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워킹맘의 끄적거림.
2026년 추운 겨울날, 식탁에 앉아 끄적여본다.
아래는 2015년 나의 출산기이다. 나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은 출산과 함께 시작되었다고 스스로 생각하기에, 소소한 나의 일기장을 써내려가기 전 11년전 그 날로 돌아가보려 한다.
아이가 태어나면 엄마로서의 삶은 마치 다시 태어난 것과 같다고들 말한다.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지고, 경험이 사람을 변화시키기 때문이 아닐까.
"다현이가 태어났다.
예정일전까지 가진통 외에는 별다른 징후가 없었고 자궁문도 1센티미터 열린 상태로 39주까지 별다른 진전이 없어 나름 속으로 애를 태웠었다. 다현이는 뱃속에서 무럭무럭 자라 예정일 정도에는 3.7정도를 예상한다해서 걱정도 많이 되었었다.
40주가 되자 몸도 무거워지고 소화불량, 변비가 심해지고 몸살징후가 보이면서 자연분만에 자신이 없어지며 우울해졌다. 임신기간 중 처음으로 컨디션이 너무 안 좋아 요가수업도 마지막 주는 듣지 못했다. 그러다 예정일인 2015년 3월 5일이 되었고, "아직까지 아무 일도 없네?"라며 몸이 조금 회복되었으니 이제 슬슬 요가도 하고 걷기도 하리라 다짐하고 있었다.
오르막길을 오르는 것이 자궁문을 열리게 한다하여 마지막주는 집에가는 엘레베이터를 거의 이용하지 않았고, 봄기운 탓인지 슬쩍 습기를 머금은 추위가 더욱 위협적으로 느껴져 외출은 삼가하고, 집안일을 많이 하리라 다짐하며 일회용 걸레로 먼지도 닦고 골반돌리기 자세도 틈틈히 반복했다.
요가수업 동기들과 카톡을 하다가 낮잠을 자고 오후 5시 정도 일어났는데 이슬이 비추는 것이 아닌가. 반가운 마음에 이제 48시간 이내에 다현이가 나오리라는 생각이 들어서 갑자기 힘이 났다.
단단히 입고 동네산책을 시작했다. 옥정중학교까지 언덕길을 쉬지 않고 오르면서 무릎이 조금은 아팠지만 아기 무게가 상당하니 일시적인 증상이라 생각했고 래미안까지 가서 완만하게 내려왔다.
내려오는 길에 우연히 요가선생님과 마주쳤다. 선생님은 내가 출산을 한 줄 알고 계셨는데 아직 안 나왔다고 하니 배를 만지시면서 수축이 일어난 것 같아서 금방 나올 거 같다고 힘을 주셨다. 환담을 나누고 집에 돌아오니 슬슬 힘이 빠졌지만 힘을 내서 아파트 계단으로 다시 집까지 올라왔다.
배가 생리통처럼 아팠지만 인터넷에서 억소리날만큼 아프지 않으면 병원에 가지 말라는 말에 정신무장을 단단히 한 터였다. 죽을 만큼 아파서 병원에 가야지 금방 낳겠지? 라며 달걀찜에 명란을 올려 용진이와 든든히 배를 채우고 내일중에 병원에 갈 것 같으니 컨디션 조절을 당부했다. 그리고 자려고 누웠는데 자궁이 수축되는 때에는 허리가 뻐근할만큼 아팠다. 그래도 죽을 만큼은 아니어서 참고 침대에 누웠지만 진통 어플에는 5분 간격으로 아픈 지가 거의 두세시간이 넘어있었다.
그래도 참고 기다리자며 일단 자고 내일 아침에 병원에 가자고 했지만 아파서 잠이 오지 않았다.
그래도 죽을 만큼은 아니어서 참았지만 아플 때는 표정관리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었다. 병원에 전화를 해 보았으나 대화가 가능하면 올 정도는 아니라는 말만 반복했다. 수축기에는 말도 못할 정도로 아프지만 이완기에는 멀쩡하다. 계속 헷갈리는데 체면유지가 어려울 정도로 아파온다.
