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에게 말하고 싶은 아주 사소한 이야기들
아이들은 엄마에게 할 말이 참 많다. 학교만 다녀오면 “엄마” “엄마” 애가 타도록 엄마를 찾는다. 그러나 막상 “응?”하고 들어주기 시작하면 전혀 특별하지 않은 이야기들이다.
“엄마 오늘 친구가 내 손을 잡으려고 했다? 기분 좋았겠지?”
“엄마 오늘 친구가 나를 놀렸어. 그래서 슬펐어.”
“엄마 그 친구 있지? 걔가 오늘도 장난치다 선생님한테 혼났다?”
“엄마 오늘 선생님이 기타로 노래 불러줬다~”
“엄마 오늘 점심은 너무 맛이 없는 것만 나왔어.”
끝도 없이 쏟아져 나오는 아이들의 말이 나를 빙 둘러 에워싼다. 그리고 나는 매일 갈등의 순간을 직면한다. 마음을 내어 열심히 들어줄 것인가, ‘나중에’라는 한 마디로 밀어낼 것인가.
마음먹고 충분히 들어주면, 그제야 아이들은 만족스럽다는 듯이 제 할 일을 찾아 떠난다. 그러나 바빠서 대충 잘라 버리면 아이들은 영 심투룽한 표정을 하곤 바쁜 내 주변을 빙빙 돌다 풀이 죽은 채 멀찍이서 엄마를 바라본다. 소소하고 일상적인 이야기들, 하나도 중요하지 않고, 별 다를 게 없는 이야기를 엄마에게 조잘조잘 쏟아내는 것이 도대체 무슨 의미이기에.
망망대해 같은 세상에 홀로 남겨져 ‘많은 사람들 중의 한 사람’으로 하루를 견뎌낸 아이들에게, 엄마와 눈을 맞추고 나누는 대화는 어쩌면 “나”를 풀어놓는 순간인지도 모르겠다. 하루 종일 ‘내가 누구인지’ 보다 더 중요한 어떤 것을 요구받고 받아들이기만 했을 아이들에게 이 시간은 ‘자신이 여전히 환대받고 있음’을 확인하는 시간인지도 모르겠다.
‘오호라, 엄마가 내 이야기를 이렇게 열심히 들어주는 걸 보니, 나는 여전히 중요한 사람이구나... 그러니 이제는 됐다.’
엄마가 살아계셨을 때, 나는 우리 아이들 같지 않았다. 참말로 말이 없는 딸이었다. 아무리 기억을 다시 더듬고 더듬어 보아도 엄마랑 마주 앉아 조잘조잘 세상 쓸데없는 이야기들을 나눈 기억이 나질 않는다. 내 기억 속 엄마는 아프거나 바빴다. 며칠을 꼬박 아파 침대에 누워 있거나 입원을 했고, 몸이 좀 나아지면 그간 못 돌봤던 가정 여기저기를 돌보느라 너무나 바빴다. 어쩌면 나는 그런 엄마를 늘 멀찍이서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아이였는지도 모르겠다. 처음부터 하고 싶은 말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엄마가 힘들까 봐 참다 보니 그것이 내가 되어 버린 건지도.
그게 너무나 익숙해서, 그리고 점점 바빠지는 일상이 또 한 가지의 이유가 되어 엄마에게 내 이야기를 해 보려는 노력 같은 건 크게 하지 않고 살아왔다. 그런데 막상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니 가장 아쉬운 것은 이제 영원히, 엄마와 수다를 떠는 일 따윈 내 인생에서 일어날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때 알게 되었다. 지금은 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언젠가는’ 하고 여길 수 있는 것과 희망까지도 완전히 차단되는 것은 확연히 다른 것이라는 것을.
그래서였다.
밤마다 엄마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했던 건.
나는 엄마가 없는 하루를 오롯이 견뎌낸 뒤에 홀로 자취방에 남겨진 밤이면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그 늦은 밤 틀어놓은 라디오에서는 쉴 새 없이 많은 사람들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이별과 그리움, 아쉬움... 심야 라디오가 내게 들려주는 흔한 이야기들 속을 헤매며 나는 그보다 더 흔하디 흔한 내 이야기를 엄마에게 쏟아내려고 애쓰고 있었다.
