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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원 Nov 09. 2024

마라톤에서 피지크로,
삶의 의미를 찾아서

Ep2


흡연자에서 비흡연자로, 그리고 첫 5km 대회 도전

난 흡연자였다. 희로애락이 함께하는 매 순간마다 담배와 함께했다. 하루의 시작과 끝에 담배가 있었고 삶 그 자체였다. 술자리가 없는 날에는 1갑 ~ 1갑 반, 술로 하루를 끝마치는 날에는 2갑 가까이 피웠었다. 금연 초기에는 과거 흡연 습관을 떳떳이 얘기할 수 없었다. 언제 다시 흡연자로 돌아갈지 알 수 없었고, 나 자신을 믿지 못했다. 삶 그 자체가 되어버렸기에 끊을 수 없으리라 생각했었다. 빈 수레가 요란한 것처럼 더 이상 그러한 모습을 보이기 싫었고 기록하기 싫었다.


그래서였을까 금연을 다짐했던 2019년 9월, 달리기와 인연이 없었던 나였지만 만약 금연에 성공한다면 평생 금연을 위해 풀코스 마라톤 완주 목표를 세웠었다. 당연히 실패할 줄 알았던 금연이기에 아무 생각 없이 세웠던 목표,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시간이 흘러 비장한 각오와 다짐으로 시작한 금연은 외출을 자제하는 극단적인 선택을 통해 주변 환경과 일상 루틴 자체를 변화시켰고 끝내 성공하였다. 담배연기의 구수한 향은 호기심에 피웠던 그 시절의 역한 향으로 바뀌었다. 금연을 통해 성찰적 질문에 답할 수 있는 나를 찾아냈다. 더 이상 담배를 찾지 않는 내 모습이 때로는 새로운 자아가 형성된 것만큼 낯설지만, 나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순간들이 행복했다.


금연으로 배운 인내와 같은 팀 멤버분들의 선한 영향력. 문득 풀코스 마라톤 완주가 떠올랐다. 흡연자에서 비흡연자로. 이를 평생 이어가기 위한 풀코스 마라톤 완주 목표의 실천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어릴 적 집 근처 돼지갈비 집을 가면 밑반찬으로 항상 양념 게장이 나왔었다. 먹어보라며 건네는 부모님께 저걸 어떻게 먹냐며 손사래 쳤지만, 지금은 없어서 못 먹는 음식이 되었다. 양념 게장을 정말 좋아하지만 생새우를 회처럼 먹어본 적이 없다. 그렇지만 양념 게장의 맛을 기억하고 있기에, 생새우의 맛과 식감도 게장과 비슷하지 않을까 라는 상상이 간다. 게장도, 생새우도 먹어본 적이 없는 사람은 입속에 집어넣는 것 자체를 신기해한다. 이렇듯 간접경험은 삶에서 중요하다. 이루고자 하는 목표의 크기는 직접 해봐야 안다. 살아보니 직접 해보지 않으면 느끼지 못하는 것들이 많았다. 또한 직접 해보지 않거나 유사 경험이 없는 상태에서 판단하는 것은, 상황에 따라 상대방에 대한 모욕이자 나의 어리석음을 표출하는 행위임을 깨달았다.


어느 날 같은 팀 멤버분들의 선한 영향력으로 이어지는 묘한 기운에 이끌려 근처 공원을 걷기 시작했다. 이 당시만 해도 풀코스 완주의 의미가 무엇인지 몰랐다. '그냥 하면 되는 거 아닐까?'라는 생각으로 뛰기 시작했다. 잠시 뒤 달리는 법을 잊은듯한 다리 근육이 왜 갑자기 안 하던 행동을 하냐며 나를 혼내는 것 만 같았다. 오랜 기간 흡연 습관으로 망가진 폐활량과 운동 부족으로 인해 1분을 뛰는 것조차 나에겐 도전으로 다가왔다. 달리기 주법, 1km 평균 페이스가 문제가 아니라 뛰기 위한 몸을 만드는 게 우선이었던 시기였다.


매일 아침 달리기 위해 공원으로 가야 하는 습관을 만드는 것부터 시작했다. 매일 걷고 달리기를 반복하며 첫 3km 도전을 하게 되었는데, 정말인지 '고통스럽다' 표현 외에 말할 것이 없다. 마지막 1km 지점을 앞두고 '대체 이걸 왜 할까'라는 생각과, 당장이라도 소나기가 쏟아져 내 두발을 멈추게만 하고 싶었다. 마지막 1km를 남겨두고 걷자니 거친 호흡을 가다듬으며 달려온 거리가 아깝고, 계속 뛰자니 이걸 왜 하고 있나 싶었다. 3km를 뛰어보니 42.195km 의미를 조금이나마 알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묘한 기분을 느끼게 되었다.

