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100일, 회사는 당신을 지켜본다.
Ep.8
“축하합니다. 합격입니다.”
모든 합격통보를 받는 순간에는 희열이 있지 않을까?
드디어 입사! 내가 몸담고 살아가고 있는 이 사회에서 나를 받아주는 곳이 생겼다는 사실에 마음이 벅차오른다. 이제 스스로 경제 활동을 하며 보다 독립적인 삶을 살 수 있다는 생각에 어깨가 으쓱해지고, 부모님의 표정에도 안도감이 묻어난다. 나 자신도 세상을 다 가진 듯한 기분에 피식, 웃음이 새어 나오기도 한다.
이 기분 충분히 즐겨도 된다. 합격의 기쁨을 가족과 나누고, 친구들에게 축하받으며 설레는 마음을 만끽하라.
합격의 기쁨은 며칠간 이어진다. 출근 준비로 분주해지고, 설레는 상상으로 밤잠을 설친다. 첫 출근 전날엔 옷차림을 몇 번이고 바꿔 입어보고, 가방 속 서류를 다시 확인하고, 회사까지 가는 길을 지도에서 여러 번 검색한다. 긴장과 설렘이 뒤섞인 그 순간은 누구에게나 오래 기억에 남는다.
그런데 여기서 멈추면 끝이다. 대부분의 신입들은 합격 통보를 받는 순간 “이제 안정됐다”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건 예고편에 불과하다. 면접은 티저 영상이었고, 본편은 지금부터 시작된다. 회사는 수습기간이라는 이름으로 당신을 다시 본다. 합격은 끝이 아니라 출발점이다.
나는 20년 넘게 포춘 100대 기업 상위권 글로벌 회사에서 HR을 맡아왔다. 그 자리에서 수많은 신입사원을 지켜봤다. 누군가는 빠르게 자리를 잡았지만, 누군가는 수습기간을 넘기지 못하고 회사를 떠났다. 겉으로는 화려한 무대 같았지만, 결국 살아남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은 분명히 갈렸다.
그래서 나는 잘 안다. 수습기간은 단순한 적응기가 아니다. 회사와 개인이 서로를 다시 선택하는 시간이다.
보통 수습은 3개월, 길게는 6개월까지 이어진다. 한국은 근로자를 쉽게 해고하기 어려운 나라지만, 수습기간에는 해고 예고 의무가 면제되는 예외가 있다. 물론 아무 이유 없이 해고할 순 없다. 정당한 사유와 절차가 필요하다. 하지만 신입의 입장에서는 “입사했다고 끝난 게 아니다”라는 긴장을 가질 수밖에 없다.
특히 외국계 기업은 더 냉정하다. 국내 기업에서 수습이 다소 형식적으로 지나가는 경우가 있지만, 외국계는 매 순간을 통해 “이 사람과 오래 함께할 수 있는가?”를 검증한다. 그래서 외국계의 수습기간은 또 하나의 채용 과정이다.
많은 사람들이 묻는다.
“인사팀은 내 편일까, 회사 편일까?”
나는 솔직히 말한다. 수습기간과 정리해고만큼은, 인사팀은 직원의 편이 아니다. 매니저와 함께 냉정하게 신입을 평가한다. 태도 불량, 협업 불가, 성장 의지 부족 같은 문제가 반복되면 인사팀은 매니저와 함께 평가서를 작성하고 탈락 사유를 문서화한다.
그렇다고 해서 인사팀이 무조건 회사의 손만 들어주는 건 아니다. HR의 본질은 공정성이다. 매니저가 감정적으로만 판단하지 않도록 절차를 정리하고, 신입에게 최소한의 피드백 기회를 보장하며, 법적 리스크를 점검한다. 직원의 보호자는 아니지만, 부당하게 흘러가지 않게 막는 존재.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인사팀은 누구의 편이 아니라, 공정성의 편이다.”
우리는 흔히 회사를 떠난 친구들의 불만을 먼저 듣는다.
“상사가 문제였어.”
“회사가 웃기지도 않더라.”
그런데 정말 그 친구에게는 아무 문제가 없었을까? 회사의 눈, 인사팀과 매니저의 눈으로 본다면 그는 조직이 원하는 인재였을까? 냉정하게 “함께 갈 수 없다”라고 판단되는 순간은 분명히 있다. 수습기간은 바로 그 이유가 드러나는 시간이다.
내 경험을 떠올려보면, 수습기간에 탈락하는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었다. 능력보다 태도에서 문제가 드러난다.
태도 문제: 반복되는 지각, 무단결근, 무례한 언행. 기본 신뢰가 무너지는 순간 끝이다.
