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치는 주위 친구를 보면서 답답했던 순간이 있다. 그 가운데 하나는 4분의 3박자와 8분의 6박자를 헷갈려 하는 친구를 볼 때다. "4분의 3박자나 8분의 6박자나 다 같이 한 마디에 8분음표가 6개 들어갈 수 있다. 그러므로 둘은 사실상 차이가 없다"라고 하며 연주할 때도 차이를 두지 않는 친구들을 보면서 많이 답답했다.이 친구들은 음악적 리듬이라는 개념이 전혀 없어 보였다.
즉 리듬이 별도로 표기되지 않고 말에 기댄 자연적인 음가를 표현한 네우마, 다성음악이 본격적으로 발달한 노트르담 시대의 6개로 유형화된 모드 리듬을 거쳐 13세기 들어 정교해진 다성음악을 잘 표현하기 위해 개별 음표를 리듬적으로 정할 수 있는 맨수라 기보법 탄생. 그리고 멘수라 기보가 확장되며 리듬의 2분할과 3분할이 동시에 혀용되던 1300년의 아르스 노바를 거쳐 16세기 말부터 도입된 마디줄 그리고 이것이 박절적 의미를 가지며 마디마다 일정한 강약의 차이가 있는 단계적 강세 박자 즉 규칙적인 주기성을 가지며 형성된 박절 개념을 전혀 모르는 듯 했다.
이 친구들이 하는 비슷한 실수가 또 있다. 바로 못갖춘 마디를 대하는 태도에서의 실수이다. 규칙적인 주기를 가진 강약 박절 개념상 못갖춘마디는 오프빗에 해당하는 경우가 많다. 설령 온빗이라 하더라도 강박에 해당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갖춘마디로 시작하는 곡 특유의 강세가 있는 첫 박을 연주하는 습관 때문에서인지 못갖춘마디의 첫 음을 강하게 연주해버리는 실수를 하곤 했다.
이 친구에게 못갖춘마디를 쉽게 이해시킬 수 있는 방법은 언어와 음악의 관계로 설명하는 것이지 않을까 싶다. 못갖춘마디는 한국어엔 없는 관사를 노래 붙이기 위해서 쓴다고. 언어적 강세와 음악이론적 강세를 맞추려는 노력에서 적극적으로 못갖춘마디를 이용했다고. 비교적 중요한 의미를 담은 주어가 강박에 나와야 하는데 엉뚱하게 의미적으로 중요하지 않은 관사가 강박에 붙는 걸 피하기 위해 빼준 장치라고. 그리하여 못갖춘마디가 서양음악에서 발달한 것이라고. 굉장히 직관적으로 설명이 가능한 영역이지 않을까?
이처럼 언어적 도구를 이용해서 음악을 잘 이해할 수 있는 경우가 있다. 못갖춘 마디와 같은 음악 특유의 내적인 요소로 보이는 것도 사실은 음악 내적이기만한 현상이 아니라 언어, 사회, 문화 등 음악 외적인 요소와 역동적으로 상호작용한 결과로서 탄생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음악 외적 요소와 음악 내적 요소가 영향을 주고받아 형성된 다양한 음악적 요소를 알아보자. 특히 언어적 요소가 음악에 영향을 준 예를 역사적으로 고찰해보겠다. 그리고 특정 시대에 형성된 기악 우위의 사고 내지는 음악 내적인 요소가 지나칠 정도로 강조되어 음악 외적인 사고를 배제하려는 경향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논증하며 마무리하겠다.
II. 본론
1. 음악사를 돌이켜보며
고대엔 예술이 무언가에 대한 모방이라고 보았다. 미술은 어떤 대상을 모방하여 정확하게 재현해낸다. 그림은 시각적으로 보이는 대상을 평면에 드러내는 것이고, 조형 예술은 시각적인 대상을 입체적으로 재현해 놓은 것이다. 시는 언어라는 도구를 이용해서 개념적으로 어떤 대상을 묘사한다.
그렇다면 음악은 무엇을 재현한 것인가? 대답하기 쉽지 않다. 언어처럼 명확하게 개념을 이용해서 지시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미술처럼 비교적 생생하게 시각적으로 재현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어떤 학자는 음악에서는 모방이나 재현이 적용 불가능한 영역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어떻게든 음악에도 모방론의 틀을 이용해서 설명하고 싶어했다. 고대 학자들은 외부 대상에서 사람 내부로 눈을 돌려 음악이 사람의 감정이나 성격을 모방한다고 봤다.
