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불행과 큰 위로
오전에 팔을 다친 아들을 데리고 병원을 다녀왔다. 손목에 금이 간 아들은 무사히 깁스를 할 수 있었다.복받치던 마음도 함께 사그라들었다.
토요일 아침, 아들은 다쳤다.
그러나 내 부정적인 감정이 고조된 것은 사건이 일어난 직후가 아니었다. 사건이 일어나고, 그 사건이 바로 해결되지 못한 채 잠시 멈춰 있어야 할 때, 그때 모든 부정적인 감정은 극을 향해 치달았다.
어제 하루 종일
내 마음에는 심판대가 설치되었고
이 일에 책임이 있을 것이라 여겨지는 사람들,
나 자신을 비롯해 다친 아들,
아들을 초대했던 친구,
아들을 즉각 치료해주지 않았던 의사,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남편이
차례로 그 자리에 앉아 심문을 받았다.
누구의 잘못이 가장 큰지를 따지려 할수록
부정적인 감정은 더욱 치솟았다.
그리고 그 감정이 치솟는 동안
나는 적어도 불안하지 않을 수 있었다.
적어도 더 나쁜 상황을 상상하지 않아도 되었다.
우습게도 그 심판의 과정은
나를 지키기 위한 방어책이었다.
지나치게 불안했던 나는
불안 대신 원망을 선택한 셈이었다.
어쩌면
불어가 서툰 외국인 엄마라서
아들을 더 고생시키는 건 아닐까 하는
자책감 때문에
원망은 더 쉽게 고개를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아침에 집을 나설 때
나는 서슬 퍼런 마음이었다.
오늘도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즉각 치료를 해주지 않는다면 사자처럼 포효라도 하겠다고 각을 세운 채
병원으로 향했다. 정말 싸움이라도 할 기세였다.
건들기만 해 봐, 어디.
아픈 아들을 바라보는 어미의 마음에는
독이 가득 올라 있었다.
그런 엄마를 보며
아들은 히히 웃었다.
어쩐지 든든했던 걸까.
그러나 병원에 머문 세 시간 동안
전혀 그럴 필요는 없었다.
간호사들도, 의사들도 모두 친절하게 우리를 맞아주었다. 천천히, 또박또박 설명해 주었고 절차에 따라 모든 일은 질서 정연하게 진행되었다. 내가 두려워했던 배제의 상황은 없었다.
문득 궁금해졌다.
이 친절한 사람들은
왜 토요일엔 우리를 돌려보냈던 걸까.
왜 내게 불신감을 안겨주었던 걸까.
굳이 그 질문을 꺼내자
의사는 다시 한번 아주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토요일에 진료를 받지 못한 채 이틀을 기다려야 했던 상황은 ‘증상의 경중에 따라 응급실이 두 곳으로 나뉘어 있는 프랑스 병원 시스템’을 우리가 잘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의사나 직원이 조금 더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더라면 더 좋았겠지만, 묻지 않고 요구하지 않으면 받을 수 없는 것이 이 나라 문화라는 것쯤은 이제 알고 있다.
이제야 모든 게 이해된다고 말하는 나를 향해 의사는 웃어 보였다. 언제든 필요하면 이곳으로 바로 오면 된다고.
처음 와 본 곳이라 어디서 계산을 해야 할지 몰라 두리번대는 나를 위해 의사는 직원에게 수납처를 물어
직접 알려주기까지 했다.
외국인이라서
차별을 받을까 두려웠는데
차별을 받았다.
고마운 차별.
바쁜 응급실에서, 휴가철임에도 근무 중이던 젊은 여의사의 친절은 눈물이 날 만큼 고마웠다. 포효하겠노라 마음먹고 달려온 병원에서 나는 난데없이 깊은 온정을 느끼고 말았다. 마음이 따뜻해졌다.
아들 친구의 엄마는
아침저녁으로 아이의 상태를 묻는 문자를 보내왔다.
집에 돌아와 검사를 받고 깁스를 했고 이제 통증이 덜하다고 전하자 곧바로 전화가 걸려왔다. 미안하다며 거듭 말하던 그녀는 개학 후 자신의 아들이 우리 아들을 많이 도울 거라며 무엇이든 필요하면 기꺼이 돕겠다고 했다.
우리 아이의 안위를 이토록 마음으로 걱정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눈물이 나게 고마웠다.
그리고 가장 막막했던 순간,
병원에서 거절당하고 돌아와 도대체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서 있던 그때 전화로 함께 고민해 주며 하나하나 짚어주던 친구의 얼굴이 떠올랐다.
서툰 나의 불어를 이해해 가며 같이 병원을 찾아주고 복잡하게만 느껴지던 시스템을 차분히 설명해 주던 그 친구에게 고맙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덕분에 오늘 진료를 잘 받았다고.
그 친구가 없었다면 아마 아직도 이 병원, 저 병원을헤매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고마운 사람들은
그렇게 불쑥 내 마음에 들어와
불안을 감추기 위해 세워두었던
심판대를 무너뜨렸다.
어제 하루 종일 괴롭히던
원망도 두려움도 온데간데없다.
비로소 깨닫는다.
불행한 일이 일어날 때
우리는 우리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어렴풋이 알게 된다는 사실을.
그런 순간 우리를 홀로 두지 않고
기꺼이 함께해 주려는 사람들을 통해서.
그 작은 온정들이 봄비처럼 스며들어
찬 바람 앞에 굳어 있던 마음속 흙덩이들을
자기 연민과 원망, 두려움과 불안까지
천천히 녹여낸다.
Merci Merci
오전 내내 거듭 말했던
고맙다는 말이
귓가에 울리고 또 울린다.
어눌한 프랑스어로
낯선 이국땅에서 살아가는
외국인의 삶.
고단하고 외로운 이 삶을.
그렇게 나는
작은 불행과 그 위로 쏟아졌던 큰 위로를 통해
이곳에서의 삶을 조금 더 받아들인다.
여기에서의 이 삶도
그리 나쁘지만은 않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