매일 아침 30~40분 달리기 연습을 반복하다 보니 달리기가 재밌어지기 시작했다. 특히 오늘 하루 달리기가 끝나는 35분대 시간부터 오히려 힘이 샘솟는 듯한 알 수 없는 기분을 느꼈는데, 뒤늦게 알고 보니 러너스 하이였다. 달릴수록 상쾌해지는 러너스 하이. 보통 1분에 120회 이상의 심장박동수로 30분 정도 달리다 보면 러너스 하이를 느낄 수 있다고 한다. 이게 참 묘한 기분이다. 나 같은 경우는 이 상태가 되면 하체 부분의 감각이 거의 없어지고 누군가 내 발을 대신 움직여주는 느낌을 받았다. 머릿속은 깨끗이 비워지고 평소에 해왔던 근심과 걱정들이 무엇인지 조차 잊게 된다.


이때 잠시 상상에 빠지기도 하는데, 소중한 사람들이 내가 뛰는 모습을 보러 왔고 조금만 더 뛰면 완주가 눈앞이라는 상상. 정말 취득하고 싶었던 자격증의 합격 결과에 내 이름이 있을 때 속 깊은 곳에서부터 머리끝까지 올라오는 묘한 기운. 매일 아침 달리기를 즐기다 보니 러너스 하이를 느꼈고, 달리는 재미를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 재미는 오래가지 못했고 3주가량 뛸 수 없는 고통을 맞이하게 된다.

달리기의 재미를 알고서 얼마 지나지 않아 찾아온 무릎 부상. 참고 달릴 수 있는 고통이 아닌, 달릴 수 없는 고통이었다. 걸을 때는 괜찮았지만 체중을 실어 달리는 순간 송곳이 뼈를 깎아내리는 듯하였다. 첫 마라톤 대회도 내년으로 미뤄지는 듯했다. 금연 후유증으로 급격히 불어난 체중과 운동량 부족이 원인이었다. 러너스 하이를 느낀 채 매일 달려왔지만 오히려 안 좋은 상황을 만들어냈다. 비록 달릴 수는 없었지만 걸을 수는 있었기에 매일 아침 걷기를 반복하며 상태를 체크했다. 27년 살아오며 뛰지 못했던 순간은 없었기에 뛰지 못하는 내 모습이 너무나도 낯설었다. 이 기간에 삶에 대한 가치관이 또 한 번 바뀌었다.


건강이 우선인 삶. 지금껏 건강이 늘 최고라 말했지만 몸이 망가질 때까지 돌보지 않았던 것 같다. 우리는 보통 삶의 전반전에 중요한 것들을 챙기느라 망가지고 나서야 돌보기 시작한다. 27년간 아무 탈 없이 잘 달려왔고 항상 달릴 수 있었던 무릎이, 어느 날 갑자기 달릴 수 없게 되자 복잡 미묘한 감정들이 밀려왔다. 당연하다 생각했던 것을 할 수 없게 될 때의 막막함과 두려움은 완쾌한 지금도 잊히지 않는 순간이다.

1달간의 재활 훈련이 끝나고 2020 경기 국제 하프마라톤 VIRTUAL RUN 대회 접수와 함께 본격적인 기록 단축 훈련을 시작하게 되었다. 매일 아침 충분한 스트레칭으로 시작하는 5km 달리기. 달리기 자세, 주법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며 내 몸에 적합한 리듬을 갖추기 위해 다양한 시도와 변화를 주었다.


직장인 신분으로 매일 아침 달리기 위해선, 일상 루틴에 변화가 필요했다. 최소 저녁 10시에는 침대에 누워야 아침 6시에는 기상하여 오전 운동 진행이 가능했다. 특히 수면 시간이 부족할 경우 다음날 운동에 큰 영향을 미치기에 컨디션 조절이 필수였다. 통제 가능한 범위 내에서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려 노력하였고 매일 달려왔다.


매일 마주하는 풍경. 5km를 뛰어야 시작되는 하루. 누군가 대신 뛰어줄 수도, 도움을 청할 수도 없다. 내가 시작한 달리기는 내가 끝내야만 했다. 다음날, 그다음 날도 어제와 똑같은 고통을 느끼며 달려야 했다. 지루하고 외로운 싸움을 매일 이겨내는 기분이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알아줄 이유도 없는 혼자만의 달리기를 통해 매일 해냈다는 자신감과 자존감을 얻을 수 있었다.

55일간 재활 걷기 포함 31시간 263km 달렸고 오늘 아침 첫 대회를 450 페이스로 마치게 되었다. 첫 대회 목표인 430 페이스 달성은 12월로 미뤄졌지만 매번 같은 시간에 노력해 왔던 순간들이 값지고 소중했다.


