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사가 메모하는 건 실력이 아니라 반응이다.
Ep.10
“그렇게 저에 대해서 말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잘못된 거 아닌가요?”
인사팀장이자 상사인 나는 순간 얼어붙었다. 눈앞에서 내 부하직원이 이렇게 맞받아쳤다. 할 말을 잃었다.
그런데 그 순간, 엄마이기도 한 나는 그 직원의 모습에서 내 아들의 얼굴이 겹쳐 보였다.
‘혹시 내 아들도 어디선가 상사 앞에서 이렇게 대응하고 있진 않을까?’
나도 내 아들이 어디서든 기죽지 않고, 자기 의견을 당당하게 말하길 바라며 키웠다. 하지만 그 장면은 내 바람의 또 다른 그림자를 보여주었다. 당당함과 무례함은 단 한 끗 차이. 내 아들이 그 선을 넘는다면 어떻게 될까.
특히 평가시즌의 피드백전달은 상사에게 공식적으로 부여된 역할이라는 점에서, 그 순간을 대하는 태도는 더욱 중요하다. 상사의 역할을 무시한 채 맞서 버리면, 상황은 생각보다 훨씬 좋지 않게 흘러간다.
바로 그 이유로 나는 이 글을 쓰고 있다. 회사는 학교가 아니다. 학교는 가능성을 북돋우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그러나 회사는 철저히 비교의 장이고, 살아남아야 하는 곳이다. 이런 현실에서 피드백을 거부하는 태도는 자기주장이 아니라, 조직을 모르는 미숙함일 뿐이다.
외국계 기업이라고 다르지 않다. 오히려 나는 서양 동료들에게서 더 깍듯하고 세련된 직장 매너를 보았다.
‘글로벌 매너’는 진리다. 껌을 씹으며 책상 위에 발을 올리고 수업 듣는 자유분방한 모습은 드라마 속 장면일 뿐, 현실 직장 속에서는 감히 말하건대 없.다.
믿거나 말거나 피드백을 전달하는 상사도 쉽지 않다. 상사 역시 마음이 불편하고, 준비한 말을 꺼내는 것조차 부담스러울 때가 있다. 물론 상사도 피드백을 어떻게 전달하느냐가 중요하다. 같은 말이라도 “왜 이렇게밖에 못했냐”가 아니라 “이 부분은 이렇게 하면 더 나아질 수 있겠다”라고 말하면, 상대는 덜 상처받고 열린 마음을 유지한다.
하지만 한 가지를 잊지 말자. 상사가 아무리 공감적으로 말해도, 상사는 결국 평가자이자 보상 권한을 가진 사람이다. 회사에서 친구처럼 무조건 내 편이 되어줄 수는 없다. 그 차이가 가장 뚜렷하게 드러나는 순간이 바로 성과 평가 시즌이다. 상사는 성과와 피드백을 통해 성장을 돕는 동시에, 보상의 열쇠를 쥐고 있다. 회사 안에서 ‘보상의 문’을 열 수 있는 절대적인 키를 가진 존재가 바로 상사다.
‘insubordinate’라는 단어를 아는가? 불손하고 버릇없다는 뜻이다. 얼핏 반대말처럼 보이는 ‘subordinate’는 사실 단순히 ‘부하직원’을 의미한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 단어 속에는 단순한 위계 이상의 뉘앙스가 담겨 있는 것 같다. 아마도 단어에조차 “아랫사람은 공손해야 한다”는 오래된 기대가 은근히 깔려 있는 건 아닐까.
조직에서 공손함을 기본으로 삼는 건 분명 바람직하다. 그 태도가 무너져 insubordinate—불손하고 버릇없는—쪽으로 기울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신뢰는 금세 무너지고, 상사는 더 이상 그 직원을 지켜주지 않는다. 나는 HR로 일하면서 이런 모습을 수없이 겪어왔다.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태도가 insubordinate 하면 오래 버티지 못했다. 반대로 조금 부족해도 존중을 잃지 않는 직원은 결국 성장의 기회를 잡았다. 사회생활에서 실력만큼 중요한 게 바로 이 균형이다. 존중과 불손 사이의 얇은 선—그 선을 지키는 것이 커리어의 수명을 결정한다.