학습 곡선 없음: 피드백을 받아도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면, 이는 성장 의지가 없다는 신호다.
팀워크 부적합: 혼자만의 방식만 고집하거나 협업을 피하는 태도. 작은 조직에서도 오래 두기 어렵다.
윤리적 결격: 보고 누락, 사실 왜곡, 보안 위반. 이런 문제는 단번에 탈락 사유가 된다.
결국 회사가 던지는 질문은 단 하나다.
“이 사람과 오래 함께할 수 있는가?”
코로나 시기, 인사부의 다른 팀에서 단기 인턴으로 채용된 한 친구가 있었다. 매니저는 외국에 있었고, 한국에는 가이드를 해줄 사람도 없었다. 다른 팀원들도 대부분이 재택근무 중이어서 사실상 혼자 남겨진 상황이었다. 얼마나 어색하고 외로웠을까.
그런데 그 친구는 매일 출근했다. 아무도 챙겨주지 않는 상황에서도 묵묵히 자리를 지켰고, 점심도 혼자 해결하며 업무를 이어갔다. 그 모습을 지켜본 내 팀원들은, 추후 우리 팀에 채용기회가 생겼을 때 그녀를 한 목소리로 추천했다. 결국 나는 그녀를 정규직으로 스카우트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성실성과 자기 관리 능력(Self-discipline)이 분명히 보였기 때문이다.
아무도 안 보는 것 같아도, 다 보고 있다. 신입에게는 태도가 전부다.
HR에서는 흔히 이렇게 말한다.
“신입사원은 첫 100일 동안 회사에 남을 이유를 증명해야 한다.”
업무 성과는 아직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태도와 가능성은 이미 평가된다. 상사의 눈에는 이런 신호들이 보인다.
피드백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실수를 어떻게 회복하는지
동료와 어떤 관계를 맺는지
보고와 소통을 얼마나 주도적으로 하는지
첫 100일은 결국 신입이 “나는 이런 사람이다”를 각인시키는 무대다.
출근 전날 준비는 곧 첫인상이다.
옷차림, 회사까지 가는 길, 지참해야 할 물품까지 미리 챙겨두자. 작은 준비 하나가 출근 첫날의 여유를 만들고, 그 여유가 바로 첫인상으로 이어진다.
첫날은 업무보다 표정과 인사가 먼저 평가된다.
실무 능력을 기대하는 사람은 없다. 다만 밝은 표정, 예의 있는 태도, 적극적인 인사가 기억에 남는다. “일을 잘한다”보다 “성실하다”라는 인상을 주는 것이 첫날의 과제다.
매일 20분 먼저 도착해라.
하루를 여유롭게 시작하면 긴장은 줄고, 성실함은 쌓인다. 상사는 시계를 보지 않아도 느낀다. “이 친구, 책임감 있네”라는 무언의 메시지가 전달된다.
지시는 반드시 메모하고, 실행 후 다시 확인받아라.
메모는 단순히 기록이 아니라 책임감의 표현이다. “이 친구는 내 말을 흘려듣지 않는다”라는 신뢰가 생긴다. 실수를 줄이고, 상사에게 안심을 주는 가장 간단한 방법이다.
재택보다 출근을 선택해라.
경력직이라면 재택도 괜찮을 수 있지만, 신입은 다르다. 현장에서 동료들과 눈을 마주치고, 차 한잔 나누며 관계를 맺는 경험이 무엇보다 소중하다. 관계가 신뢰를 만들고, 신뢰가 기회를 만든다.
자유로운 분위기라도 단정한 복장은 신입의 브랜드다.
회사가 캐주얼한 문화를 가졌더라도 신입의 옷차림은 달라야 한다. 단정한 복장은 성실함과 책임감을 ‘눈으로 보여주는’ 가장 쉬운 방법이다. 첫 100일 동안은 나의 태도를 옷차림으로 말한다고 생각해도 좋다.
수습기간은 회사와 신입이 서로를 다시 확인하는 무대다.
눈에 띄는 성과를 내기 어렵더라도, 시간을 지키고, 피드백을 받아들이고, 신뢰를 잃지 않는 태도. 이 기본적인 원칙들이 신입의 첫 브랜드를 만든다.
나는 HR팀장으로서 단언한다. 능력이 조금 부족해도, 원칙을 지키며 배우려는 태도와 협업의 진정성을 보여주는 사람은 끝까지 살아남는다.
당신의 태도는 이미 드러나 있다. 그것이 회사가 기억하는 당신의 첫 브랜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