돌이켜보면 금연과 20년 7월부터 시작한 맨몸 운동을 제외하고 무언가를 이렇게나 꾸준히 해본 적이 없었다. 노력 없이 결과만 나타나길 바랐다. 이루지 못한 목표의 원인을 내가 아닌 외부의 문제로 판단했다. 매일 달리다 보면 깨닫는다. 모든 문제의 원인은 나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무언가 잘 안 되는 원인이 외부에 있을지라도 선택과 결정의 몫은 항상 나라는 것. 태도와 건강만큼 중요한 것은 삶에서 없다는 것. 달리기를 통해 삶을 배웠다.


첫 12km 대회 완주, 고통 속의 성취

첫 5km 대회를 450 페이스로 끝마치게 되었다. 430 페이스가 목표였지만 55일간의 노력만으론 부족했다. 첫 대회를 회고하며 달리기 위한 몸을 만드는 과정에 의의를 두었다. 하지만 목표를 확실히 되새길 필요가 있었다. 건강에 목적을 둔 완주가 목표인지, 한계를 극복했을 때만 알 수 있는 성취감을 오랫동안 기억하고 간직할 것인지.

풀코스 마라톤을 통해 보다 강한 정신력과 끈기, 인내를 가지는 것이 목표였다. 열심히 살아왔다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한계에 도달하면 쉽게 포기하기를 반복하였다. 무언가 잘 안 되는 날이면 문제의 원인을 외부로 돌렸다. 나는 잘하고 있는데 시스템이 문제고 프로세스가 문제라 생각했었다. 끈기와 인내를 가지고 한 가지를 제대로 해본 적이 없었다. 빈수레를 실제로 끌어보면 정말 요란하다. 마치 내가 빈수레처럼 느껴졌다. 묵묵히 가는 사람들은 묵묵히란 단어에 모든 게 담겨있었다. 결과에 모든 과정이 담겨있기에 결과로만 얘기한다. 나처럼 요란하거나 시끄럽지 않았다. 편안한 감정을 외면하고 무시할 줄 아는 용기. 꾸준함을 통해 같은 노력을 반복하는 것. 꾸준한 사람이 결국 잘하는 사람이 된다는 것. 이에 대한 결과물로 삶 버킷리스트 중 하나인 Sub-3 기록을 만들어 보는 것. 이것이 내 목표였기에 지금보다 강도 높은 훈련이 필요했다.

2020년 11월 8일 첫 5km 대회가 끝난 저녁, 맛있게 먹으면 0칼로리라는 굽네 고추 바사삭 순살 치킨을 먹었다. 맛있는 정도가 아니라 황홀했다. 황홀함도 잠시, 장거리 훈련 방법을 찾던 중 LSD 훈련을 알게 되었다.


LSD는 "Long Slow Distance"의 약자로 장거리를 천천히 거리 기준이 아닌, 시간 기준으로 달리는 것을 의미한다. 심폐 기능 향상과 지구려 배양에 적절한 운동이다. 장거리 기초 체력을 쌓기 위한 효과적인 훈련법 중 하나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옆사람과 대화가 될 정도의 즐거운 페이스로 달리는 것이다. 1시간 30분 훈련이면 1시간 30분 동안 1km를 동일한 페이스로 달릴 수 있는 스피드이다. 이는 개인차가 크기에 수준에 맞춰 페이스를 직접 정하면 된다.


휴스턴 베일러 의과대학 조교수이자 휴스턴 마라톤의 부상 담당 주치의인 존 시안카 박사는, LSD 훈련을 대체할만한 다른 훈련법은 없다고 얘기한다. 42.195km를 달리기 위해 마치 몸에게 달려야 하는 거리를 기억시켜 주는 훈련인 듯하다.


55일간 매일 5km를 죽을 듯 말 듯 달려왔던 나에게 천천히 달려도 된다 하니 너무나 반가운 얘기였다. LSD 훈련에 대한 요약 정보만을 확인한 채 11월 9일 ~ 11월 14일, 6일가량 LSD 훈련 후 11월 15일 12km 마라톤 참가를 계획하게 된다.

11/9일 월요일 12km 대회 6일 전, LSD 훈련 1일 차 [40분 달리기]

630 ~ 730 페이스로 훈련을 시작하였다. 달리기 전/후로 5분씩 준비 걷기와 마무리 걷기를 병행하였다. 놀라웠던 점은 달리기 처음 시작했을 당시 640 페이스로 3km 달렸었는데, 하늘이 노랗다는 표현밖에 할 수 없었던 때가 있었다. 지금은 2배 조금 안 되는 거리를 달리고도 쾌적함을 느낄 수 있었다. 2달 가까이 진행된 5km 달리기 연습의 효과가 LSD 훈련 첫날 체감되었다. 그다지 힘들지 않았고 조금 더 빨리 달리고 싶다는 생각이 40분 내내 들었던 1일 차 훈련이었다.

