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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원 Jiwon Kim Sep 07. 2024

로펌 변호사에서 사내 변호사로

첫 이직 후 소회


최근에 변호사로서 첫 이직을 하게 되었다. 개략적으로만 말하면 '로펌 변호사'로 일하다 '외국계기업 사내변호사'가 되었다. 아직 새 직장에서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지금 시점까지 알고 느껴온 바가 앞으로 어떻게 휙휙 달라질지 몰라 조심스럽지만, 그래도 느낀 바를 간단히 글로 옮겨본다.




‘회사’라는 조직의 일원이라는 감각


로펌에서는 보통 소속 부서 및 함께 일하는 파트너 변호사를 중심으로 업무가 진행된다. 어느 정도 규모를 갖춘 로펌은 고객을 위해 모든 서비스를 원스톱으로 제공하는 종합로펌을 지향, 표방하는 경우가 많은데, 실제로는 일부 로펌을 제외하고는 로펌에서 팀/부서간 협업이 모든 사건마다 긴밀하게 이루어지기는 어려운 것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로펌에서 일할 때는 소속 부서나 함께 일하는 파트너 변호사를 중심으로 한 단위를 넘어 더 큰 범위에서 소속감을 가지기는 조금 어려웠고, 오히려 로펌이 개인사업자의 집합체와 비슷하다는 인상을 받아왔다.


이와 달리 사내변호사로 일하면서는 일상적으로 회사 전체를 관장하는 ‘시스템’을 활용하고, 사내변호사의 고객이라 할 수 있는 회사를 위해 사내 여러 부서로부터 질의를 받아 검토의견을 제공하며, 물리적으로도 다른 부서 직원분들을 마주할 일이 많다보니 내가 ‘회사’라는 조직의 일원이라는 감각을 일상적으로 그리고 생생하게 느끼며 일하고 있다. 특히 입사 직후 인사팀에서 온보딩이나 팀컬처 관련해서 담당자를 두고 상시적으로 업무를 수행하시는 걸 보고, 로펌과 사뭇 다른 단면에 놀랐던 기억이 난다.


입사 직후부터 회사의 일원이라는 감각을 느껴온 덕분에 여러 가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우선 매일 아침 사내 Press 담당자님께서 우리 회사나 업계 관련 뉴스 링크를 목록으로 정리해서 발송해주시는데, 그 메일을 꼭 읽어보려 하는 편이다. 로펌 변호사로 일할 때는 생각보다 세상 돌아가는 걸 모르고 살게 되는 느낌이었는데, 아무래도 실제 사업을 영위하는 회사에 몸담게 되니 법무팀에 있더라도 이 정도 이해는 필수적이라는 생각에 최소한 우리 회사의 현황이나 업계의 동향 정도는 꼬박꼬박 챙겨보게 된다.


나는 회사의 법무팀에서 리걸과 컴플라이언스 양쪽을 담당하고 있다. 두 가지 업무 모두 수행하다보면 사내의 다양한 사업부 및 부서의 담당자 분들과 연락을 자주 주고받을 일이 많다. 업무상 연락을 주고받는 분들이 이쪽 업계에서 상당한 업력을 쌓은 분들이란 걸 알게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있다. 그럴수록 "내가 하는 말이 날고 기는 실무자들에게 '책상머리에서 하는 뜬구름 잡는 소리'가 되지 않아야" 하고, 이를 넘어 적시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의견을 제공할 수 있도록 관련 공부에 충실해야겠다는 의지가 강하게 든다. 다행히 법무팀에 업계 현업부서들을 두루 거친 분들이 계셔서, 그 분들로부터 현업 실무나 주요 쟁점들을 여쭤보면서 열심히 배우고 있다.



‘전문성’과는 또다른 ‘탁월성’을 좇아서


새 회사에 입사하기 전 떠난 여행에서 오랜만에 항상 곁에 두고 읽어온 <일하는 마음>을 가져갔는데, "전통적인 의미의 전문성을 어떻게 갖추느냐보다는 자신만의 탁월성을 어떻게 만드느냐가 더 중요한 문제다"는 말이 특별히 새롭고 인상적으로 다가왔고, 실제 입사해서도 이 말을 마음에 새겨 “사내변호사로서 추구할 수 있는 ‘탁월성’은 무엇인지”에 대해 궁리하고 있다.


