잿빛 인생을 넘어설 수 있는 용기,
아무도 살지 않는 동네에, 곰 한 마리가 살았습니다.
그 곰은 아무런 색깔이 없고 투명해서 모든 것을 그대로 비출 정도였습니다.
그래서일까요?
그의 집 근방은 온통 회샛빛이었습니다.
어떤 날은 그 자신조차도 회색빛으로 느껴지곤 했습니다.
그의 일상도 늘 잿빛이었습니다.
그가 무엇을 하건, 어디를 가건 그의 머리 위에는 늘 비구름이 따라다니곤 했습니다.
그렇게 다른 날들과 전혀 다르지 않은
어느 잿빛 아침,
곰은 그날따라 무언가 다르다고 느꼈습니다.
온통 잿빛인 곰의 집에 붉은 잠자리가 날아들었기 때문입니다.
곰은 갸우뚱, 무엇이 달라진 걸까? 하고 창 밖을 내다봅니다.
바로 곰의 집 옆에 생동감이 넘치는 오데뜨 아주머니가 이사를 온 것입니다.
그녀의 집은 온통 꽃과 음악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녀는 소음과 다양한 색상이 깃든 일상을 기쁨 속에서 매일 살고 있었습니다.
곰은 그것이 불편하게만 느껴졌습니다.
그전까지 고요하던 자신의 일상을 빼앗겨 버렸으니까요. 그러던 어느 날, 이상한 기운이 느껴져 곰은 빼꼼히 창 밖을 내다봅니다.
그리고 꽃이 말랐다고 울고 있는 오데뜨 부인을 보게 됩니다. 그 순간 마음 깊은 곳에서 한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내가 아주머니를 도울 수 있지 않을까?"
곰의 머리 위에 떠 있던 잿빛 비구름은 아주머니의 마당에 비를 뿌립니다. 말라버린 꽃이 조금씩 살아나기 시작합니다.그리고 곰은 조용히 아주머니를 안아 드립니다.
드디어 밝음과 어두움, 슬픔과 기쁨은 한 자리에 모여 앉습니다. 곰과 아주머니는 평화롭게 마주 앉아 차를 마십니다.
그 잠깐의 조우는, 아주머니를 더 행복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곰의 문 앞에 작은 선물이 도착합니다. 예쁜 꽃입니다.
아주머니가 보내준 꽃 덕분에 곰은 더 이상 외롭지 않았습니다. 더 이상 투명한 채로, 회색빛으로 살아가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프랑스에 온 뒤로 나는 줄곧 "외롭지 않아"라고 말했다.
늘 집에만 있었지만,
늘 가족들과만 있었지만 정말로 괜찮다고 믿었다.
어차피 나는 외로움을 많이 타지 않는 사람이었고,
내향적인 사람이었으며,
많은 전문가들은 가족하고만 잘 지내도
성공한 사람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내가 집에 나를 가두기에 이 모든 이유는 충분했다.
나가서 사람들 사이로 들어가는 것이 버겁고,
행여 상처라도 받을까 그것이 두려운 것이었지만,
그때 나는 결단코, 이 삶이 내겐 딱이고,
집 안에 머무는 게 내겐 딱 좋은 선택이라고 믿었다.
물론 그 선택과 결정 덕분에 나는 한결 편안했다.
안전하기도 했다.
그러나 내 영혼은 점점 잿빛이 되어갔다.
아플 일도 없지만, 기쁠 일도 없었다.
이 약간의 우중충한 상태를 잘 견디는 것,
그것이 인생의 과제 같이 느껴졌다.
모든 인생이란,
원래 그런 것이 아닌가?
각자 무언가를 견뎌가는.
그러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는 이 모든 것은 나만의 문제라고만 생각했다.
나는 설령 잿빛 인생을 살 지언정,
아이들만큼은 밝고 화창하게 살아가길 바랐다.
비와 눈과 바람과 햇살을 모두 누리며 살아가길, 그렇게나 원했다.
그러나 내 눈에 들어온 아이들도
어느새 나의 잿빛에 물들어 있었다.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지 못하고,
회색 먹구름을 머리에 얹고
하루하루를 심드렁하게 살아가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아직 살 날이 많은 어린 녀석들이
이 먹구름이 다 뭐냔 말이다...
답답한 마음에 가슴을 치다 문득 보게 되었다.
거울 속 내 모습.
따뜻한 햇살이 내리쬐는 그 봄날에도
온통 겨울의 향기를 풍기며 살아가는
잿빛 인생을 받아들이다 못해
내 존재가 잿빛이 되어버린 것 같은 내 모습을.
더 나은 선택이라 생각하며 가두었는데,
나는 그렇게 조금씩 나를 잃어가고 있었다.
살아가지 않고 견뎌가는 인생은
그렇게 나 자신을 너머 내 주변까지도,
심지어 가장 사랑하는 아이들마저도
잿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이게 다 뭐란 말인가.
오랫동안 생각했다.
잿빛을 내어 쫓을 유일한 방법.
그것은 다른 사람들에게
그저 한 걸음 더 다가서는 거였다.
'제가 당신을 위해서
무언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요?'
라는 수줍은 마음. 그것 하나뿐이었다.
사실 나는 알고 있었다.
나만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한,
내 한계와 내 비극,
내 아픔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한
결코 이 잿빛을 넘어서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이 견디는 힘으로,
어쩌면, 내가,
누군가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있지 않을까?
그렇게 나는 우리 집 현관문을 열기 시작했다.
사람들을 초대했다.
아이들의 친구, 남편의 회사 동료,
교회에서 만난 친구들
인종도 나이도 상관없었다.
나처럼 회색빛 인생을 견디고 있는
그 누군가를 초대해,
그저 함께 식사를 하고 마음을 나누는 그 시간들이
조금은 어색하고
조금은 불편했던
그리고
조금은 기쁘고
조금은 행복했던
그 순간들이 조금씩 쌓여갔다.
그리고,
다시 거울을 바라본다.
달라진 것은 없다.
인생은 여전히 무겁고,
때로는 내가 못마땅하고
때로는 꼭꼭 숨고 싶다.
그러나 나는 훨씬 더 용감해진 나를 마주한다.
그리고 진실로 살아있는 나를 마주한다.
내가 걸은 만큼
함께 자라온 아이들을 발견하는 것은
덤인지도 모르겠다.
결국 인생을 무슨 색깔로 색칠할 것인가는,
우리 자신에게 달렸는지도 모른다.
누구에게나 인생은 잿빛일 수도
찬란한 무지개일 수도 있다.
우리가 조금만 더 용기를 낸다면 말이다.
그런 면에서 인생은 공평한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 더 애를 써서
가꾸어 갈 수 있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