11/10일 화요일 12km 대회 5일 전, LSD 훈련 2일 차 [50분 달리기]

달리기 시간을 10분씩 늘려나갔다. 준비/마무리 걷기 10분 후 50분 동안 달렸다. 1일 차 5.9km, 2일 차는 7.6km 달렸다. 5km 첫 대회 페이스가 450이었으니, 조금 더 빨리 달리고 싶다는 생각에 630 ~ 635 페이스로 달리기 시작했다. 1일 차와 마찬가지로 크게 힘든 점은 없었지만, 훈련이 끝나고 몸이 무거워지는 느낌을 받았다. 상쾌함은 있었지만 쾌적함은 1일 차보다 부족했다.

11/11일 수요일 12km 대회 4일 전, LSD 훈련 3일 차 [1시간 달리기]

LSD 훈련이 시작되고 나서 아침 날씨가 급격히 떨어졌다. 강원도 군 복무 시절만큼은 아니었지만 손과 귀가 꽤나 시렸다. 점점 아침을 맞이하는 몸이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새벽 6시 기상 후 빠릿빠릿한 동작으로 문밖을 나서는 모습은 점차 사라지고 있었다. '오늘은 쉬자.', '무리하면 안 좋아.', '이러다 감기라도 걸리면..' 온갖 자기 합리화와 그럴싸한 핑계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문밖을 나섰고 다소 무거운 몸으로 훈련을 끝마치게 되었다.

11/12일 목요일 12km 대회 3일 전, LSD 훈련 4일 차 [1시간 10분 달리기]

아침을 맞이하는 게 점점 무서워졌다. 매일 10분씩 시간을 늘려가다 보니 5km 기록 주 연습 때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내가 아무리 빨리 달려도 1시간 10분 동안 달려야 끝나는 레이스. 10분씩 늘려갔을 뿐인데, 체감 거리는 5km 이상 늘어난 듯했다. 몸이 정말 무거웠고 조금 더 자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시작한 레이스는 내가 끝내야 했다. 또한 Sub-3 목표를 이루기 위해 필요한 노력은 아직 시작도 안 했다 생각했다. 이걸 왜 하고 있나 생각이 또다시 들었지만 그냥 아무 생각 없이 했다. 준비/마무리 걷기 시간 제외, 대회 거리인 12km에 근접하게 되었다. 금요일이 되면 12km를 돌파할 생각에 설레고 신이 날 것만 같았지만, 하루만 쉴까 라는 생각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11/13일 금요일 12km 대회 2일 전, LSD 훈련 5일 차 [1시간 20분 달리기]

아무 생각이 없었다. 알람이 울리면 일어나야만 했고 달려야만 했다. 그래야 하루가 시작되었다. 페이스는 전날보다 급격히 떨어졌고, 고르지 못했다. 매일 10분씩 늘어가는 훈련은 지루하고 견디기 힘든 훈련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고통스럽고 힘들지만 어떻게든 참고 달리니 1시간 20분 레이스가 끝이 났다.

11/14일 토요일 12km 대회 1일 전, LSD 훈련 6일 차 [1시간 30분 달리기]

울고 싶었다. 나라는 인간이 참 나약하다는 걸 또 한 번 느꼈다. 월요일부터 하루도 쉬지 않고 진행한 LSD 훈련으로 몸의 피로가 쌓일 대로 쌓였다. LSD 훈련에 대해 좀 더 찾아보니, 1주일 혹은 격주 단위로 본인 페이스에 맞춰서 진행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하지만 내년 춘마 Sub-3 달성을 위해서는 연말까지 어떻게든 2시간 이내 Half 완주 가능한 몸을 만들어야 했기에 그냥 진행했다. 미련한 짓일 수도 있겠지만 이것 하나 못 이겨내면 앞으로 뭘 하든 쉽게 포기할 거라 생각했다. 더군다나 빠르게 달리는 페이스도 아니었기에 자기 합리화를 피하고 싶었다. 무릎에 문제는 없었고 정신력에 문제가 있으니 오늘도 달리기로 하였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더욱 강하게 한다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조금이나마 와닿게 느껴졌다.

11/15 일요일 12km 대회 당일 새벽

6일간 진행된 LSD 훈련의 성과가 나타나는 새벽이 찾아왔다. 어릴 적 소풍 가기 전 날 자연스레 눈떠지는 모습처럼, 신병 위로휴가 전날 밤 잠 못 이루는 내 모습처럼, 그렇게 눈이 떠졌다. 몸은 이미 쉬어라 얘기하지만 경기장으로 가야만 했다. 충분치 못한 수면을 좀 더 채우고 싶었지만 600 페이스 완주를 해야 한다는 목표밖에 보이지 않았다. 당일 아침 컨디션은 최악이었지만 각오만큼은 어느 때보다 좋았다.

