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중과 상연,
제목을 쓰고 잠시 멈춘다.
이 드라마는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보는 내내 나의 어린 시절이 불쑥불쑥 소환되었다.
그 시절의 나는 은중만큼이나 위축되어 있었다.
달동네 출신이었다.
느닷없는 고백이지만,
이 한 문장은 많은 설명을 압축해 준다.
그게 무엇인지조차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어렸음에도, 나는 어쩐지 세상에서 내가 가장 작게 느껴졌다.
그래서 더 많은 것을 가진 친구들,
아니, 사실은 나를 제외한 모든 친구들 앞에 서면
한없이 작아지곤 했다.
드라마를 보는 내내,
어딘가 그늘이 져 있는 표정으로 움츠리고 있던
그 시절의 내가 내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듯했다.
사실 은중과 상연처럼,
끊어졌다 이어지며
성년까지 질긴 인연을 이어온 친구는 내게 없었다.
그러나 나 역시 공존하기 힘든 두 감정—선망과 원망—을 견디지 못해
결국 여러 핑계를 내세워
친구들을 떠나보내거나,
스스로 떠났었다.
이 드라마는 그 얼굴들을, 그 기억들을 불러왔다.
대충 덮어두었던 그 기억들 속에서
나의 낯선 감정들을 하나씩 들춰볼 수 있었다.
이제야 알겠다.
사실 그 모든 이유는 핑계였다.
그저 나는 늘 선망과 질투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오가는 게 힘들었다. 그럴 수밖에 없을 만큼 초라한 나자신을 미웠기에.
그를 바라보다
나를 미워하는 형국이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살아남기 위해 내가 붙들어야 할 것은,
미워도 나 자신이었다.
결국 나는 그런 나라도 지키기 위해
차라리 그들을 미워하기로,
그것도 아주 많이 미워하기로 결정했었다.
그렇게 몇몇 소중한 사람들을 잃었다.
이 드라마는
그 잃어버린 얼굴들과 기억들을 불러왔다.
덮어두었던 감정들에 이름을 붙이고
흘려보내는 과정은, 어쩌면 치유였다.
심리학을 공부하는 지금의 나는,
이 드라마 속 인물들의 내면에서 그때의 나를 다시 보았다.
왜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는지,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는지.
그 역동의 과정을 심리학적 관점에서
풀어내보려 한다.
지극히 주관적인 관점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