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께 화장실 수도꼭지 물이 샜다. 물방울 떨어지며 나는 소리가 묘하게 이뻤다. 규칙적으로 진동하는지 음이름을 특정할 수 있었다.
'대략' 라-솔파-솔#-시-파# 솔-시....
'대략'이라고 한 이유는 무엇인가. 미분음 때문이다. 물이 내는 소리는 악기처럼 사전 조율된 음은 아니다. 따라서 정확하게 특정하긴 힘들다. 조율음 기준으로 따지면 오차가 있다.
즉 '라'라고 했지만 실은 반음 높은 '라#'이나 '시b'에 조금 가까울 수 있고 반음 낮은 '라b' 혹은 '솔#'에 아주 근접할 수도 있다. (이것을 미분음이라고 한다.)
잘 들어보면 한 번 물방울 떨어질 때 들리는 음 개수가 달랐다. 통념상 1번에 한 음이 들릴 것 같다. 하지만 소리가 안 나는 경우도 있고 2개 음이 일어날 때도 있다. 물방울 떨어진 뒤 반동으로 튀어올랐다 다시 낙하하면 2개 음이 생긴다. 그냥 물에 묻히면 아무 소리 안 난다.
물방울이 떨어지는 음을 악보로 적었다.
(0개 음이 나는 구간은 4분쉼표로 받아적었다. 1개 음이 나오는 부분은 8분 음표. 2개 음이 나오면 첫 음을 꾸밈음으로 처리했다.)
(1) 음악이론적 분석
음악적으로 듣기 좋았다. 물방울 음색은 사람 마음을 편하게 한다. 멜로디 라인도 기가 막히다. 짜임새가 있다. 처음엔 부드러운 순차 진행하고 중간 부분에 극적인 도약 많고 마무리는 다시 순차했다. 말하자면 기승전결이 있다.
화성적으론 전형적 장/단조 조성 진행으로 보긴 힘들다. 조성이 없는 음악인 무조가 더 적절했다. 난 무조음악 작곡가 가운데 안톤 베베른(Anton Webern)의 음악이 떠올랐다.
(2) 음악사적 분석
무조음악과 12음기법을 작곡한 비엔나 학파의 일원은 3명이 다. 아널드 쇤베르크와 그의 제자 2명 알반 베르크, 안톤 베베른이다.
쇤베르크는 처음엔 장단조 음악 가운데 가장 발달된 반음계 음악을 작곡했다. 내면의 극적인 감정을 절절하게 담기 위해 단순한 온음계를 너머 반음을 사용했다. 그런데 장조/단조 조성 문법이 극적으로 발달하니 더 이상 장단조 체계에선 개척할 영역이 없어졌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쇤베르크는 조성이 없는 음악을 생각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무조음악이다. 그리고 이를 체계화한 작곡법이 12음기법이다.
베르크와 베베른은 스승 쇤베르크가 창시한 음악을 받아들여 자기만의 방식으로 소화했다. 그중 베베른이 쓴 방식은 점묘주의(pointillism)인데 미술의 점묘화의 음악 버전이라고 보면 된다.
점묘화는 색채적인 점을 여러 개 찍어서 형태를 묘사하는 그림이다. 선이나 면으로 그림을 그리는 대신 아주 미세한 여러 개의 점의 집합으로 묘사한 회화이다. 그 점을 찍는 강도, 채도, 명도의 차이로 가까이서 볼 땐 혼탁하지만 멀리서 보면 섬세한 그러데이션의 변화와 함께 전체적인 그림이 보인다.
베베른의 점묘주의 음악도 개별적인 짧은 음만 점찍듯이 모여있다. 개별 음은 독특한 음높이, 강도 등을 갖고 있다. 각각 음만 들었을 땐 의미가 없어 보이지만 모여서 큰 그림이 완성되면 멋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