새벽 1시에 용진에게 병원에 가야할 것 같다고 말하고 짐가방과 카시트를 차에 싣고 오는 용진이와 다시 집을 나서는데 아파서 차까지 가기가 어려울 정도가 되었다. 아니 이렇게 아파도 아닐 수가 있나... 병원에서 거절 당하고 집에 돌아오는 것이 두려웠다.
병원에 갔더니 자궁문이 2.5센티 열리고 입원해야 한다고 한다. 기뻤다. 집에 못간다고 이제 나는.
바로 관장을 했는데 화장실까지 간호사 선생님이 부축해서 데려다 주셨는데 자궁 수축 때문에 나는 정말 고통의 극치를 맛보며 변기에 앉아있었다. 그때 옆 수술실에서 아기가 우는 소리가 들렸다. 아 저 사람은 낳았구나. 너무 부러웠다.
침대에 다시 누웠는데 피는 아래에서 철철 나는 거 같은데 너무 아파서 관장이고 출혈이고 뭐고 멘붕상태이다. 수축이 오면 아파서 아윽 소리가 절로 나며 아이고 아이고 하고 있다. 한시간은 그러고 누워있었는데 이판사판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허리가 끊어질 듯이 아프면서 대체 얼마나 더 아파야 하나 아득해졌다.
이제 4센티가 열렸다고 한다. 무통을 맞을 수 있는데 어떻게 하겠냐고 한다. 나는 그냥 맞겠다고 했다. 여기서 더 아프면 허리가 끊어질 거 같았다. 무통 놓기 전에 새우등 자세를 취하게 하는데 이미 그 당시 나는 고통에 못이겨 몸이 경직되고 힘이 빠져 있었다. 간호사 선생님들이 억지로 자세를 취하게 해서 등에 바늘을 꽂고 무통주사를 켰고 15분 후부터 점차 진통이 완화될 거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수면마취도 잘 듣는 편인데 무통 또한 비슷한 원리인지는 모르지만 무통액이 흘러 들어오는 순간 고통이 멈추고 경직되었던 몸이 조금씩 돌아오기 시작했다. 몰랐는데 근육이 너무 경직되어 있으면 체온도 함께 내려간다. 기억에 남는 것이 간호사 선생님이 아로마 오일로 체온이 돌아올 때까지 다리를 마사지해 주셨다. 의식이 희미했지만 너무나 감사했다.
요가를 배우면서 자연주의 출산에 대해 많이 듣게 되었고 출산 일주일 전에는 남편과 함께 분만강의를 들으면서 자연스러운 (무통이나 촉진제가 없는) 출산을 하면 어떨까 고민하기도 했다. 하지만 내 체력이나 성향에는 제왕절개가 아닌 자연분만을 하되 고통을 줄일 수 있는 수단을 굳이 버리기가 어려웠고 결국 결과적으로 보면 잘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무통주사를 맞자마자 나는 잠이 들었고 두시간 후에 깨어났다. 그 동안 자궁문이 더 열리지는 않아서 진행은 더뎠지만 체력을 회복하고 마지막 분만시에 힘을 줄 수 있는 에너지를 충전했다는 점에서 무통주사를 맞았던 것이 출산직후 경련이나 오한을 그나마 조금 더 줄여주었다고 생각한다.
진통은 출산으로 가기 위한 길이다. 피할 수 없고 어쨋든 그 길을 가야만 끝이 있다. 그래서 고통이 수반된다는 생각도 든다. 고통이 너무 심해서 더 이상 되돌아갈 수 없고 어떻게든 낳아야만 한다. 그래서 정신없이 죽을 힘을 다해 낳았다.
낳자마자 내 가슴에 다현이가 올려졌다.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열달동안 잘 자라줘서 고마웠고 이렇게 꼬물꼬물한 생명체가 이토록 열심히 숨을 쉬고 있다니. 여태까지 나를 둘러싼 모든 일은 내가 '자초'했다고 여기지 않았고 나에게 '주어진'것으로 생각했었다. 내가 이러고 싶어서 이러나. 내가 이렇게 타고난 걸 어떡하라고.