11/15 일요일 12km 출발 전

자전거를 타고 대회장에 도착하였다. 곧 펼쳐질 트랙을 미리 살펴보았다. 자전거로도 끝이 보이지 않는 경기장에 막연한 두려움이 앞섰지만, 저 멀리 아침을 알리며 솟아오르는 해를 보며 '할 수 있다'를 수도 없이 되새겼다.

번호표와 기록칩을 부착하였다. 1주일 전 5km 대회에서는 해보지 못했던 출발 전 준비였다. 느낌이 새로웠다. 아침에 먹은 1L의 물은 시간차로 나를 괴롭혔고 화장실을 수도 없이 다녀왔다.

코로나로 인해 100명의 선착순 참가자들만 레이스를 펼치게 되었다. 때가 되니 하나둘씩 모이기 시작했고 대회 안내와 함께 출발 전 간단한 경품 행사 및 몸풀기가 진행되었다. 찬 공기가 맴돌았던 대회장은 금세 뜨거운 열기와 응원의 목소리로 가득 찼다.

어느덧 출발 시간이 되었고 12km/20km 모두 뒤섞이기 시작했다. 마지막 행사 멘트가 이어졌고 3초 뒤 총성과 함께 그윽한 화약 냄새가 출발선을 뒤덮었다. 힘찬 각오를 다지는 목소리가 짧게 울려 퍼졌다. 각자 뜨거운 열기를 내뿜으며 침묵을 유지한 채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레이스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600 페이스 12km 완주

600 페이스로 풀코스를 달리면 4시간 15분 기록이 나온다. 내가 목표로 한 Sub-3 페이스인 409 ~ 416(3시간 이내 완주) 와는 격차가 있다. 하지만 내년 춘마 대회까지 300일 이상 남은 점을 고려한다면 11월 12km 600 기록은 꽤나 만족스럽다 생각했다. 현재 단기 목표는 12월 중순 뚝섬 대회에서 2시간 이내 하프 완주가 목표이다. 11월 16일부터 훈련을 보다 체계적으로 진행한다면 불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런 의미에서 12km 600 페이스는 나에게 있어서 꽤나 도전적인 목표였다. 5km 대회 시 450 페이스가 나왔기에 2배 이상 거리를 달리고도 페이스가 1분 10초밖에 뒤처지지 않았다면 LSD 훈련의 성과가 나타난 것이라 생각했다.


600 페이스 목표로 달리고 또 달렸다. 20km 주자들은 이미 반환점을 지나 나를 지나쳐갔고 10km 선두 그룹 와의 격차도 멀어져만 갔다. 모두들 마스크 사이로 거친 숨을 내쉬며 깊은 생각에 빠지는 듯했다. 나보다 먼저 앞서간 10km 주자는 페이스를 잃었는지 나와의 거리가 좁혀졌다. 초반 5km 지점 통과까지 묘한 기운에 이끌려 초반 페이스를 평소보다 급격히 올리게 되었다. 당연한 결과지만 금세 따라 잡혔고 8km 지점부터 페이스를 잃기 시작했다. 10km, 20km 선두 그룹이 반대편 트랙을 지나쳐갈 때면 적절한 제스처와 함께 우렁찬 목소리로 파이팅을 외치며 큰 힘이 되어주었다.


오늘 펼쳐진 레이스에선 모두가 주인공이었다. 나보다 느린 사람도, 빠른 사람도, 비슷한 사람도 있었지만 페이스는 중요치 않았다. 경쟁 사회에 살다 보니 순위 매김이 불필요한 가치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반환점을 돌 때면 응원단 분들과 진행자분께서 힘찬 응원과 울림 가득한 격려를 해주셨기에 끝까지 달릴 수 있었다. 마라톤은 경쟁 스포츠가 아님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혼자 달렸다면 완주는 가능했겠지만 600 페이스는 불가능했었다. 포기하고 싶어 질 때마다 앞뒤 옆에서 이끌어주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해낼 수 있었다.


12km 완주를 통해 수많은 사람들이 마라톤에 도전하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버츄얼 마라톤에서는 느낄 수 없는 감정들과 소중한 기억들. 나뿐만 아니라 많은 참가자분들께서 혼자였으면 포기했을 거라고 이야기한다. 같이 힘들어하고 아파하고 고통스럽기에 서로의 마음을 가장 잘 이해한다. 1등으로 달리는 주자도, 가장 늦게 달리는 주자도 트랙 위에서는 똑같이 힘들고 아프고 고통스럽다. 트랙 위에서 만큼은 서로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아낌없는 격려와 응원을 할 수 있다.

