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간의 짧은 타국생활을 마치며
오늘도 추운 겨울 날씨이다. 시린 손에 라떼를 들고 오늘도 내가 품은 이야기 중 하나를 꺼내어본다.
NY Times를 보다가 눈길을 끄는 영상에 시선이 멈췄다. 어떤 남자가 공개발언을 하는 듯한 터번을 쓴 여자에게 정체불명의 액체를 뿌리고 진압당하는 장면이었다. 여자는 분에 못 이겨 길길이 날뛰다 다시 스피치를 이어갔다. Ilhan Omar의원이 Minneapolis의 불법이민단속 과정의 불합리함과 연방정부 인사들을 비판하는 자리였다.
<출처: https://www.nytimes.com/2026/01/28/us/politics/ilhan-omar-trump-attack.html?searchResultPosition=1>
개인적으로 Renee Good, 그리고 Alex Pretti의 죽음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당혹감만 가득했었다. 데모를 하다가 죽을 수도 있다는 게 첫번째로 황당했고 그게 미국이라는 것도 황당했다. Melting pot 이라며, 표현의 자유를 중시한다며? 그리고 위협이 되는 것이 확실치 않은 상황에서 사람을 빵야-쏘는 게 가능한 이 사고는 대체 근본이 무엇인가?
내가 아는 미국이 달라지고 있어서 더더욱 놀라웠다.
나는 2023년 여름부터 2025년 여름까지 2년간 Oregon주의 작은 도시 Corvallis에서 살았었다. 미국 서부가 그렇듯이, 진보진영의이 우세한 지역이다. 한때 KKK의 근거지이기도 했던 지역이지만 성소수자와 Gothic한 자유로운 분위기가 우세해진 이후로 백인 위주이지만 다문화에 수용적인 지역이다. 지금 자기가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고민스러우니 타문화에서 온 사람들도 그리 자기와 다르다고 느끼지 않는 것도 있다. 애초에 사람은 다 다르니.
코발리스에서는 10월에는 호박이 넝쿨째 굴러다녀 호박을 주우러 다니고, Donut을 먹으며 Corn maze를 누비고, Hay ride를 한다. 봄에는 체리를 따고 가을에는 블루베리를 따고 잼을 만드는 평화로운 곳이다.
이렇듯 조용히 살아가는 도시에도 2025년도 들어서서 불법체류자에 대한 단속이 강화된다는 소식에 사람들은 술렁였다. 적어도 이방인에 대한 적개심을 드러낼만큼 용기있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 사랑이 넘쳐서도 아니고, 값싼 노동력을 제공해주는 타국사람들 덕분에 경제적으로 이익을 보는 자신들의 입장때문이었다.
사람들은 조용히 자기 주변의 사람들을 지키기 위한 행동을 시작했다. 이 지점이 내가 미국에서 사람들이 좀 쿨하다고 생각했던 부분인데, 내 가족 아니더라도 같은 시민으로서의 소속감과 연대감을 실천하는 모습이다.
먼저 주위 체류상태가 불완전한 가족들을 위한 대응지침을 만들어서 이를 배포했다. 묵비권의 행사, 그리고 절대 요원들을 따라가서는 안 됨, 자신의 신분을 입증할 의무가 법적으로 없다는 사실을 비영리 단체들은 그들의 멤버들에게 교육하는 시간을 가졌다. 시청 근처에서는 경적 소리로 정책을 반대하는 연대의식을 가졌고, Portland의 Pioneer Courthouse Square에서는 군중이 모여 트럼프 반대 시위를 벌이는 모습이 관찰되기 시작했다.
그럭저럭 서로 섞여 살아가던 곳에 이제 너는 나와 다르지 썩 나가달라는 통보가 이미 미국 사회에 저며든 사람들에게는 사망선고와 다름이 없다. 엄마는 미국에서 아이는 멕시코로 추방당해 구금되어 있는 가족관계에 대한 고려는 전혀 없는 나만 옳다, 라는 오만한 접근법이 이민자 단속에서 더더욱 그 폭력성이 폭발하고 있다.
이제 당분간은 미국땅을 밟기가 어려울 것 같다. 미국사람 말고는 다 나가라는데 굳이 푸대접을 받으며 그곳에 놀러가고픈 세계시민이 어디 있을까. 제국주의를 부활시켜 다른 나라의 희생으로 미국이 얻는 경제적 이익의 대가는 세계분쟁의 부활로 인한 다른 나라 국민들의 목숨과 미래희망의 좌절의 값 아닐까. 그래도 결국 돈 버는 놈이 임자다, 라는 말은 자본주의에서는 절대진리일 수 있지만 우리의 세상살이 전부가 자본제일주의로 매도된다면 앞으로 야만과 비이성의 사건들이 줄지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