칠 줄 몰랐다. 괜스리 꽃을 꺾어 준다거나 "I love you"를 쓴 카드를 준다거나 하는 러브레터도 주고받았다. 같이 간식을 먹는다거나, 보드게임을 하다가 그들은 종이접기, 종이 자르기, 종이로 네일샵을 차리다가 이제는 집앞에 가게를 열고 돈을 모으기도 하고 그랬다.
분명 영어를 못해서 조금은 수줍은 엘사였는데 만난지 일주일이 지나니 점점 더 그녀의 봉인이 해제되는 것이 보인다. 바닥분수에서 노는데 누가 신발을 던지며 "컴백! 컴백!" 포효를 하는데 몹시 흥분한 엘사였다. 그녀는 바닥분수에서 수영복을 입고 시멘트 바닥에서 덤블링을 시작했고 마리올라는 그녀를 말리느라 바빴다.
"Elsa is a dangerous girl..."
마리올라는 진지한 표정으로 엘사의 역사를 알려줬다.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네살 때 덤블링하다가 등이 찢어져서 응급실에 데려가서 꿰맨 이야기, 놀이터에서 미끄럼틀을 타다 바닥에 입술을 세차게 찧어 크게 다쳤던 이야기들...
마리올라는 그 스페인 억양으로 나에게 말했다.
"Elsa is a very dangerous girl."
이제는 꾸밈없는 엘사의 표현력과 순수함이 사랑스럽게 보인다. 한사람을 바라보며 그에 대해 점점 더 알아가는 과정들이야말고 하나의 여행같다.
친구와 함께 노는 게 세상에서 제일 즐거운 다현이에게 엘사는 한여름밤의 추억같은 아름다운 선물같은 관계로 보인다. 이제 엘사의 항상 하는 ok가 좋다고 하는 오케이인지 싫다는 오케이인지 다현이는 찰떡같이 알아듣는다.
이 가족이 코발리스에서의 2달을 보내고 스페인으로 돌아갈 때, 나는 느닷없이 눈물이 터졌었다. 마리올라와 마누엘의 정많은 모습 그리고 인성이 토대로 한 강인한 모습이 나에게 커다란 의지가 되었기 때문이리라. 다시 만날날을 약속하며 두달간의 만남을 아쉬워했고 다시 만나기를 기약했었고 정말 2024년 Denver에서 우리는 다시 만나서 Rocky Mountain을 여행하게 된다. 그 이야기를 다음에 풀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