11km 통과, 마지막 1km 남기고 어느 한 사람이 떠올랐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누군가를 이해한다고 얘기할 때는 2가지 의미가 담겨있다. 이해한다는 건 내가 상대방으로부터 언제 서운함을 느끼는지 아는 때라는 것. 또 하나는 같은 주제를 얘기할 때 비슷한 울림과 공감을 느낄 수 있는 것. 비록 각자 처한 상황은 다르지만 지난 1주일간 LSD 훈련을 통해 내가 느낀 감정들과 멤버분께서 느꼈던 감정이 서로 비슷했기에 나 또한 같은 울림과 공감을 느꼈지 않았을까 싶다. 그럴 때 우리는 누군가의 마음을 이해한다라고 표현한다. Sub-3 목표 달성을 이뤄가는 과정을 기록하며 더욱 강해진 정신력으로 선한 영향력과 좋은 울림, 공감을 주는 사람이 되고자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힘껏 달렸다.

길어 보였던 12km 완주도, 가능할까 싶었던 600 페이스도 포기하지 않고 달리니 가능했다. 걷고 싶은 순간마다 반대편 트랙에서 들려오는 응원의 목소리 덕분에 무사히 완주하게 되었다. 땀범벅이 된 채 기록 확인하며 뛸 수 있음에 감사하고 같이 뛰어줬던 분들께 또 감사했다.

600 페이스 12km 대회를 마치며

지금 당장 Sub-3 페이스(409 ~ 416)와 비교한다면 엄청난 격차이고 불가능해 보인다. 하지만 62일간 꾸준히 달리면서 묵묵히 에 모든 것이 담겨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일부터 약 2주간 최상의 컨디션으로 훈련에 임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오늘 느꼈던 감정들과 지난 1주일간 힘들었던 순간들을 떠올리며 내일부터 새로운 훈련을 시작할 예정이다.


모든 것이 처참했던 나 혼자 하프마라톤 도전기

러닝 90일 차, 누적거리 460km. 첫 하프 2시간 8분 54초, Sub-2 실패. 오후 1시 15분에 공복 상태로 시작하여 1시간 50분 완주를 목표로 513 Pace 네거티브 포지션으로 진행했지만, 좁쌀만 한 크기의 우박이 얼굴을 때려 시야가 흐려졌고 곳곳에 놓인 물웅덩이와 미끄러운 길로 인해 모든 것이 처참했던 나 혼자 하프마라톤 도전기.

계획대로라면 첫 1km를 5분 41초로 끊고 이후 8km까지 km당 3초씩 단축시킨 뒤 9km부터 3초, 2초 단축을 번갈아가면 마지막 20km에서 4분 50초 Pace가 나오기에 21km 1시간 50분 완주가 가능해진다. 환경이 어찌 됐든 모든 것이 서툴렀던 첫 하프.

https://blogs.khaleejtimes.com/2018/02/01/a-marathon-newbie-i-ran-42km-with-a-busted-knee/

마라톤은 처음 접할 때부터 느꼈지만 삶에서 많은 것을 일깨워주는 스포츠다. 몸이 기억하는 지속주 최장거리 기록이 12km인 상태로 21km를 달렸더니 12km까지는 괜찮다가 이후부터 막막한 감정이 밀려온다. 14km, 16km 지점에서 온갖 핑계와 자기 합리화가 시작되었지만 그 고비를 넘기니 어느덧 18km. 18km가 되니 이상하게도 포기하기 싫어진다. 3000m만 더 달리면 지금까지 달려온 18000m가 결과로 나타나니까.

https://www.pinterest.co.kr/pin/288230444884453128/

사람 몸은 충격, 고통, 인내라는 단어를 싫어한다. 정신이 그런 게 아니라 몸이 그렇게 설계되어 있다. 몸이 편한 대로 움직이면 결국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운동뿐만 아니라 사람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의 이면을 파헤쳐보면 대부분 그렇다.

https://www.theguardian.com/science

사회생활에서 벌어지는 성과, 승진, 역량. 이러한 것들 또한 내가 경험해 본 만큼 보이고 아는 만큼 보인다. 그 이상을 요구받으면 경험해보지 못한 영역이기에 지레 겁을 먹는다. 누구에게나 처음은 존재하기에 어렵고 실패할 수 있다. 하지만 막막한 감정을 외면하지 않고 부딪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에겐 분명한 차이가 존재한다.

https://dasforyou.tistory.com/entry/

삶은 성공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많은 시도와 실패를 반복하여 이름을 남기는 것. 성공은 그저 시도의 결과물이자 포기하지 않아서 생긴 결과물일 뿐이다. 1번 성공한 사람보다 100번 실패하여 101번째 도전하는 사람이 더 멋지다. 101번째 도전까지 수많은 부정적 감정을 겪고서도 멈추지 않는다는 것은 해야만 하는 단 1가지 이유가 명확하다는 것이니까. 바르고 굳건한 신념은 돈 주고 사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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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참한 하프마라톤 완주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프레임이 또 한 번 바뀌었다. (2020) 토트넘 중원을 책임지는 호이비에르 선수는, 세계적인 명장이 고심 끝에 떠올린 전술에 늘 물음표를 던진다고 한다. 이에 무리뉴 감독은 귀찮음을 표출하면서도 내심 칭찬하며, 훗날 호이비에르는 분명 감독이 될 거라 확신한다. 앞으로 멍청해 보일 만큼 많은 질문과 실패를 통해 나아갈 길과 방향을 찾고 견고히 다져야겠다.


