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어를 못해서 다행이었다

침묵이 위로가 될 수 있다면

by 마리앤느

프랑스어를 잘 못하기 때문에 불편한 상황을 말하라면 수도 없이 나열할 수 있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가장 나를 곤욕스럽게 하는 순간은, 내가 좋아하고 아끼는 프랑스인 친구가 힘든 일을 겪고 있을 때이다. 그런 순간에는 정말 머리가 하얘지고 슬며시 자리를 피하고 싶어질 정도이다.


근래에도 그런 일이 있었다.

파리에 있는 작은 교회를 나가게 되면서 그곳에서 만난 친구들과 가족처럼 지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친구들 중 가장 가까운 친구가 근래에 번아웃이 왔고,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이제 걸음마를 하는 둘째와 한 창 미운 7살이라 하는 큰 애를 돌보며 일을 하고 있는 이 친구는, 늘 피곤해 보였다. 그러나 늘 밝게, 씩씩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다 크리스마스를 맞아 시댁 식구들과 발리로 여행을 다녀온 뒤, 눌러두었던 모든 것이 터져 나왔다. 여행 중 아이들이 아프고 다치는 일이 반복되었고, 낯선 곳에서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는 무력감이 그녀를 완전히 무너뜨린 듯했다.


1월 첫주 일요일, 그녀의 남편에게서 그녀가 많이 힘들어한다는 문자를 받았다. 그녀를 만나기도 전부터 나는 괜스레 마음이 힘들어졌다.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도 그 친구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는 느낌에 벌써부터 괴로웠다. 불어를 못한다는 사실이 마치 내 사족을 다 묶고 있는 듯 답답하게만 느껴졌다.


그 괴로움 때문이었을까.

교회에 친구가 들어왔을 때, 다른 프랑스인 친구들은 다가가 안아주고 말을 건넸지만, 나는 눈조차 제대로 마주칠 수 없었다. 나와 그녀 사이의 불어 실력 차이가 마치 나와 그녀 사이의 거리처럼 느껴졌다.


모두들 그녀에게 다가가 여행이 어땠는지, 무엇이 힘들었는지를 물었다. 모두들 그녀를 위로하고 싶어 했고 들어주고 싶어 했다.


교회를 들어설 때만 해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아 보였던 그녀는 그 모든 질문 앞에 마치 정신이 돌아온 사람처럼, 마치 인터뷰를 하듯 차분히 설명했다. 그리고 그 순간만큼은 이 상황에 방해가 되는 모든 감정을 잠시 치워둔 것처럼 보였다.


그러다 한 사람이 말했다.

“그래도… 발리잖아.

좀 누릴 수 있는 것들도 있지 않았어?“


나는 보았다.

이 질문 앞에서

친구의 눈빛이 흔들리는 것을.

그녀는 망설이고 주저하며 작은 목소리로 답했다.

“응… 좋은 곳이고… 감사하지.

불평을 하려는 건 아니야. 정말 감사하지...

모두들 우리를 도와주려고 했고...

그런데 마지막 날까지 아이가 아팠고...

상황이 그리 쉽지는 않았어.”


그녀는 자신이 느꼈던 모든 감정에 대한 확신을 잃어버린 듯 보였다.


그렇게 조금이라도 좋은 면을 상기시켜 주려던 한 친구의 선한 노력은 그녀의 감정을 더욱 눌러 버리고 말았다. 안타까운 일이었다.




마지막 친구까지 떠나고, 그녀가 내게 다가왔을 때, 나는 가만히 친구를 안아주었다.


떠듬떠듬 불어로,


나는 너를 이해해.. 나도 그랬었거든.

나도 낯선 곳에서 아이들에게 아무것도 해 줄 수 없어서 많이 힘든 시간을 보냈어...

누구라도 네 입장이라면 너처럼 힘들 거야...


겨우 이 정도의 말을 했을까...

내가 할 수 있는 위로는 고작 이 정도였다.

나는 유창하게 대화를 나눌 수도

친구에게 수려하게 조언을 줄 수도 없었다.


그저 친구를 따뜻한 눈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차마 내 부족한 실력으로는 전하지 못한 마음

'설령 네가 무너졌다 해도,

그게 네가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는 뜻은 아니야'

라는 말을 마음속으로 되네이고 또 되네이면서...



그때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오가는 대화 속에서 잠시 이성을 찾은 것 같았던 그녀의 눈에 갑자기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상황에 집중하느라 잠시 눌러둔 감정들,

애써 치워둬야 했던 아픔들이 다시 되살아난 걸까.


그녀는 더 이상

자신의 이야기를 남의 이야기처럼

쏟아내지 않았다.

대신 친구는 자신의 감정을 꺼내어 마주 보고

고스란히 겪어 내고 있었다.


나는 아무것도 해 줄 수가 없을거라 생각했는데

유려하지 못한 불어 실력 때문에

친구를 위로할 수 없을 거라고

주저하고 자책했는데...


신기한 일이었다.


그 친구는 침묵할 수밖에 없는,
그러나 침묵을
온전히 그녀를 향한 마음으로 채우고 있는
내 앞에서야 비로소
자신의 진짜 감정을 마주했다.
눈물 한 방울과 함께.

네가 있어서 다행이야 고마워
그녀가 내뱉은 말은
다시 내게 와서 위로가 되었다.



나는 여전히 유창하지 않은 불어 실력이

답답하고 힘들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무너진 존재가 받아들여진다고 느끼는 일,
진실로 위로받았다 느끼는 순간은

말이 아니라 마음으로 되는 것임을.


그녀를 둘러싸고 위로하던 친구들 역시

모두 진심이었다.

다만 돕고 싶은 마음보다 더 쉽게 앞섰던 말들이,

오히려 그들의 진심이 친구의 마음에 닿지 못하도록 막아서고 말았는지도 모르겠다.


같은 마음으로 위로하고 싶었을 뿐인데,

내가 유리했던 이유는 단 하나였다.


말이 빠진 만큼 더 간절해진 마음.



불어를 지지리도 못해서

나는 그녀를 위로할 수 있었다.


그렇게 약함이 강함이 되었다.

인생은 참 아이러니하다.

그래서 참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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