하지만 다현이는 달랐다. 내가 다현이를 태어나게 했다. 다현이한테 무슨 일이 있을까봐 조심할 때마다 다현이의 안위가 내 책임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나 때문에 태어나고 나 때문에 이렇게 우는 게 너무 신기하고 고마워서 울었던 것 같다. 사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지금까지도. 그냥 눈물이 났다.
감격의 순간도 잠시, 다현이는 용진이와 검사를 위에 밖으로 보내졌고 나는 출산 후처치를 받았다. 정신이 드는 분만 직후 회음부 봉합이나 태아가 나온 이후에 다른 부속물들이 나오는데 이 과정들이 더 힘들게 느껴졌다. 마취가 되어 있지만 어느 정도 불편함이 남아있고 '오로'라고 불리는 자궁 속의 잔여물들이 배출되기 시작한다. 더불어 1kg까지 무게가 증가했던 자궁이 출산후 수축을 시작하며 훗배앓이가 시작된다.
출산당일날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출산직후 온몸에 경련이 일어날 정도로 오한이 찾아왔을 때이다. 진통시에 무의식적으로 근육에 힘을 주어서 출산후 그 후폭풍이 발열과 오한이었다. 열을 내리려고 항생제를 맞았지만 다 토해버렸고 분만실에서 두시간 정도 경과를 지켜보았던 것 같다. 어느 정도 몸이 진정되자 휠체어에 몸을 맡기고 입원실로 향했다. 입원실에 도착해서 침대로 몸을 옮기는데 휘청거리고 허리도 아팠던 것 같다. 진통이 허리로 온다는 말을 비로소 실감했다. 허리가 끊어지는구나 라고 느낀 건 처음이었다. 또한 방광의 감각이 없어져 두세시간마다 의식적으로 화장실에 가서 아랫배를 누르고 소변을 봐야했다. 그때마다 회음부 절개의 고통을 계속 맛보았다.
출산한 날은 무통의 기운이 가시지 않아서 회음부 방석에 앉지 않아도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다. 다만 관장과 무통 그리고 촉진제의 영향인지 (그 무엇때문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거의 밤을 새고도 피곤함을 그대로 가진 채로 잠을 쉽게 이루지 못했다. 다현이가 내게로 와서 젖을 빨 때도 거의 젖이 나오지 않아서 그저 신기하기만 했고 내 몸을 회복시키는 데에 더 신경을 썼던 듯하다.
출산 다음날부터 본격적으로 다현이를 데려와서 수유도 해보고 우는 모습에 당황하기도 했던 것 같다. 아침에 병원으로 내려가서 봉합부의 소독도 하고 가족 친구들의 축하도 받고 기쁘고 설레었다.
다현이가 울때마다 당황스러웠지만 잘 해내리라 다짐하며 조리원으로 향했다.
조리원에서는 첫날에는 휴식을 권한다. 정갈한 식사와 좌욕 그리고 샴푸 서비스.
3.89kg의 아이를 자연분만으로 낳았지만 비교적 상처도 적고 부종도 심하지 않았기에 나는 약간의 자만심을 가졌었던 듯하다. 뭐가 힘든가 하는 그런 오만한 생각도 했었다. 완모를 위한 모유수유의 세계에 발을 디디기 전까지는."
아마 산후조리원에서 쓴 글 인듯하다. 모유수유만 힘들다고 했던 걸 보니... 10년도 더 지나 내가 쓴 글을 다시 본다는 것은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중요한 작업이다. 또한 언제나 환경에 휩쓸려 왜 이리 힘들지, 라는 맘만 들 때에 제대로 원인을 파악하기 위한 방법은 내키지 않지만 나를 정확히 바라보는 것이다.
나는 다현이는 처음으로 내가 의지로 한 선택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 날부터 나는 내 의지로 살아가겠노라 내 아이는 명징한 의식으로 돌보겠노라 스스로 선언했는지도 모른다. 아직도 모르겠다. 그 순간 그 생각의 의미는.
이제부터 나는 나의 생각의 퍼즐을 꿰맞추어가려 한다. 이때에는 뱅크오브아메리카 서울지점에 다녔었고, 지금은 한양대학교 상담심리대학원에 재학중인 학생의 신분으로 변화하며, 나 자신을 내가 배운 심리학 지식 혹은 삶의 경험으로 그려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