4번째 하프마라톤이 깨닫게 해 준 삶의 가치

삼촌이 된 첫날 심장이 철컹 내려앉았다. 구급차를 타고 상급 병원으로 이동 중이란다. 몇 시간 뒤 입과 코에 호스를 물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세상 밖으로 나온 지 하루도 안 지난 그놈이 뭘 안다고 입과 코에 호스를 물어야 하는지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고 감정적으로 너무 힘들었다. 형과 나는 우애가 깊었기에 내 자식 마냥 더욱 힘들었다. 내가 해줄 수 있고 할 수 있는 게 무엇이 있을지 생각해 보았다. 


4번째 하프 마라톤 대회는 너무나 기다렸고 기다렸던 대회였지만 지난 3개월간 직장생활 그리고 인간관계가 무엇인지에 대한 값비싼 수업료를 치르며 이어진 과음의 시간들로 인해 몸이 많이 망가졌던지라 마지막까지 참가를 망설였던 대회였다.

하지만 삼촌으로서 조금이나마 고통을 나누고 싶었고 말도 안 되는 얘기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낫길 바라는 마음에 끝내 참가하게 되었다. 하프 마라톤이 처음이 아닌지라 경험적으로 몸 상태를 체크하며 오늘은 분명 힘든 레이스가 될 거란 걸 알면서도 대회 장소를 향해 무겁지만 가벼운 발걸음을 옮겼다.

하남 미사 조정 경기장 

대회 일정은 07:00 안내방송, 07:32 국민의례, 07:40 대회사, 07:50 준비운동, 08:00 10km 출발, 09:15 Half 출발이었다. 풍속은 2m/s, 평균기온은 20도였다. 생각해 보니 지난 3번의 하프 마라톤 대회는 모두 가을과 겨울에 진행되었다. 이렇게 더운 날에 21.195km를 뛰는 적은 처음이었다.

4번째 하프 마라톤 대회에서는 Sub-2 목표를 지니고 있었지만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는 것은 지나온 과정에 있지 결과를 내는 순간에 있는 것이 아니기에 욕심을 버리고 완주를 목표로 했다.

오랜만에 열린 대회인지라 대회장은 축제 분위기였다. 모두들 각자의 레이스를 준비했다. 10km 마지막 참가자가 결승점을 통과하고 몇 분 뒤 하프 레이스가 시작되었다. 

정확히 16km, 1회전만 남은 상태에서 모든 걸 내려놓고 대회를 포기하고 싶었다. 기록은 예상대로 600 페이스를 훌쩍 넘어갔고 지난 3번의 하프 마라톤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감정을 느꼈다. 처음으로 오늘 완주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고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처음 마라톤을 시작했을 때의 순간들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3km를 쉬지 않고 뛰는 것조차 힘들었던 시기가 있었지만 저마다 다른 목표와 마음 가짐으로 달려왔었다. 하지만 단 한 번도 마라톤을 하면서 걷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걷고 싶은 순간은 늘 있었지만 아무리 힘들고 괴로워도 끝까지 천천히라도 뛰었었다. 그것이 마라톤을 하는 이유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대회는 달랐다. 뛰지 말았어야 할 대회에 참가한 내 몫이었고 내가 감당해야만 했다. 불필요한 감정 낭비로 인해 몸이 정말 많이 나빠진걸 몸소 느꼈던 대회였고 마지막 급수 지점에서 4km를 남겨두고 처음으로 마라톤 대회에서 걷기 시작했다. 

뒤를 돌아봤다. 내 뒤에서 걷고 있는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왜 저 사람들은 4km 밖에 남지 않았는데 걷고 있을까, 누군가는 얼굴에 미소를, 누군가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자신을 자책하는 듯 보였다. 나는 지금 어떠한 감정일까 생각해 봤지만 몸이 너무 아픈 나머지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저 남은 4km를 어떻게 걸어갈까 싶었고 그냥 구급차를 타고 대회를 포기하고 싶었다.


주로를 통제하는 관계자분이 탄 오토바이에서 구급차 소리를 내며 내 앞을 지나갔다. 순간 복덩이가 떠올랐다. 세상 밖으로 나오자마자 상급 병원으로 이송된 복덩이는 구급차 소리를 들으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다시 뛰기 시작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얘기지만 혹시나 내가 참고 완주하면 복덩이에게 좋은 소식이 들릴까 하고서. 그리고 끝내 완주하게 되었다.

