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스스에게 꼭 물어야 하는 질문
나는 목표를 설정하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쉽 없이 달리기를 잘하는 사람이다.
그게 무엇이든 일단 한 번 목표로 설정했다면 웬만해선 미끄러지지 않고 계획대로 착착 밀어붙이는 편이다. 사람들은 그런 나를 종종 '성실하다, 끈기가 있다'와 같은 표현들로 설명하곤 했다. 부럽다 대단하다는 말도 왕왕 듣곤 했다. 그래서였을까? 언젠가부터 나도 굳게 믿었다. 그게 나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사람들은 종종 그렇게 말한다. 인생에서 마주하는 모든 것이 다 양날의 검과 같다고. 이 장점도 내게 그러하다는 걸 깨달은 것은 근래였다.
문제는 자꾸만 좌절감을 느낀다는 데서 시작했다.
매일 성실히 열심히 사는데도 나는 자꾸만 나 자신이 한참 모자란 것처럼 느껴지곤 했다. 도달해야 할 곳은 저기인데 여전히 여기에 머물고 있다니... 내 눈에 선명하게 보이는 내 수준이, 나를 힘들게 했다.
그도 그럴 만했다. 다이어리 앞 장에 꼭꼭 힘주어 눌러썬 나의 목표, 그것은 사실상 종이가 아닌 내 마음에 한 자 한 자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어느새 그것은 내가 이루어야 할 지상 최대의 과제로 내 삶의 중심에 놓여 있었다.
이렇다 보니 나의 시선은 늘
이전보다 얼마나 더 나아졌는가에 주목하기보다
내가 가야 할 길이 여전히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가에 주목했다.
몇 년 동안 열심히 해서 불어 실력이 많이 좋아졌다 한들, 내가 그토록 꿈꾸는 수준, 원어민들과 소통에 불편함이 없이 구사하는 수준에 대어 보자면 쯧쯧 혀를 찰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매사가 이런 식이었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바로 이 좌절감이 나로 하여금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여정을 즐길 수 없게 만든다는 데 있었다.
하루 종일 애를 써 보아도,
지난 몇 년간 애를 써 보아도,
돌아서서 느끼는 것이 모자란 느낌이라면...
그것을 견뎌낼 장사가 과연 있을까?
하고 싶지 않다는 느낌, 이렇게 힘들게 살아도 소용없다는 느낌은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나의 일상에 침잠했다. 그리고 나는 결국 '과정의 즐거움'이라는 말이 뜻하는 바를 알지 못한 채 꾸역꾸역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더는 이렇게 나아갈 수 없다는 절박한 마음이 들었다. 벌써 중년이었다. 이뤄야 할 무언가를 위해 나의 오늘을, 내일을 그리고 내 생애를 밭을 가는 소처럼 치부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반드시 찾아야 했다. 목표를 향해 가되, 나의 오늘을 조금 더 즐겁고, 그리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멋지다 말해주며 살아가는 방법을.
내 목표를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그것은 주로 아주 구체적인 어떤 것을 이루거나 해 내는 것과 관련이 있었다.
매일 30분 불어 영어 공부,
향후 5년 안에 석사까지 마치기
일주일에 3번 운동하기
혹은 아주 추상적이라서 도무지 측정불가능한 것이기도 했다.
아이들과 더 좋은 시간을 보내기
좋은 관계 만들어 가기
사람들을 위로하는 글 쓰기
불어 실력 향상하기
이것은 둘 다 나름의 문제를 안고 있었다.
지나치게 구체적이고, 측정가능한 목표는 나로 하여금 그것에 도달하지 못할 때마다 스스로를 비난하게 만들곤 했다. 30분을 못하거나 3번을 채우지 못하면 그것도 못해낸 스스로가 못마땅해지는 식이었다.
반면에 지나치게 추상적인 목표는 내가 잘해나가고 있는지를 알 길이 없었다. 좋다는 것은 과연 어떤 것인가?
기분이나 상황에 따라서 해석이 분분할 수밖에 없는 이런 목표들은 잘해나가고 있다 믿으려다가도 자주 스스로를 의심하게 만들었다.
이렇다 보니 목표가 지긋지긋하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그것에 도달하기 전까지는 완전하지 않다 여기는 그 느낌이 힘겨웠다.
안주하겠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지금의 나를 소중히 여기며, 지금의 나를 데리고 앞으로 걸어가고 싶었다.
나는 마음 판에 고이 새겼던 목표를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간절히 이루고 싶은 그 모든 목표 안에는 내가 살고 싶은 인생이, 되고 싶은 모습이 담겨 있었다.
그것은 단순히 유능함이나 우월함의 문제가 아니었다. 아주 작은 목표라 해도 그 속에는 '어떻게 살고 싶은지'에 대한 나의 바람이 내포되어 있었다.
비로소 나는 깨달았다.
내가 한 번도 나에게 너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가 아니라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길 원하는지를 물은 적이 없다는 것을.
내 목표 리스트를 가만히 들여다본다.
너는 어떤 사람이니? 어떤 사람으로 살고 싶니?라고 나에게 묻는다.
'5년 안에 공부 마치기'라는 삭막한 문장을 지우고
'배우고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적어본다. 내친김에 '사람들을 관찰하고 인생에 대한 통찰을 갖는 사람'이라고 바람도 덧붙여본다.
'사람들을 위로하는 글을 꾸준히 쓰기'라는 건조한 문장을 지우고 ‘읽기를 좋아하고 쓰기를 좋아하는 사람, 삶에서 그 즐거움을 누릴 줄 아는 사람'이라고 쓴다.
'좋은 관계를 형성하기' 미련 없이 지워내고
'사회적 지표와 상관없이 사람을 존중할 줄 아는 사람' '마음을 나눌 줄 아는 사람'으로 다시 고쳐 쓴다.
망설임없이 떠오르는 것들을 우수수수 써 내려간다.
아이들의 말을 들어줄 줄 아는 사람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고쳐나갈 줄 아는 사람
사랑을 진실되게 표현할 줄 아는 사람
이 모든 순간을 소중히 여기며 감사하며 사는 사람
인생의 아름다운 순간을 기억의 창고에 모아둘 줄 아는 사람
그렇게 하나씩 하나씩 내려놓고
그렇게 하나씩 하나씩 새롭게 찾아낸다.
그 여정 속에서 나는
비로소 내가 누구인지를 깨닫는다.
도달해야 할 목표 대신
내가 누구인지에 주목하자
비로소 내가 이처럼 괜찮은 사람이었구나
뿌듯한 마음이 든다.
목표는 필요하다.
성장하기 위해서.
그러나 내가 누구인지를 잃어버린 채
목표만을 향해 달리는 삶은 불행하다.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이곳에 있는 사람들이 아니다.
우리는 이미 소중하고 존귀한 존재들이다.
그 믿음으로만 우리는 한 걸음 더 전진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