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감정은 어디로부터 왔을까?

by 마리앤느

오랫동안 외로웠다. 우주 위에 홀로 동동 떠 있는 느낌이었다.


외국 생활이 길어지면서라고 생각했다. 5년이 지나자, 별로 많지도 않았던 인간관계가 거의 정리되었다. 그래도 여기가 내 터전이니, 좁은 한인 사회라도 슬며시 들어가 볼까 했지만, 오고 가는 사람들, 정이 들면 떠나고 또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서는 그 세계는 힘겹게만 느껴졌다.


그나마 마음이 통하는 프랑스인 친구들이 있었지만, 그들과도 마음껏 무언가를 나누기는 어려웠다.



사실 나는 외로움을 잘 느끼지 않는 사람이었다.


나고 자란 대구를 떠나 서울에 와서도 금세 사람을 잘 사귀었고, 혼자서도 곧잘 지냈기에 항상 연락을 받는 편에 있었다.


그런데 외로워서 미칠 것 같은 순간이, 불현듯 찾아온 것이다. 내가, 이토록 외로워서 견딜 수가 없다니... 놀라울 따름이었다.






처음, 나는 며칠이 지나면 나아질 거라 여겼다.


그러나 몇 개월이 지나도록 이 외로움은 점점 더 깊어졌다. 남편과 친구처럼 살갑게 지내고, 아이들이 엄마를 수백 번씩 부르는 날들을 살고 있는데도, 어째서... 이토록 외로울까.


낯선 이 감정을 찬찬히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이 외로움은 도대체 언제부터였던 걸까? 한국에서도 프랑스에 와서도 내가 기억하는 나는, 외롭지 않았다.


외로운 게 다 뭐야,
나는 혼자서도 잘 지내.
난 혼자 있어도 재밌어.
혼자 있는 게 더 편해.


입버릇처럼 남편에게 그리고 가까운 사람들에게 내뱉곤 했던 문장이 툭하고 떠올랐다. 그런데 그 말을 내뱉고 있는 내가, 그 기억 속 내 모습이 지극히 외로워 보였다. 잊혔던 모든 기억들이 소환되었다.


기억 속 나는, 마치 무언가에 겁을 먹고 잔뜩 웅크린 사람처럼, 누구라도 다가올까 두려운 듯 손을 훠훠 내저으며 혼자가 좋다고, 이대로도 괜찮다 외치고 있었다. 하나도 즐겁지 않은 표정으로.


문득 깨달아졌다. 내가 그때도 많이 외로웠다는 것이. 내가 몰랐을 뿐, 아니 부인했을 뿐, 그때도 나는 외로웠나 보다. 연결되기가 두려워서 만들어낸 방어가 혼자가 좋다는 말로 치환되어 있었을 뿐.


뒤적이던 책에서 한 구절을 발견했다.


나만 빼고 모두 같이 놀 친구가 있는 것 같았던 그날 이후로, 누군가 함께 있어주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결국 혼자 보내야 했던 어느 저녁 이후로, 다른 사람들은 서로 어울려 놀기 바쁜 파티에서 아는 사람 하나 없이 멀뚱히 서 있다 돌아온 이후로 이성친구와 나란히 누운 채 이제 이 사람이랑은 끝이구나 확실히 깨달은 그 밤 이후로 그들이 영영 떠나가고 텅 빈 집에서 홀로 지내본 후로 외로움은 의미심장한 방식으로 우리를 다른 사람들과 유리시킨다. <외로움의 철학>, 라르스 스벤젤


고개가 끄덕여졌다. 철들 무렵부터 자꾸만 맞이하는 상실이 나로 하여금 마음으로부터 타인들과 멀리 서게 만들었다는 것이.


누군가를 맞아들이고 떠나보내는 여정은 힘겨운 것이었다. 기대했지만 결코 닿지 못한 마음들을 내려놓으며 그 관계가 이제 끝이라는 걸 받아들여야 할 때마다, 나는 애써 괜찮다 말했지만 번번이 앓았고 신음했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또 혼자가 되었구나, 그럼 그렇지.... 이 모든 것이 너무 힘겹다.... 그 무겁고 아픈 문장을 곱씹으면서.