“엄마...”
짧은 한 단어를 쓰고 한참을 멍하니 그 단어만을 바라보고 있던 날도 있었다. 그런가 하면 터질 것 같은 모든 슬픔을 활자화 해서 고스란히 쏟아내는 날도 있었다. 일상에서 문득문득 마주하는 엄마의 빈자리에 대한 아쉬움과 그리움으로 몇문장 글쩍이기도 했다.
그런데 참 신기한 일이었다.
별 다를 게 없는 일상의 이야기로 시작된 편지는 늘 “내 인생에 엄마가 사라져서 그래서 나는 너무나 슬퍼"로 이어졌고 마침내는 "그래도 해 볼게. 살아볼게."로 귀결되었다.
어떤 이야기로 시작되든 이야기는 반드시 엄마에 대한 그리움과 엄마가 없는 것에 대한 슬픔으로 흘러갔다.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깊은 진심들이, 깊은 슬픔들이 그 편지에서 만큼은 검열 없이 드러났다. 그리고 편지를 쓰면 쓸수록 점점 더 사소하고도 일상적인 이야기들, 구질구질하고 찌질한 감정들까지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몇 방울의 눈물은 편지의 마무리를 위해서 꼭 필요한 필수품이었다.
그러나 그 슬픔의 중심에 가 닿고 나면 어김없이 살겠노라 고백하게 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긴 편지 한 통을 마무리하며 눈물 몇 방울 쓰윽 닦고 나면 휴우- 그제서야 겨우 살 것 같은 기분이 들곤 했다.
내 마음속에 가득 차 있던 모래주머니를 휙 하고 던져버린 기분이었다. 재밌는 일이었다. 그 모든 이야기는 정작 엄마가 살아 계셨다면 엄마에게 하려고 생각도 하지 못했을 이야기들이었다.
그러나 나는 엄마가 돌아가시고 난 뒤에야, 엄마 앞에 섰다. 어릴 땐 하지도 못했던 것을 하며, 이제 서야 엄마에게 보채는 딸이 되어 본다.
내 사소하고도 보잘것없는 일상의 이야기들, 그리고 그 속에서 내가 얼마나 분투하며 살아가고 있는지를 들어달라고... 있지도 않은 엄마 앞에 나는 그렇게 매일 밤 털어놓고 또 털어놓았다. 그러면 왠지 엄마가 거기에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엄마가 그 어딘가에 있다고 느끼는 그 순간만큼은, 내가 어떤 모습이든 그냥 나라는 이유로 여전히 용납받을 수 있을 거라는 작은 기대가 생겼다.
지금 생각해 보면 매일 밤 그렇게 편지를 쓰는 시간을 통해 딱 하루치의 괴로움을 견딜 만큼의 위로를 얻곤 했다. 그래서 나는 견딜 수 있었다.
그 시절의 나는 어제도 오늘도 매일 이렇게 똑같은 편지를 쓰고 또 눈물을 닦아 보지만 내일이면 또 이럴 것이라는 사실이 막막했다. 긴 터널 같은 시간이었다. 그러나 터널을 나와서 돌아보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에 다다를 수 있었던 까닭은 매일 똑같아 보이는 별반 효과도 없어 보이던 그 편지 쓰기가 나로 하여금 딱 하루를 견뎌낼 만큼의 힘을 주며 계속 걸어가게 도왔기 때문이었다. 그렇게라도 내 마음을 꺼내놓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제 더는 엄마에게 편지를 쓰지 않는다.
평생 하고 싶은 모든 말을 그때 편지로 다 해 버린 걸까? 아니면 늦은 응석의 때를 지나 조금 더 성숙한 딸이 된 것일까? 그것도 아니면 하루치의 어려움을 견딜 힘을 주는 다른 무언가가 내게 이제 많아진 것일까?
어떤 이유이든 다 좋다.
여전히 내 현실에서는 엄마를 마주하고 속삭일 수 없지만, 원하면 어느 때고 편지지 한 장 꺼내 들면 된다. 내 모든 것을 들어줄 엄마는 그렇게 언제까지나 내 기억 속에 있을 것이다. 그러니 그걸로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