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서로의 무엇을 선망했는가?
이 드라마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것은
단연 은중과 상연의 관계다.
선망과 미움 사이 어딘가를 헤매던
두 사람의 감정은
이 이야기의 중심이자,
누구나 한 번쯤은 경험했을 법한 감정의 그림자다.
부럽고, 좋은데, 그래서 밉기도 한—
뭉뚱그려 말하자면
질투 혹은 시기라 부를 수 있겠지만,
조금만 더 섬세하게 들여다보면
두 사람의 감정은 서로 다른 결을 지니고 있다.
은중의 부러움은 비교적 명료했다.
그녀는 상연이 가진 것을 부러워했고,
무엇을 부러워하는지도 알고 있었다.
상연의 아파트,
아버지가 계시지 않은 자신의 처지와는 다른
완전해 보이는 가족,
자신감 있고 기죽지 않는 태도,
그리고 눈에 띄게 우수한 실력.
작은 포스트잇에 적힌 “넌 참 좋겠다.”
그 한 문장은 은중의 마음을 완벽히 드러낸다.
은중이 부러워한 것은 상연 그 자체가 아니라,
상연이 가진 것들이었다.
그것은 비교적 명료한 감정이며,
어쩌면 그런 것들을 언젠가 갖게 된다면
더 이상 부러워하지 않아도 되는,
언제든 해방될 수 있을 법한 감정이었다.
그러나 상연은 달랐다.
상연이 흔들리는 지점은
은중이 가진 어떤 것이 아니었다.
은중의 존재 그 자체였다.
상연은 은중의 다정함이 좋았다.
하지만 그 다정함 앞에 설 때마다
은중이 자신보다 더 나은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괴로웠다.
상연은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다.
사랑을 주고받는 법에서도 서툴렀다.
진심으로 다가서지 못하고,
따뜻하게 맞아들이지 못했다.
오히려 상처를 돌려주곤 했다.
자신이 그렇다는 걸, 그래서 곁에 아무도 없다는 걸,
상연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상연은 사랑이 늘 고픈 사람이었다.
엄마도, 오빠도 조용하고 다정했지만
그녀에게는 멀게만 느껴졌다.
그런 그녀에게 은중은
조용하지만 다정한 존재였다.
그녀는 은중에게 기대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은중 앞에서 상연은 더욱 불안해졌다.
어쩌면 자신이 은중보다
덜 잘 만들어진 존재라는 생각.
그리고 엄마와 오빠조차
은중을 더 사랑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그 모든 혼란스러운 감정이 상연을 은중에게서
멀어지게 했다.
하지만 상연은 정말 은중을 미워했던 걸까?
그녀가 미워했던 것은,
은중 앞에 서면 드러나고 마는
자신의 빈약한 영혼이 아니었을까.
그 영혼을 비추는 은중의 존재 자체였을 지도 모르겠다.
결국 상연은 은중을 흔들고 망가뜨림으로써
자신이 열등하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혹은 자신이 느낀 혼란을
은중도 느끼게 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 몸부림은 어느 정도 성공적이었다.
상연은 은중을 흔들어 놓았고,
그렇게 두 사람은 서로의 마음속에서
지워지지 않는 상처로 남았다.
이 드라마 속 은중과 상연의 관계는
단순한 질투나 경쟁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존재의 결핍이 만들어낸
사랑과 미움의 복잡한 역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