사람들은 모두들 만나고 헤어지고, 떠나고 남겨지며 살아간다. 외롭기도 하고 가까스로 연결되었다가도 쉬이 끊어지기도 하면서, 그 모든 것이 인생의 여정이라 믿으며 살아간다.


그러나 나에겐 그것이 인생에서 당연히 겪어나가야 할 여정으로 기꺼이 받아들여지지 못했다는 의미일까? 왜 나는 그토록이나 혼자 남겨지는 걸 두려워했을까?




여섯 살 무렵의 한 아이가 떠올랐다.


바쁜 엄마의 손길이 닿지 못해서 제멋대로 풀어헤친 머리칼을 휘날리며, 저녁 6시가 넘도록, 해가 뉘엿뉘엿 지는 운동장에서 홀로 기웃기웃 엄마를 기다리는 아이.


운동장에 함께 머물러 있던 아이들이 하나 둘 떠나가는 동안에도 오지 않는, 부르지 않는 목소리를 애타게 기다리며, 철봉에 매달려 지는 노을을 바라보던 아이.


어쩌면 내가 잊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아무도 나를 찾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그 서글픈 느낌이... 애쓰지 않았는데도 너무나 선연하게 떠올랐다.


노을은 아름답게 지는데, 눈물이 또르륵 흘렀다.
어쩐지, 초대받지 못한 세상에 툭 하고 짐처럼 떨어진 느낌이었다.
차라리 없어졌더라면... 이 고통스러운 느낌을 피해 사라져 버리고 싶었던 순간이었다..


그때 멀리서,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를 부르는, 그 목소리.

그러나 반가운 목소리는 잊히고,

그 아픈 느낌, 그 감정만이 가슴에 남겨졌다.



오늘 나를 힘겹게 하는 이 깊은 외로움은, 오늘이 내게 안긴 감정이 아닌 셈이었다.


나는 여섯 살 무렵의 그 감정을, 해마다, 날마다, 순간마다, 다시 꺼내어 재생하고 있었던 것이다.

너무나 익숙하고, 편안한 옷처럼 나는 날마다 그것을 꺼내 입고, 그것을 살아내고 있었나 보다.





살다 보면 아픈 순간들이 있다.

설령 그 순간이 지나가버렸고, 그 이후에 잘 해결되었거나, 더 큰 위로와 보상이 있었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그 아픈 순간들을 쉬이 버리지 못한다. 가시처럼 어딘가에 박혀 있기 마련이다.


모든 아픈 순간들이 그런 것은 아니다. 그러나 유독 그런 순간들이 있다. 그리고 무엇이 그토록 아프게 남아있는지는 사람마다 다르다.


트라우마라는 거창한 단어를 붙일 필요도 없는

사소한 아픔들, 결핍들, 상처들은

거창하지 않기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지만

주의를 기울이지 않기에 더 오래 남아 우리의 마음을 짓누른다.


나의 오늘을

다시 그날로 소환하고

다시 그 감정으로 바라보며

다시 그곳에 침잠하게 만든다.


지속적으로 느껴지는 감정이 있다면, 계속해서 짓누르는 생각이 있다면, 반복되는 행동이 있다면 일단 멈춰 서야 한다. 반드시 나에게서 그 이유를 찾아야 한다.


왜? 언제부터? 어디에서부터? 무엇이? 이런 사소한 질문들을 내게 던지기 시작할 때, 그때 오랫동안 가둬두었던 감정이, 그 아픔이 슬며시 수면 위로 나타날 것이다. 그리고 바로 거기에서부터 회복은 시작된다.





나는 여전히 외롭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이 외로움은 내가 오늘 느껴야 할 감정이 아니라는 것을.


6살, 바쁘고 아픈 엄마, 엄마 품이 간절하지만 홀로 운동장에 남겨져 엄마를 기다리고 있는 어린아이, 그 아이의 감정의 잔재가 여전히 남아있는 것일 뿐이라는 것을.


그리고 나는 이제 더 이상 엄마를 기다리지 않는다.

어느새 엄마가 된 내가 나를 기다리는 아이들에게로 달려갈 수 있다. 그리고 언제고 내가 외로울 때 달려와줄 남편이, 가족들이 있다.


외롭지 않다고 팔을 내저으며 도망칠 이유도

외롭다고 가슴을 치며 고통에 빠져들 이유도 없다.


모든 것은 지나갔고,

나는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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