그런데 인간 내부의 감정이나 성격을 지시한다고 보는 것이 애매해서일까? 이후 음악가들은 여전히 음악 외부 대상을 모방하길 원했던 것 같다. 하지만 앞서 얘기했듯 음악 단독으로 외적인 대상을 지시하는 게 어렵다. 그래서 음악은 독립적으로 무언가를 모방하기 보단 개념적으로 무언가를 지시하는 언어와 연계되어 음악이 전개되었다. 많은 철학자들도 가사가 개념적으로 지시하고 음악이 이를 돕기 때문에 의미를 지닌다고 봤다.
음악 독립적인 요소가 강한 기악보다는 성악이 모방론 틀로 설명하기가 쉬워서 일까? 예술철학적 논의에선 성악이 강세를 보였다. 이후 중세 시대에 음악 실제에서도 성악 음악이 크게 대두되는데 이는 종교적 권위가 강했던 영향도 있었다.
당시 교회는 예배 내에서 음악에서 오직 악기만을 사용해 연주하는 걸 금지했다. 기악만을 연주하면 사람들이 종교적 경험보다는 음악 그 자체에 집중할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그래서 예배 때 음악을 이용한다면 성경 내용이 가사로 있는 성악 음악만을 이용하길 원했다. 그런 이유로 중세 시대엔 대부분의 종교 음악이 성악 음악이다. 그러던 중세 후기 종교적 권위가 약해지면서 세속음악이 비약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16세기는 특히 세속 노래가 많이 발달한 시기이다. 이 시기 작곡가는 절절한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서 가사를 어떻게 극적으로 표현할지 고민하고 실험했다. 이때 가사는 대부분 시이며, 연을 갖췄다. 이 형식에 맞춰서 음악을 붙였다. 자연스럽게 음악에도 시에 맞는 정형적인 형식이 탄생하게 되었다. 재밌는 건 직후 기악음악은 성악음악의 영향을 받아서 발달했다는 것이다. 샹송은 칸초나를 거쳐서 교회 소나타 형식을 확립하는 데, 모테트는 리체르카르를 거쳐서 푸가를 형성하는 데에 영향을 줬다. 전형적인 언어의 영향을 받아 음악이 확립된 예이다.
르네상스 시대에 주목할 작곡가는 조스캥 데프레이다. 이 작곡가는 가사 그리기 기법을 이용해서 음악을 작곡했다. 가사 그리기 기법이란 내용이 상승하는 내용이라면 예를 들면 누군가 올라가신다고 한다면 음고가 상행하는 패시지를 쓰고, 어떤 대상이 내려가는 내용이라면 하행하는 음고를 쓰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가사의 내용이 음악을 구성하는 데에 직접 영향을 주는 경우로 이 전형적인 언어를 이용한 음악 작곡이라고 볼 수 있다. 또 이 사람이 쓴 재밌는 기법 중 하나가 특정한 단어에서 모음만 따온 뒤 그 모음에 가까운 계이름으로 치환해서 어떤 주제를 뽑아내는 것이다. 소위 소재토 카바토라는 기법인데 이 역시 언어를 이용한 작곡이라고 볼 수 있겠다.
2. 순수음악의 탄생
낭만 시대에 들어서 성악과 기악의 위상은 뒤바뀐다. 기악이야말로 음악의 진정한 본질을 드러낼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나타난다. 이 사람들은 가사가 없이 음악적 요소가 독립적인 기악이야말로 진정한 음악이며 음악에 표현되는 감정의 추상성이 오히려 언어가 결여된 순수 기악 음악에서 더 많이 실현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낭만주의 문학가들은 이런 음악을 신비화하고 천사의 언어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제시문에서 언급한 "언어적 요소는 음악을 설명하는데 오히려 방해가 될 뿐"이라는 말도 아마 이 낭만주의 문학자들의 발언이었을 것이다.
한슬릭은 이런 낭만주의 문학가들에 크게 반대하였다. 즉 그들의 '음악은 감정을 표현하는 예술'이라고 하는 주장에 대해서 반박하며 음악은 음악 특유의 것으로 평가해야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음악은 울리면서 움직이는 형식이라고 말하면서 음악 자체에 집중해야 된다고 말하였다.
서로 대조되는 입장인 것처럼 보이는 낭만주의 미학자와 한슬리의 입장은 사실은 음악의 자율성에 집중한다는 점에서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소위 순수 음악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이 둘은 유사하다.
3. 동시대의 관점으로 돌이켜보자.
그런데 한슬릭와 낭만주의 미학자는 오직 서구 문화권의 음악만 감상을 했나보다. 음악을 감상하는 데 있어서 음악에만 집중하는 행위는 다른 문화권에서는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 연행하는 사람에 함께 호응하여 관객들이 같이 참여하는 음악행위가 대부분의 음악관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동시대 대중음악도 마찬가지다. 이런 음악에 대해선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걸까? 이들의 주장은 지나칠 정도로 특정한 시대, 특정한 문화권에서만 통용되는 편협한 시선이 아닌가 싶다.