성과 평가 기간이면 이런 장면이 반복된다. 회의실에 들어가면 매니저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한다.
“이번 프로젝트에서 이런 부분은 좋았지만, 이런 부분은 아쉽다.”
그 순간 머릿속은 하얘지고, 마음은 철렁 내려앉는다.
많은 직장인이 피드백을 ‘지적’으로만 받아들인다. 하지만 HR팀장으로 수많은 평가와 대화를 지켜본 나는 확신한다. 진짜 성장은 피드백에서 시작된다. 성과 관리는 연말 성적표로 끝나지 않는다. 그 사이사이의 피드백을 어떻게 소화하고 행동으로 옮겼는지가 커리어를 갈라놓는다.
왜 두려울까?
내가 부족하다는 걸 인정하는 것 같아서다. 그러나 상사는 완벽을 바라지 않는다. 오히려 부족함을 인정하고 개선하려는 태도를 높이 평가한다.
직장에서 듣는 날카로운 피드백은 충격처럼 다가올 수 있다. 그래서 초반에는 감정적으로 반응하기 쉽다. 하지만 그 순간을 어떻게 넘기느냐가 커리어의 분기점이다. 감정적 반발로 끝내면 거기서 멈춘다. 한 발 물러서서 피드백의 본질을 붙잡는 순간, 성장의 기회가 열린다.
한 가지 현실을 알 필요가 있다. 회사에는 당신에게 모두 공유되지 않는 내부 평가 메모가 존재한다. 승진과 보상, 나아가 미래 리더 후보 선별을 위해 관리자가 남기는 솔직한 기록이다. 당신에게 전달된 일부에 불과한 피드백이 잔인하게 느껴졌다면, 내부 메모를 본다면 훨씬 더 큰 충격을 받을지도 모른다.
그 기록은 단순히 상사의 개인 메모로 끝나지 않는다. 상사들은 이 메모를 가지고 모여 당신을 차갑게 평가한다. 그 자리를 ‘Talent calibration session’이라고 부른다. HR과 여러 부서 매니저들이 한 자리에 앉아 팀원들의 이름을 하나씩 꺼내놓는다. “이 직원은 A등급이 맞는가?”, “이 사람을 차기 리더 후보로 올릴 수 있는가?” 같은 정말이지 직설적이고 잔인할 정도로 솔직한 평가가 오가고, 때로는 낱낱이 단점이 드러난다. 겉으로는 ‘인재 평가, 조정 회의’지만, 실제로는 회사라는 무대 위에서 누가 살아남을지를 가르는 냉정한 심사대에 가깝다.
나는 이 세션에서 수많은 장면을 목격했다. 잘못된 정보를 거듭 제공한 직원을 피드백했을 때, 그는 “그 모든 걸 제가 다 책임질 순 없잖아요”라며 감정적으로 방어했다. 물론 억울할 수 있다. 하지만 상사로서 나는 그 순간 기본 신뢰를 거둘 수밖에 없었다. 평가 메모에는 이렇게 기록됐다. “피드백에 방어적 반응. 성장 잠재력 의문.” 실제 세션에서 이 메모가 공유되자, 다른 관리자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의견을 보탰다.
반대로 또 다른 직원은 같은 상황에서 “그 부분은 저도 아쉬웠습니다. 다음번엔 이렇게 개선해 보겠습니다”라고 답했다. 나는 그 자리에서 바로 메모했다. “셀프 리더십 있음. 성장 잠재력 높음.”
그 후 평가 세션에서 이 메모를 공유했을 때는 분위기가 달랐다. “앞으로 키워야 할 인재”라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같은 지적을 받았지만, 태도 하나가 평가의 무게를 갈라놓았다. 회사란 결국 비교의 장이다. 상사 한 명의 시선이 아니라, 여러 명의 관리자들이 모여 당신의 현재와 미래를 냉정하게 저울질한다.