저자 제현주님은 '전문성'과 '탁월성'을 다음과 같이 대별한다:


전문성

한 가지 이름의 직업과 결부됨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인정


탁월성

일을 바라보는 접근법, 다양한 분야로 확대할 수 있는 중심 기술과 연결됨

자발적인 동기부여를 통해 스스로 쌓아가는 역량


위 내용대로, 과연 '변호사'라는 국가전문자격을 취득한 직후부터 아직 1년차 변호사인데도 불구하고 외부로부터 꽤 막중한 인정(과 동시에 책임)이 주어지는 것을 체감할 수 있었다. 그러나 동시에 죽을 때까지 더 이상의 노력 없이도 인정을 받게 해주는 이러한 '자격'과 '전문성'에 안주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위에 소개한 '전문성'과 '탁월성'이라는 개념과 연결지어 생각해 본다면, 변호사 자격을 취득함으로써 전문성을 갖춘 이후에도, 고객(로펌 변호사에게는 다양한 외부고객, 사내변호사에게는 일차적으로 고용인인 회사)에게 제 몫 그 이상을 해낸다고 인정받는 변호사가 되기 위해서는 전문성 이상의 탁월성을 갈고닦아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사내변호사로서 추구할 수 있는 ‘탁월성’


사내변호사로서 추구할 수 있는 ‘탁월성’은 무엇일까? 앞으로도 사내변호사로서 일하는 동안 꾸준히 생각해볼 문제겠지만, 우선 사내변호사(in-house counsel)로서 다른 부서에서 질의를 받아 검토의견을 제공하는 업무와 관련하여, 로펌 변호사(external lawyer)의 경우와는 다른 방향으로 추구할 수 있는 탁월성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1. 우선 사내변호사가 되어 가장 크게 느끼는 차이점은, ‘정보에 대한 접근성’을 갖게 되어 ‘완전한 정보’를 가지고 검토의견 작성에 임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로펌에 있을 때는 검토를 위한 필요최소한의 정보를 제공받는 경우가 많았고, 고객사 담당자와 연락을 주고받아 검토에 필요한 추가정보를 제공받기도 하였지만, 주어진 정보에만 기반하여 검토의견을 작성하면서는 어딘지 아쉽거나 찝찝한 기분이 드는 경우가 많았다. 일부 이런 이유로 로펌에서 검토의견을 내보낼 때는 책임의 범위를 제한, 배제하는 disclaimer 문구를 작성하는 데 유의하기도 하고, 주변 변호사님들로부터 “판단됩니다/생각됩니다/사료됩니다/보입니다” 등과 같은 표현들 가운데 상황에 맞는 것을 적절하게 골라쓰는 게 중요하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그런데 사내변호사로 일하면서는 ① 보안상 문제, 정보교환 과정에서의 문제 등 여러 이유로 로펌 변호사는 접근하기 어려운 사내정보는 물론이고 ② 사내 및 업계 내의 유사 사례에 대한 접근권한을 활용하고, ③ 거시적으로는 산업 분야에 대한 지식과 ④ 구체적으로는 해당 질의의 맥락까지 고려하기가 용이하다. 이를 바탕으로, 마음 먹기에 따라 수준 높은 검토의견을 제공할 수 있는 여지가 커졌다고 느낀다.


개인적으로 컨설팅펌이나 로펌 등 외부기관(external firm)에 구성원들의 업력(기간)에 비해 높은 수수료를 제공하는 것은 이들이 산업 불문 보편적으로 적용 가능한 툴은 물론이고 해당 산업 내에서 유사한 사례를 다수 다루는 직군이기 때문이라 생각하는데, 인하우스에서 해당 산업의 전문지식을 잘 쌓는 경우 그에 못지 않은 내지 그를 능가하는 수준의 결과물을 제공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실제로 사내변호사 채용 수요가 증가한 원인은 변호사 수의 증가와 맞물려 산업에 특화된 법률수요가 증가하였기 때문이라는 것이 대한변호사협회 「사내변호사 업무편람」의 설명이기도 하다.