오늘날 전 세계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음악행위에 대해선 적용하기엔 다소 부적절한 담론으로 생각된다.
이런 음악 내적인 요소에 집중하는 것이 진화 개념과 결부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이상한 걱정일까? 근대 서구에선 각 요소들이 분화되며 개별 요소들이 자기만의 기능을 갖는 식으로 진화한다고 보는 사상이 있다. 그렇다면 발달된 음악은 개별 요소들이 복잡한 것이고, 그렇지 않은 단순한 음악은 발달이 안 된 음악이라고 판단하는 오류도 저지를 수 있지 않을까? 음악 내적인 요소에만 집중하는 것도 또 굉장한 실수이다. 즉 음악적 연행이 벌어지고 있는 사회적 맥락, 기능 등을 무시하는 것도 어이없는 오답인데 복잡한 음악만이 우월한 음악이라고 주장하는 더 큰 실수를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아프리카 벤다족은 이전에는 7음계를 음악에 사용하다가 후에 5음계를 쓰는 다른 민족의 음악을 받아들였다. 이 경우 벤다족의 음악은 퇴화가 된 것일까? 음계의 숫자가 많은 복잡한 음악이 우월하다면 한 옥타브를 최대한 잘개 쪼개는 미분음을 사용하는 것이 음악가의 지상최대 과제가 되어야하지 않을까?
음악 내적인 게 생각하는 것은 이런 실수를 할 우려도 있다고 본다. 이들은 음악의 자율성을 지나칠 정도로 옹호한다. 모든 음악은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제의, 언어, 춤에서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원형으로부터 비교적 독립해 자율적인 음악이 만들어졌다고 주장해도 그 조차도 상대적으로 거리두기가 이뤄졌다는 것이지, 완전히 분리되었다고 보기 힘들다. 이는 역사적으로 성악음악의 수많은 형식과 구성방식이 가사로서의 언어와 결합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탄생한 점, 그리고 자율적으로 보이는 기악음악조차 그러한 성악음악에 강한 영향을 받은 점에서도 알 수 있다. 아주 사소하지만 못갖춘마디도 그 예가 아닌가? 이러한 현실을 인정하고 음악을 공부하기 위해서 음악 바깥의 세상도 적극적으로 탐구하고 연결할 필요성이 있다.
결론.
순수한 음악 내적 요소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순수한 음악 내적 요소라고 생각하는 것도 음악 외적인 요소, 예컨대 언어, 사회, 문화와 연관되어서 생각할 때 비로소 이해할 수 있다. 이는 음악사를 돌이켜볼때 기악음악 조차도 성악음악의 영향을 받아 전개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언어와 같은 음악 외적 요소는 음악을 이해하는데 오히려 방해가 될 뿐이라고 생각하는 사상은 특정 시대, 특정 문화권에서의 음악을 설명하기에만 적절했던 그런 미학 사상이고, 동시대를 비롯해서 여러 시대와 여러 문화권의 음악에 적용하기에는 다소 맞지 않는 경향이 있는 사상이다.
개요.
I. 서론
3-4 6-8, 못갖춘마디-갖춘마디 구분 못하고 이상하게 연주하는 애들 많다. 그런데 이는 아이들 잘못이 아니라 음악 내적인 요소에만 집중한 교육의 잘못일수도 있다.
노래와의 관계를 통해서 설명하면 훨씬 더 잘 이해시킬 수 있을 텐데 그런 걸 하지 못한 교수자의 잘못도 있다. 근데 이게 부디 못갖춘마디 하나의 사례로 보기에는 음악 교육 전반의 문제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2. 본론
I) 이거는 음악사만 봐도 알 수 있다. 수많은 그런 기약 음악은 성악 음악을 통해서 영향을 받아서 전개가 되어 있고 이 성악 음악은 가사를 어떻게 잘 표현할 수 있을 것인가 즉 음악을 통해서 이 가사의 내용들이 얼마나 절절하고 호소력 있게 표현될 수 있는가를 고민하는 과정에서 탄생했다.
II) 나중에는 기악 음악 우월주의자 내지는 음악 내적 요소에만 집중하는 사람이 탄생했다.
III) 참 어이없는 분이다. 이들은 음악 인류학적 관점 내지는 문화 상대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참 편협한 시선을 갖춘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이 사람들의 잘못보다는 후대 사람들이 이것을 잘못 해석한 탓도 있겠지만 현대 동시대 음악에 적용하기에는 참 안 맞는 지점도 많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