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이 닿지 않던 마음

거울을 닦으며 마주하는 숨겨진 내면

by 마리앤느

어제 아들이 팔을 다쳤다.


병원에서는 금이 간 것 같다고 했다. 프랑스의 복잡한 병원 시스템 때문에 아직까지 깁스도 하지 못한 채 월요일을 기다리고 있다.



근래 나는 조금 행복했다.


어쩐지 내가 그토록 바라던 어딘가에 조금은 가 닿을 수 있을 것 같은 날들이었다. 프랑스에 온 뒤, 적응하기 힘들어했던 아들이 친구들 사이에 잘 스며들었고, 자신감이 넘쳐 보이는 모습이 나로 하여금 안도하게 했다.


어제도 방학 기념으로 아들 친구네에서 스케이트장에 함께 가자고 아들을 초대를 했다. 아들은 한 번도 스케이트를 타 본 적이 없었지만 그래도 가겠다고 했다. 너무나 설레어하며 기다리는 통에 차마 말릴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리고 아들이 떠난 지 한 시간 만에 친구 엄마는 내게 급하게 전화를 걸어왔다.




갑자기 닥친 사고에, 마음이 심란했다.


하필 오른손이었다. 병원에 다녀오느라 하루종일을 썼으나 아무런 치료도 받지 못했다는 사실이 피로했다. 한국에서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은근한 비교가 내 마음을 더 힘들게 했다.


불평하고 싶은 마음과 그래도 방학이니 얼마나 다행이야, 그래도 다리가 아니고 팔이니 또 얼마나 감사해... 하며 스스로를 다독이는 마음 사이를 위태로이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설령 고난이라 해도 그것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면 우리는 견딜 수 있다. 나는 그 사실을 믿고 있었다. 그러나 그 의미를 찾는 과정을 방해하는 소음이 내 속에 가득 차 있었다. 무겁고 고단했다.



처음 나는, 분명 아들이 많이 다친 걸까 봐, 많이 아플까 봐 걱정이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아들은 팔만 아프지 컨디션이 쳐지지는 않았다. 다행이었다.


그리고 그 지점에서 나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었다. 정말로 그것이 이유였다면 아들이 생글생글하는 모습 앞에 다시 마음이 좋아져야 했다. 그러나 계속계속 내 마음은 조금씩 더 무거워지고 힘들어졌다.


하루가 지나자 다친 아들보다 내 표정이 더 어두웠다. 도대체 내 마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이 낯선 땅에서 7년째 살고 있다.

7년이라는 시간은 그 시간에 비례해서 이 땅에 조금씩 익숙해져 간다는 걸 의미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경험한 영역에 대해서였다. 경험하지 않은 영역은 여전히 미지의 세계였고, 낯설고 혼돈스러운 세계였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이 땅에서 사는 동안 나는 갑자기 닥쳐오는 낯선 일들이 지나칠 정도로 버거웠다. 좋은 일이라 해도 낯선 것은 힘들었다. 하물며 힘든 일이라면... 제발 일어나지 않기를, 겪지 않을 수 있기를 바랐다.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를 예상할 수 없고, 어떻게 전개되든 간에 그 상황에 적응하여 잘 감당할 만한 능력이 내게 없다는 느낌, 내가 아무것도 모른 채 내던져졌다는 느낌, 그 무력감은 몹시 힘든 느낌이었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이라곤, 묻고 또 묻고, 도움을 청하는 것뿐. 막막했다.


게다가 그런 순간에는 신기할 정도로 재빠르게 불신이 작동했다. 내가 약하다 여겨지는 순간, 나는 나를 보호하기 위해 대다수의 친절한 아니 친절까진 아니더라도 충실히 자신의 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대부분의 프랑스인들을 불안한 눈으로 바라보게 되곤 했다.


사랑하려고 뿌리내려 보려고 안간힘을 썼던 그 모든 시간들, 그 모든 노력이 다 물거품처럼 사라지는 건 그렇게 한 순간이었다.


나를 둘러싼 세계가 결코 안전하지 않다는 느낌이,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에서 어떻게든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가며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피로감을 느끼게 만들었다.



그리고 딱 그 지점에서 나는

'왜 하필 나에게?'라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대사를

마음속으로 읇조리게 되곤 했다.