하프마라톤 개인 최고 기록보다 20분가량 늦춰진 기록이었지만 이번 대회는 정말 삶에서 많은 것을 일깨워준 값진 대회였다. 마라톤을 하면서 처음으로 걸었고 다시 뛰었던 대회였기 때문이다. 아무리 힘들어도 끝까지 걷지 않겠다는 말은 마라토너들 사이에서 깊은 울림 중 하나다. 

끝내 걸었다는 사실은 나에게 있어서 중요했다. 걷는 것은 레이스를 포기하는 것과 동일한 의미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걸었다는 것은 그보다 삶에서 중요한 게 있었기 때문이다. 첫째는 건강이고 둘째는 생명의 소중함이었다. 이 두 가지가 조화롭지 못하면 삶에서 얻을 수 있는 다양한 종류의 값진 성취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잠시 쉬지 않고 계속 뛰다가는 정말 몸에 이상이 생길 것 같은 위기를 처음 느꼈고, 끝내 본능을 택했다. 그리고 생명의 소중함을 떠올리며 아주 잠시나마 다시 힘을 낼 수 있었다. 지난 마라톤 대회를 추억하며 눈시울이 붉어졌던 기억에서는 얻을 수 없는 힘이었다. 

결승점을 통과하고 감기 증상과 더불어 마라톤을 끝마치면 늘 찾아오는 아픔이 시작됐다. 남은 거라곤 이름과 기록이 각인된 완주 매달뿐이었지만 다시 뛸 수 있게 해 준 복덩이에게 너무나 고마웠다. 

절뚝거리며 5km가량 떨어진 집으로 돌아가던 중 형에게 한통의 메시지를 받게 되었다.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온 메시지였다. 눈뜨고 하품도 하고 잘 자고 배고플 때는 깨어난단다. 처음보다 호흡도 편안해 보이고 좋아지고 있어서 호흡기도 곧 제거한단다. 다행이고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뿐이 들지 않았다. 

그 무엇보다 산 사람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건강이고 생명의 소중함이란 걸 몸소 느꼈던 소중하고 값진 대회였다. 오늘의 목표였던 서브 2는 5번째 대회로 미뤄졌지만 지난 대회에선 느껴볼 수 없는 감정을 얻게 되어 기록보다 더 값진 대회였다. 서브 2는 그냥 계속 도전하면 된다. 하지만 잃어버린 건강과 생명에는 다음이 없다. 오늘의 순간과 감정을 늘 되새기고 살아야겠다.


마라톤에서 피지크로, 삶의 의미를 찾아서

2020년 7월부터 기록했던 마라톤 일지와 당시의 회고를 돌이켜보았다. 당시의 감정과 순간을 현재 써 내려가고 있는 브런치북에 그대로 담고 싶었기에 원문 그대로 옮겨 적었다. 풀마라톤 도전에 대한 기록이 없어서 아쉬웠지만 4번째 하프마라톤이 깨닫게 해 준 삶의 가치로 인해 마라톤을 통해 얻고자 하는 삶의 중요한 가치를 몸소 느끼게 되어서 그걸로 만족스럽다. 모든 것이 서툴렀고 부족했던 시기였지만 과거의 나를 글로 마주할 수 있다는 건 정말 큰 축복이다. 과거의 내가 무엇에 집착했고 어떠한 가치를 소중히 여겼는지 그리고 현재와는 어떻게 다른지를 돌이켜보면서 관계도 물건도 하나씩 비워가는 삶을 실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라톤은 5년간 나를 세우는 시간을 가지기로 다짐했고 이 기간이 끝나기 전까진 홀로 지내겠다는 큰 결심을 하게 된 자발적 고립을 택했던 시기에 즐겼던 취미 중 하나이다. 즐겼다기보다는 낯간지러운 표현들 속에 파묻혀있는 과거의 어느 순간이었다. 자발적 고립을 택했던 5년, 스스로 선택한 시기를 극복하고자 시작한 마라톤을 통해 얻게 된 감정들로 첫 대회 퍼스트타이머를 시작으로 피지크 그랑프리까지 자발적 고립이 끝난 이후 나에게 애정 있는 사람들이 건네는 응원에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최소 5년은 도전해보려 한다.

그 과정에서 만들어진 태도와 성취감을 통해 현재 몸담고 있는 조직의 비즈니스 성공과 의미 있는 관계 그리고 직업적 성취와 직업인으로서의 삶에 오히려
 더욱더 집중할 수 있는 라이프스타일을 만들어가길 기대해 본다. 
이번 브런치북이 완성되는 시점에 현재 이 글을 써 내려가고 있는 과거의 나를 또 한 번 돌이켜보면서 관계도 물건도 하나씩 비워가는 삶을 실천해 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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