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로 그들의 행복을 바랬던 것일까

숨겨진 진심을 마주하다

by 마리앤느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 한국인 주재원 가정들이 전학을 왔다. 나는 사뭇 반가웠다. 한국인 가족은 참 오랜만이었다.


프랑스 살이가 벌써 7년 째다. 아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해서 졸업을 하고 중학생이 되었다. 아들이 초등학교 다닐 무렵만 해도 그래도 한국인 가정이 몇 가정 있었다. 그땐 내가 프랑스살이 초보라, 이래저래 도움을 많이 받았더랬다.


그러나 세월이 흘렀고, 2-3년 일정으로 온 주재원 가정들은 다들 돌아갔다. 왔다가 돌아가고 왔다가 돌아가는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우리는 천천히 어렵사리 뿌리를 내렸고, 이제는 프랑스 살이가 조금은 익숙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올해 오랜만에 한국인 가정들이 전학을 오자어쩐지 반갑게만 느껴졌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무언가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게 있지 않을까?'였다.

'낯선 곳에서... 많이 힘들 텐데... 그들의 안위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그 생각만으로도 조금은 설레고 기뻤다.




프랑스에 와서의 첫 3년을 떠올리면, 막막했던 그 느낌이 고스란히 되살아난다.

그랬다. 참말로 힘든 시간이었다.


언어가 안 된다는 것이 가장 큰 어려움이었지만,

이제 와서 돌아보면 단순히 언어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내 마음속에 가득했던

꼭꼭 눌러두었던 부정적인 감정들과

쪼그라들어 있던 마음들이

낯선 나라에서,

더 이상 가릴 것이 없는 상황에 놓이자

툭하고 모두 터녀나왔던 것이었을까?


한국에서는 나름 잘 숨기고 살아왔었는지도 모르겠다. 적절한 가면들로 혹은 나름대로 얻어낸 어떤 증거들로 잘 가려두었던 그 마음들은 내 힘으로 통제할 수 없는 그래서 나의 작음을 들킬 수밖에 없는 상황 속에 던져지자 처절할 정도로 나를 무너지게 만들었다.


그렇게 무너진 뒤에야 나는
내가 얼마나 부풀려진 자아상을 안고
초라함을 감추며 살고 있었는지를 깨달았고
작고 초라한 나를 받아들이고
있는 그대로의 나와 함께
하나씩 하나씩 재건해 나갈 수 있었다.


그 시간은 지난했지만,

마침내 나아지는 순간들이 찾아왔다.

그래서였다.

새로 온 사람들에게

굳이 도움의 손길을 내 밀고 싶었던 것은.


그들도 어쩌면 나처럼 힘들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래도 내가 먼저 겪어 봤으니,

조금은 안전한 사람이 되어 돕기 원했다.

괜찮다고 이 힘든 시간도 다 지나가고

금세 모든 게 괜찮아질 거라고...


그렇게 말해줄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랬다....




어느 날이었다.

학교 앞에서 마주친 한 엄마에게

잘 지내냐 물었다.

그는 벌써 두 달이나 지나버렸다며 아쉬워했다.

정해진 시간 동안 이곳에 머물다 돌아가야 하는데

벌써 10퍼센트의 시간이 지나버렸다며

울상을 짓는 그이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다보았다.


그 사람의 마음이 이해가 되었다.

잠시 잠깐 머무는 이 시간이 너무 소중해서

한 순간도 낭비하지 않고

누리고 싶은 그 마음을 느끼며

아 그럴 수 있겠구나 싶었다.


곧이어 그는 불어를 하나도 못한다며

울상을 지었는데,

그 울상은

시간이 너무 빨리 간다고 아쉬워하던 것과 다르게

전혀 불편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니 요약하자면,

그이도 나처럼 불어를 못했고,

나처럼 낯선 땅에 와서

온통 낯선 것들을 겪으며 지내고 있지만

나와 전혀 다르게 반응하고 있었다.


어쩐지 이곳에서의 삶이 꽤나 좋고 만족스러워

붙들고 싶은 마음이랄까.

나와 같은 처지에 놓였지만

결코 흔들리지 않는

어떤 여유로움 같은 게 느껴졌다.



이질감이 느껴졌다.

나와는 다르게 편안해 보이는 그를 바라보며

그를 도와주려던 마음이 순식간에

나를 향하는 자책으로 바뀌는 것을 본다.



나는 왜 그때 그러지 못했을까....






내가 아프면 엄마도 아프고

세상도 다 아플 거라고 믿는 돌쟁이 아이처럼

내가 느꼈던 불편함이

모두에게 같은 강도로 느껴질 거라고

나도 모르게 그렇게 믿고 싶었나 보다.


내가 겪었던 그 지독했던 시간을

이들도 반드시 지나리라 생각했던 나는

얼마나 지독하게 내 중심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인가.


그리고 나서야 나는 더 깊은 마음속에 숨겨진 내 진심을 마주한다.


나는 정말 그를 돕고 싶었던 걸까?

맞다. 돕고 싶었다.


그러나

그가 나처럼

힘들다는 전제 안에서였다는 것을 발견한다.



그들이 나보다 조금 덜 힘들게

그 시간을 지나가길 바랐고 돕길 원했지만

그들이 그 시간을 지나지 않기를

바라지는 않았다는 걸.


그들의 행복을 바라면서도,

그들이 나보다 더 행복하지는 않기를 바라는

그 이기적인 마음을


나는 또 한 번 숨겨진

나의 진실한 마음과 마주한다.





인간의 마음은 얼마나 간사한가. 그리고 나 역시도 그 간사한 마음으로부터 멀리 있지 않다는 사실을 직시한다.


이제 선택해야 할 순간이다.
세상은 불공평하다고

원망의 말을 내뱉고 말 것인가,


아니면 각자에게 주어진 삶이 그 사람에게 가장 알맞은 것임을 인정하고,
내 삶과 내가 걸어온 길이

결코 의미 없는 고생이 아니었다고

스스로에게 말해줄 것인가.


나도 안다.
후자의 선택만이 나를 살리고,
진심으로 그들의 행복을 빌어줄 수 있도록
내 마음을 넓히는 길이라는 것을.





어쩌면 이런 일들을

앞으로도 몇 번은 더 겪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몇 번이면 충분할 것이다.


이런 당혹스러운 순간마다
그 감정 뒤에 숨겨진 내 진심을 읽어내고,
그 마음을 가진 나조차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시작할 때,
그리고 그렇게 매번
그 선택을 기꺼이 해 나갈 때,

나는 조금씩 달라질 것이다.



그렇게 나는

나의 속도로 걸어갈 것이다.


나의 행복을 위해서,
그리고 그들의 행복을 진심으로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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