갑갑한 마음에 일어나 걸레를 꺼냈다.


생각을 비워내기 위해 움직여야 했다. 책장에 아무렇게나 꽂혀있던 책들을 다시 정리하고 먼지를 닦아내기 시작했다. 주방과 욕실과 거실을 오가며 이곳저곳을 닦고 쓸며 한참을 움직였다.



오늘따라 거울이 눈에 들어왔다. 한동안 내버려 두었더니 얼룩이 잔뜩이었다. 하나씩 하나씩 마음을 다해 닦아냈다. 온갖 얼룩으로 뒤덮여 있던 거울이 말끔해지자 마음도 한결 나아졌다.


이제 마무리를 할까 하며 고개를 돌렸을 때, 주방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설치된 벽장 그리고 그 벽장 위를 덮고 있는 거울이 눈에 들어왔다. 바닥부터 천장까지 길게 설치된 벽장이었다.


자주 사용하지 않는 거울이었기에, 욕실만큼 얼룩이 많지 않았다. 세정재를 칙칙 뿌리고 걸레질을 하기 시작했다. 금세 말끔해졌다.


그러나 그때 깨달았다. 내가 닦고 있는 부분은 늘 내가 닦는 부분이었다. 쉬이 손이 닿는 부분은 언제고 쉽게 더럽혀질 수 있는 곳이었다. 그리고 언제든 쉽게 닦을 수 있는 부분이었다. 바쁘고 힘든 일상 속에 나의 게으름이 더해져 나는 늘 손이 닿는 곳만을 닦으며 살아왔다.


그런 고로 손이 닿지 않는 천장 쪽 거울은 사실상 거의 손을 대지 않고 살아왔다.

에이 별로 더러워 보이지도 않네....라고 생각하며



그러나 오늘은, 오늘만큼은,

어쩐지 구석구석 닦고 싶었다.


내가 닦고 있는 것이 거울인지,

온통 혼란스럽고 뒤엉킨 내 마음인지

알 길은 없었다.


그저 그게 무엇이든 닦고 싶었다.

깨끗하게 다시 닦아내고 싶었다.



의자를 가져다 놓고 위로 올라갔다. 세정재를 칙칙 뿌릴 때까지만 해도 이 거울을 굳이 닦아야 할까 싶었다. 그러나 걸레를 가져다 닦기 시작했을 때, 깜짝 놀랐다. 이제까지 닦았던 그 어떤 거울보다도 누렇게 더러운 때가 묻어 나왔다.



여러 번을 닦아도

오랜 세월 방치되어 있던 거울에서는

눈에 띄지 않았던 더러운 먼지

여러 번 닦여 나왔다.





그제야 나는 눈물이 핑 돌았다.


왜 이 사고가 우리에게 왔을까,

나는 그 원망을 내려놓을 이유가 필요했다.

적어도 스스로 의미를 부여하고 싶었다.

그것만이 나로 하여금

이 시간을 견디게 할 것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나는 그 이유를 깨달았다.


묻어두고 덮어둔 채,
눈에 보이지 않는 먼지라고 여긴 채
손이 닿지 않는 곳이라는 핑계로
그렇게 감춰두었던 내 감정의 결을
생각지 않은 사고 앞에서

이렇게 마주한다.



아들을 걱정하다

사실은 아들이 아닌 내 걱정으로

돌아와 있는 내 마음이,

아들을 생각하다 결국은

이 상황에 처한 내가 가엾어진

내 마음이


수면 위로 두둥실 떠오른다.



손이 닿지 않아
한 번도 닦지 않았던 거울처럼
평소라면, 익숙한 상황이라면
결코 마주할 일 없었을
자기 연민의 함정을

기어이 마주하게 된다.



내가 힘든 건,

아들 때문도, 사고 때문도,

이국 생활의 고단함 때문도 아니었다.


그런 문제들 앞에 설 때마다

두렵고 힘든 내가 가엾어서

늘 이 모든 무거운 짐을 지어야 하는

나 자신이 가엾고 불쌍해서


결국 나는 나를 위해 힘들어하고 있었다.




그 사실을 알아차리고 나서야
나는 의자에서 내려왔다.


거울은 말끔해졌고
거울 앞에 선 마음도 한결 가벼워졌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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