그렇다면 피드백을 어떻게 받아야 성장으로 연결될 수 있을까. 나는 이 방법을 알려주고 싶다. 바로 A.L.E.R.T 모델이다.
A – Ask (요청하기)
기다리지 말고 먼저 요청하라. “저 잘하나요?” 대신 “이번 프로젝트에서 제가 더 잘할 수 있었던 부분이 있었을까요?”처럼 구체적으로 묻는다.
L – Listen (경청하기)
듣는 동안 반박, 방어 금지. 끝까지 듣고, 개선의 힌트를 잡아라.
E – Express Thanks (감사하기)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한마디가 신뢰를 쌓는다. “정리하면 A·B 부분이군요”처럼 요약까지 하면 금상첨화.
R – Reflect (성찰하기)
집에 가서도 곱씹어라. “어떻게 활용할까? 어떤 변화를 줄까?” 성찰 없는 피드백은 흘러간 말이다.
T – Take Action (실행 & 후속 보고)
“지난번 말씀대로 이렇게 바꿔봤더니 효과가 있었습니다.” 후속 보고까지 해야 ‘성장형 인재’로 각인된다.
질문이 바뀌면 피드백도 바뀐다. “어떠셨나요?” 대신 이렇게 묻자.
“제가 가장 잘한 부분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더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 제가 개선할 수 있는 한 가지는 뭘까요?”
“이번 프로젝트 성과가 기대에 미쳤나요, 아니면 부족했나요?”
이런 질문은 상대를 구체적으로 답하게 만들고, 당신은 성장 포인트를 정확히 알 수 있다.
피드백에는 두 가지가 있다. 기분 좋은 칭찬, 마음을 찌르는 지적. 둘 다 성장의 자양분이다.
칭찬을 받았을 때 → “그게 왜 효과적이었을까?”를 분석하고, 강점을 반복하라.
아픈 피드백을 받았을 때 → 방어 대신 구체적 사례를 요청하라. 그래야 현실적인 개선안이 보인다.
실제로 한 직원은 지적을 듣고 며칠간 입을 닫아버렸다. 반면 다른 직원은 “예를 들어 언제 제가 그런 모습이 있었을까요?”라고 되물었다(공손한 태도로). 그는 곧바로 개선 단서를 찾았고, 훨씬 빠르게 성장했다.
피드백은 받는 순간보다 받은 뒤 행동이 핵심.
매니저가 주기를 기다리지 말고, 내가 먼저 요청하라.
메모하고, 스스로 성찰 질문을 던져라.
실행 후 후속 보고는 반드시. “저 바뀌었어요”를 보여줘라.
피드백은 관계를 약화시키지 않는다. 신뢰를 깊게 만든다.
비난 대신 제안: “왜 이렇게밖에 못했어?” → “이 부분은 이렇게 바꾸면 더 좋아질 것 같아요.”
사람이 아니라 행동: “너는 항상 늦어” → “이번 회의 준비가 조금 늦었습니다. 다음엔 이렇게 준비하면 좋겠어요.”
칭찬–개선점 균형: 잘한 점을 먼저 짚고, 구체적 개선점을 말한다. ‘샌드위치 피드백’은 여전히 유효하다.
피드백은 평가의 도구가 아니라, 당신을 다듬는 자산이다. 상사의 말 한마디가 때로는 칼처럼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그 칼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커리어는 달라진다. 방어와 부정으로 칼을 막으면 상처만 남고,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면 가능성을 다듬는 조각도가 된다.
결국 상사가 메모하는 건 숫자로 드러나는 성과만이 아니다. 순간순간의 반응과 태도가 성장 잠재력을 가른다.
피드백을 기회로 삼는 태도—이것이 회사생활에서 가장 값진 경쟁력이다. 실력은 시간이 지나면 누구나 쌓인다. 그러나 태도는 오늘 당장 차이를 만든다. 성장의 문은 성적표가 아니라 피드백에서 열린다.
나는 내 아들을 비롯한 모든 후배들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피드백을 두려워하지 마라. 그건 너를 깎아내리는 게 아니라, 더 좋은 너를 꺼내주는 과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