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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won Yeo Sep 09. 2023

음악을 보고 악보를 듣다

<음악을 보고 악보를 듣다>

I. 서론: 악보와 음악

 

악보 없이 음악을 얘기할 수 있을까? 못할 까닭 없다. 예술 교육을 오래 받은 사람은 줄곧 악보를 통해 음악을 가르치고 배우는 데 익숙한 나머지 악보 없이 음악을 얘기할 수 있다는 생각을 잊은 듯 하다. 하지만 음악은 악보 없이도 전해질 수 있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옛 민요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아도 지금도 대중가요를 얼핏 듣고 흥얼흥얼거릴 수 있지 않은가? 노래방에서 노래 부를 때 굳이 악보를 화면 위에 띄우지 않아도 배경 음악만으로도 거기에 맞춰 곡조를 부른다. 악보의 발달은 서양 음악 문화 특유의 현상이다. 음악이 보다 정확하게 전해질 수 있도록 생각해낸 방법이 악보이다. 소리로 들어서 전하면 중간에 헷갈려서 바뀌어 전해질 수도 있으니 보다 정밀하게 눈으로 음악을 볼 수 있게 만든 것이다. 그래서 서양음악을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곳에선 악보를 잘 다루도록 학생을 훈련시킨다. 시창청음은 악보를 잘 다루게끔 훈련시키는 대표적인 과목이다.

 

II. 본론

1. 시창청음

 

나 역시 서양음악을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예술 학교에서 시창청음 훈련을 받았다. 시창청음은 시창과 청음이 합쳐진 것인데 시창은 주어진 악보에 적힌 음을 읽고 노래 부르는 훈련이고 청음은 들려준 음악을 빈 오선지에 정확하게 받아적는 훈련이다. 시창청음을 줄곧 하다보면 재밌는 일이 벌어진다. 바로 음악만 들어도 어렴풋이 악보가 보이는 듯하고, 악보를 보면 음악이 들리는 듯하는 것이다. 이로써 소위 '눈으로 음악을 듣고, 귀로 음악을 볼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2. 기보법

 

서양 악보의 특징이 뭘까? 악보는 청각을 자극하는 소리를 시각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런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표현하냐는 것이다. 귀로 들리는 소리를 눈으로 볼 수 있게 표현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이 있는 그대로 드러낼 순 없고 다르게 바꿔줘야 한다. 변형과 왜곡이 따를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소리의 모든 것을 다 표현할 순 없고 가장 핵심이 되는 부분만이라도 보여줘야 하는데 그것이 '진동수'와 '얼마나 오래 소리가 들리느냐'이다. 재밌는 것은 서양 음악은 이것을 각각 '높이'와 '길이'라고 표현하는데 둘 모두 시각문화적인 영향이 드러나는 것이다. '높이'와 '길이'는 공간적 요소를 측정하는 정도인데 이걸 시간예술인 음악에 가져왔다는 것이다.

 


3. 시창청음과 기보법

 

음의 진동수를 '높이'라고 하며, 음가를 '길이'라고 하는 특유의 기보문화에 익숙해져서 일까? '음악만 들어도 어렴풋이 악보가 보이는 듯하고, 악보를 보면 음악이 들리는 듯'하는 상태를 넘어서 이제는 '높이 있는 무언가를 보면 높은 음이, 길이 있는 무언가를 보면 박자가 긴 음'이 들리는 듯하다. 또한 '상승하는 무언가를 보면 도레미파솔과 같은 진행이고, 하행하는 무언가를 보면 솔파미레도와 같은 진행'이 떠오른다. '계단식으로 변하는 높이를 보면 도미솔도와 같은 것, 점진적으로 바뀌는 높이는 도레미파솔'이 상상된다. 시각문화와 맞붙은 서양식 음악기보 관습과 내 감각이 하나가 된 셈이다.

 

4. 질문

 

질문이 있다. 고대 그리스 시대엔 '진동수'를 표현할 때 '높다', '낮다' 대신에 '뾰족하다', '뭉특하다'와 같이 나타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 사람들은 뾰족한 무언가를 피부로 느끼면 어렴풋이 진동이 밀한 음이 들리는 듯한 경험을 하였을까? 한국 전통음악계는 '맑다(淸)', '흐리다(濁)'로 표현하였다는데 이들은 '맑은 무언가'를 보면 마찬가지로 높은 음이 귀에 맴도는 듯할까? 반대로 고도의 음악적 훈련을 받고 그 문화에 익숙한 고대 그리스 사람은 진동이 빽빽한 소리를 들으면 뾰족함이 느껴졌을까? 또한 강도 높은 한국 전통음악 훈련을 받은 사람은 밀한 진동을 가진 소리를 들으면 '맑음'이 어렴풋이 느껴질까?

나는 궁금하다.


 

III. 결론: 감각의 연결

 

악보는 귀로 듣는 음악을 눈으로도 볼 수 있게끔 하는 장치이다. 덕분에 단순히 입에서 입으로 전해 기억하게 할때보다 훨씬 정확하게 다른 시간과 공간으로 음악을 전달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귀로 들리는 소리를 눈으로 보게끔 하다보니 여러가지 변형이 있을 수 밖에 없었고 그 과정에서 시각문화와 공간의 여러 요소를 많이 빌려오게 됐다. 이로써 음악에서 청각과 시각이 꽤 이어지고 붙어 들어 맞았다. 그 뒤 악보가 서양 음악교육에서 중요한 수단으로 대두되자 악보를 통해 음악을 배운 학생도 자연스럽게 청각과 시각이 연결되고, 대응되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한편 다른 문화권에선 음악에 시각문화를 적극적으로 빌리지 않은 경우도 많은데 이 경우에도 청각과 다른 감각이 이어지고 붙는지, 그렇다면 어떤 식으로 이뤄지는지 추후에 연구할 필요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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