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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won Yeo Jan 02. 2022

수도꼭지 물의 음악

Atonal in life

<수도꼭지의 무조음악>

https://youtu.be/kSFgta9hl8Q

(0) 들어가며


그저께 화장실 수도꼭지 물이 샜다. 물방울 떨어지며 나는 소리가 묘하게 이뻤다. 규칙적으로 진동하는지 음이름을 특정할 수 있었다.


'대략' 라-솔파-솔#-시-파# 솔-시....


'대략'이라고 한 이유는 무엇인가. 미분음 때문이다. 물이 내는 소리는 악기처럼 사전 조율된 음은 아니다. 따라서 정확하게 특정하긴 힘들다. 조율음 기준으로 따지면 오차가 있다.


즉 '라'라고 했지만 실은 반음 높은 '라#'이나 '시b'에 조금 가까울 수 있고 반음 낮은 '라b' 혹은 '솔#'에 아주 근접할 수도 있다. (이것을 미분음이라고 한다.)


잘 들어보면 한 번 물방울 떨어질 때 들리는 음 개수가 달랐다. 통념상 1번에 한 음이 들릴 것 같다. 하지만 소리가 안 나는 경우도 있고 2개 음이 일어날 때도 있다. 물방울 떨어진 뒤  반동으로 튀어올랐다 다시 낙하하면 2개 음이 생긴다. 그냥 물에 묻히면 아무 소리 안 난다.


물방울이 떨어지는 음을 악보로 적었다.

 (0개 음이 나는 구간은 4분쉼표로 받아적었다. 1개 음이 나오는 부분은 8분 음표. 2개 음이 나오면 첫 음을 꾸밈음으로 처리했다.)

(1) 음악이론적 분석


음악적으로 듣기 좋았다. 물방울 음색은 사람 마음을 편하게 한다. 멜로디 라인도 기가 막히다. 짜임새가 있다. 처음엔 부드러운 순차 진행하고 중간 부분에 극적인 도약 많고 마무리는 다시 순차했다. 말하자면 기승전결이 있다.


 화성적으론 전형적 장/단조 조성 진행으로 보긴 힘들다. 조성이 없는 음악인 무조가 더 적절했다. 난 무조음악 작곡가 가운데 안톤 베베른(Anton Webern)의 음악이 떠올랐다.


(2) 음악사적 분석


무조음악과 12음기법을 작곡한 비엔나 학파의 일원은 3명이 다. 아널드 쇤베르크와 그의 제자 2명 알반 베르크, 안톤 베베른이다.


쇤베르크는 처음엔 장단조 음악 가운데 가장 발달된 반음계 음악을 작곡했다. 내면의 극적인 감정을 절절하게 담기 위해 단순한 온음계를 너머 반음을 사용했다. 그런데 장조/단조 조성 문법이 극적으로 발달하니 더 이상 장단조 체계에선 개척할 영역이 없어졌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쇤베르크는 조성이 없는 음악을 생각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무조음악이다. 그리고 이를 체계화한 작곡법이 12음기법이다.  


https://youtu.be/wt8SA6SDHXo



베르크와 베베른은 스승 쇤베르크가 창시한 음악을 받아들여 자기만의 방식으로 소화했다. 그중 베베른이 쓴 방식은 점묘주의(pointillism)인데 미술의 점묘화의 음악 버전이라고 보면 된다.


점묘화는 색채적인 점을 여러 개 찍어서 형태를 묘사하는 그림이다. 선이나 면으로 그림을 그리는 대신 아주 미세한 여러 개의 점의 집합으로 묘사한 회화이다. 그 점을 찍는 강도, 채도, 명도의 차이로 가까이서 볼 땐 혼탁하지만 멀리서 보면 섬세한 그러데이션의 변화와 함께 전체적인 그림이 보인다.


베베른의 점묘주의 음악도 개별적인 짧은 음만 점찍듯이 모여있다. 개별 음은 독특한 음높이, 강도 등을 갖고 있다. 각각 음만 들었을 땐 의미가 없어 보이지만 모여서 큰 그림이 완성되면 멋있다.


https://youtu.be/OLW1w675NHY



마치 수도꼭지의 물이 새면서 한 방울 한 방울 소리가 나듯이 각각의 짧은 음이 나지만 모여서는 훌륭한 선율이 되듯이 말이다.  


(3) 물소리에 관한 관심


물이 내는 소리는 참 좋다. 특히 그것이 악음을 낸다면 더 좋다. 옛날엔 음악적인 물소리를 빗소리만 생각했었다. 비가 오는 날 귀를 기울이는 것이 최선이었다. 그때 우산을 두드리는 불규칙한 자연의 리듬이 참 좋았다.


(우산에 두드려지는 빗소리의 음높이를 통제할 수 있다면 훌륭한 악기가 될 것으로 보았다.)


하지만 인위적이면서 아주 정제된 규칙적인 물소리도 음악적이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 마치 베베른의 점묘주의 음악처럼 수도꼭지는 상당히 깨끗하면서 주기적으로 울리는 예술적인 소리 들려주었다.


(4) 나가며



존 케이지 선생은 "우리가 어디를 가던 귀에 들리는 것은 대부분 소음이다. 그 소음을 무시하면 우리를 방해한다. 하지만 그것을 들으려 한다면 그 소음이 얼마나 환상적인지 알게 된다. 소음이야말로 경이로운 음악이다."이라 하셨다.


모기 날개소리, 엘리베이터 신호음, 주차장 신호음 등 여러 소리를 통해 줄곧 되풀이하며 떠올리는 명언이다.

여러 번에 걸쳐 존 케이지 선생님의 말씀을 체감하며 매우 감사하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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