물론 이렇게 사내변호사로서 정보접근성과 전문지식을 바탕으로 높은 수준의 검토의견을 제공할 수 있다면 이상적이겠지만, 이는 동시에 사내변호사는 무릇 ① 내지 ④에 대한 접근권한 내지 지식을 갖추고 있으리라는 회사 내부의 기대를 받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므로, 입사한 지 얼마 안 된 시점에서는 히스토리와 산업에 대한 이해를 갖추느라 바쁘기는 하다. 질의를 남긴 현업부서에서 당연스럽게 기대하는 ‘공통의 이해’를 혼자서만 갖추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우려 때문에 어느 하나 허투루 보아 넘기기 어렵다. 그러나 입사 초반의 시기를 넘기고 나면 이런 시기가 ‘말이 통하는 변호사’로 거듭나는 데 든든한 밑거름이 되어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2. 또 한 가지는 검토의견을 작성할 때 현업부서로 넘어가 실제 실행(execution)으로 옮겨지는 것까지를 염두에 두고 작성하게 된다는 것이다.


입사 직후 타사와의 업무협약(MOU)을 검토한 적이 있다. 본격적인 계약 체결 단계 전에, 당사자간 협력을 도모하기 위해 맺는 MOU를 맺을 때는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여 분쟁이 발생할 여지가 매우 낮다. 그래서 보통 로펌 검토까지 넘어오지 않기에 검토해본 적이 없던 협약을, 이직 후 처음 살펴보게 됐다. 협약 내용을 살펴보니, 양사가 공동 사업을 성공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세부 업무를 진행함에 있어 "신의성실 의무를 다하여 상호 협력한다"는 취지의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이처럼 허울 좋은(?) 내용으로 가득한 협약서지만 그 중에서도 우리 회사에 문제되는 조항이 있을까 싶어 꼼꼼히 뜯어보았고 역시나 문제될 만한 내용은 없었다(!).


그렇게 협약서 검토본을 보낸 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은 시점에, 회사 내 한쪽 공간에 MOU에 따라 양사간의 협력이 아름답게 이루어진 결과물이 설치되어 있는 것을 발견했고, 언론보도도 어마어마하게 이루어진 것을 확인했다(어떤 협약인지 구체적으로 밝히는 것 역시 어렵다는 점을 언급한다). 내가 검토한 협약서 자체에 엄청난 파워가 있어서라기 보다는, 협약서 체결 전부터 미리 업무협력이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긴 하다. 하지만 이 건이 계약이었고 세세한 내용 수정이 중요한 사안이었다면 어땠을까? 종이 위의 문구가 실행단계까지 바로 옮겨지는 걸 눈 앞에서 보니 신기한 느낌이 들었다.


이 건 이후로 진행한 일들도 현업 부서의 업무처리에 즉각 반영되어 매출에까지 연동되고 있는 것을 목격하고 있다. 책임감이나 부담감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뿌듯함이 더 크게 다가오는 것 같다. 내가 검토한 사업이 바로 실제 사업으로 추진되고 있는 현장을 회사 내부에서도 일상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보니, "리걸 검토 따로, 현실 따로"가 되지 않도록 "실행까지 고려한" 검토를 전달할 수 있도록 그만큼 만전을 기하게 된다.




이직 후 소회 요약


앞서 말한 내용을 요약하면, 새 직장에서는 회사라는 조직의 일원으로서의 감각을 느끼면서, 사내변호사로서 추구할 수 있는 탁월성을 알아가고 그에 가까워지는 과정으로서 일을 즐기고 있다.


이 글은 입사한 달의 마지막 주 월요일에 쓰기 시작해서 대부분을 일필휘지로 써두었는데, 주중을 알차게 보내고 나니 벌써 금요일 밤이 되었다. 여기서 글을 마무리하자니 일주일을 더 보내면서 덧붙이고 싶은 말들이 더 많이 생겨 아쉽지만, 못다한 말은 앞으로도 쭉 "변호사 일기"를 통해 다뤄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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