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우리나라 음악계의 미래가 밝다고 생각한다. 아주 고도로 잘 훈련된, 교육받은 음악영재가 많아서다. 피아노, 바이올린 학원을 다니거나 레슨을 안 받아도 모든 국민이 자기도 모르게 음악 감각을 키우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 애니콜 휴대폰를 생각해보자. 우리가 스마트폰 쓰기 전에 피쳐폰을 썼다. 현재 스마트폰은 가상 화면에 키보드가 소프트웨어로 드러나지만 옛 피쳐폰은 노트북이나 키보드
자판처럼 플라스틱 하드웨어로 물리적으로 붙어있었다.
피쳐폰이 특이한게 전화를 걸려고 번호를 입력할 때 1을 입력하면 도, 2를 누르면 레 등. 말하자면 1-도, 2-레, 3-미, 4-파, 5-솔, 6-라, 7-시, 8-도 식으로 소리가 나왔다.
동요 나비야는 계이름이 '솔미미 파레레 도레미파솔'인데 번호로 533 422 1234555 처럼 누르면 연주 가능했다. 동요 비행기는 마찬가지로 3212333를 누르면 '미레도레미미미'의 계명을 연주할 수 있었다.
2022년 기준으로 20대 중반~30대 초반은 어렸을 때 저런 방식으로 피쳐폰으로 많이 음악연주했다.
이게 참 묘한 게 17세기 바로크 시대의 숫자저음 기법과도 일치한다. 또 코드 연주하는 데 있어 필요한 숫자감각을 기르는데도 탁월한 도움이 된다.
아무 것도 모르는 아이라도 애니콜 휴대전화만 있으면 사실상 학부 2학년 수준의 화성학을 이수할 수학 능력을 가질 수 있다.
물론 누군가는 이게 가장 단순한 다장조 (즉 흰건반)만 연주할 수 있기 때문에 유치하다고 볼 수 있지만 사실 모든 조성의 기초가 되는 것이 제일 단순한 다장조이기에 무시할 수 없다. 우리 모두 알게 모르게 음악에 관한 숫자감각을 기르고 있었던 것이다.
절대음감은 어렸을 때 길러진다. 특정 시기가 지나 자라면 음감을 기를 골든 타임을 지난다고 한다.
음악교육학자 E.Gordon에 따르면 음악적성은 유전적인 소인이지만 출생 후 9세까지 형식적 비형식적 음악 경험에 의해 음악적성이 변동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9세 이후부터는 환경이나 훈련이 음악적성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9세에 결정된 음악적성은 평생 유지된다.: 권덕원. 음악교육의 기초. 경기도: 교육과학사, 2021.
나는 운좋게 어렸을 때 핸드폰을 만지면서 놀았기에 음을 외워 음감을 가졌다.
절대음감은 누구나 타고난다고 한다. 다만 적절한 음악적 자극이 없으면 퇴화되는 것이다.
나는 저런 피처폰이 적극적으로 음악영재를 육성했다고까진 말하지 않겠다. 다만 음악영재였던 아이가 점점 희미하게 음감이 퇴보되는 걸 적어도 막는 역할을 피처폰이 하지 않았을까? 라는 가설을 제시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