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우리의 잘못이 아니었다

by 마리앤느

엄마가 돌아가신 뒤의 여정은 참으로 지난했다. 나는 그 아픔에 직면하기보다는 회피하는 편을 택했다. 되도록 많은 친구들을 만났고, 열심히 공부했으며, 몇 개의 동아리를 하고, 그리고 아르바이트를 했다. 수영도 배우고 연애도 했다. 그게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허락된 모든 것들을 하려고 했다.


내 마음이 어떤 상태인가,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인가는 관심사가 아니었다. 내 목표는 너무나 낯선 이 거대한 슬픔을 밀어내는 것이었다. 간혹 나를 ‘불쌍한 사람’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을 향해서 보여주고 싶었다. 상실을 얼마나 잘 극복해낼 수 있는지... 내가 얼마나 강한 사람인지... 그래서 다시 모든 것을 ‘정상’으로 돌려놓고 싶었다.



그러나 2년 뒤, 아빠마저 돌아가시면서 모든 노력은 산산이 무너졌다.


사람들은 더 이상 내게 흔한 위로조차도 건네질 않았다. 내가 겪은 이 모든 상실과 아픔은 그들이 섣부른 위로조차 건넬 수 없는, 쉽사리 일어날 수 없는 일의 범주에 속한 것임을... 그러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사람처럼 살아보려는, 아니 모든 걸 '정상'으로 돌려놓으려던 애씀은 부질없는 것이 되고 말았음을 나는 깨닫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어느 날, 이유도 영문도 모른 채 내가 아는 사람 중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긴 불면의 밤이 시작되었다.

하루하루를 견디는 게 너무나 힘들었다. 살아있다는 게 너무나 힘들었다. 밤에 잠을 자고, 낮이 오면 하루를 살아내고, 집에 가면 엄마와 아빠가 있던 그 평범한 일상들이 그토록이나 아름답고도 소중한 것이었다는 것을 그것을 잃어버리고야 알았다.



그러나 돌아갈 길이 없었다.

나에게 남은 것은 나 자신뿐이었다. 그리고 이 삶을 살아내야만 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고, 또 생각해 보아도... 그 시절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은 사람들의 달라진 태도였다.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만 해도 다가와서 그래도 위로라도 해 보려 했던 사람들이, 아빠마저 돌아가시고 나자 어색한 표정을 짓고 어색하게 말을 건네곤 했다.



그럴 만도 했다. 막다른 비극 앞에서 무슨 말을 어떻게 건네야 할지 조차 알지 못하는 그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어색한 순간들은 참을 만했다. 그러나 그것보다도 더 나를 숨 막히게 하는 것은 동정하는 표정과 눈빛 뒤에 숨어있는 2%의 묘한 감정이었다.


마치 다음 이야기가 어떻게 될지 알려주지 않고 예고도 없이 끝나버린 드라마의 다음 편을 궁금해하듯, 그들은 내 인생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마치 텔레비전에서 방영되던 <인생극장>의 주인공을 바라보듯, 그들은 때때로 ‘너에게만 왜 이런 불행이 연달아 일어난 걸까?’의 이유를 내 인생에서 찾고 싶어 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의 다음은 어떻게 흘러갈 것인가?’를 알아내고 싶어 했다. 그리고 마침내는... ‘너를 보니 내 삶은 다행이구나...’ 하는 안위를 얻고 돌아갔다.


물론 모든 사람이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어제까지는 친구라 불렀던 이들로부터 그런 감정을 느낄 때마다 내 마음은 더욱 나락으로 떨어지곤 했다.


불쌍한 사람이 되지 않을 유일한 길은, 감정과 속내를 결코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내게 일어난 명백한 일들을 완벽하게 무시하고 살아가는 것, 그래서 조금의 흐트러짐도 보이지 않는 것, 그리하여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것, 사람들에게 내 비통함을 결코 들키지 않는 것.


그러나 그것은 이제 겨우 22살의 아이가 참아내기엔 참으로 힘든 일이었다.





그래서였다.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도시로 무작정 떠났던 이유는.

다른 나라로 갈 수 있었다면, 아니 우주까지 갈 수 있었다면 더 멀리, 가장 먼 곳으로 갔을 테다.


교환학생이라는 좋은 명목으로 아무도 없는 곳으로 떠나 그곳 하숙집에서 아무도 없이 보내는 하루하루는 낯설고 힘들었지만, 적어도 숨이 막히지는 않았다. 때론 군중 속에서 느끼는 이질감과 외로움보다 차라리 정말로 홀로 동떨어져 느끼는 외로움이 더 편하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그 6개월 동안 나는 마음껏 울었고, 마음껏 흐트러졌다. 괜찮은 척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었다. 어떤 날은 하루 종일 걷고 또 걸었다. 가끔 외로움에 누군가에게 매달리고 싶은 밤이면, 몇 번이고 전화번호를 뒤지고 뒤지다 결국은 휴대전화를 꺼 버렸다. 도대체 이들 중에서 누가 내 상처를 자신의 삶에 대한 위로로 삼지 않고 나를 있는 그대로 안아줄 수 있을지 구분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나를 더없이 고립시켰다. 참으로 힘든 나날이었다.



그런데 이만큼 와서 생각해 보니, 어쩌면 나야 말로 내 모든 불행의 원인을 나에게서 찾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나 싶다. 내가 복이 없어서, 내가 무언가 문제가 있어서, 그래서 이 모든 불행이 나에게 일어난 것이 아니었을까. 모든 게 사실은 내 잘못인 것은 아닐까.


그런 불안함을 간신히 숨기며 살아가고 있었기에, 누군가의 눈길에서 동정이나 연민, 혹은 의구심과 호기심을 발견할 때면 더없이 불편했다. '그것은 사실이 아니에요' 라고 말할 용기가 없었기에. '이 모든 것은 제 잘못이 아니예요'라고 말할 만큼의 믿음이 없었기에. 아니 사실은 내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걸 들킬까 봐. 나는 그렇게 피하고 달아나고 숨었다. 나만 이상한 사람이라고 여겨질까봐, 내 문제가 모두 드러날까봐.




그러나 긴 방황의 끝에서 비로소 나는 알게 되었다.


누구에게나 인생이 긴 터널 같은 때가 있다는 걸. 비극이나 슬픔이 유독 나에게만 찾아드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아무리 긴 터널도 끝이 있듯, 그 어두운 시간에도 반드시 끝은 있다는 것을.


그러니 긴 인생 가운데 찰나 같은 슬픔의 순간을 바라보며 누구에 대해서도 쉽게 동정하거나 판단해서는 안 된다. 찰나 같은 기쁨의 순간을 의지해서 누구도 쉽게 교만하거나 으스대서는 안 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 찰나 같은 비극에 매여 누구도 인생을 쉽게 포기해버려서는 안 된다...


우리는 누구나 때로 이해할 수 없는, 설명할 수 없는 불행의 늪을 지나기도 한다. 어제의 나처럼 오늘의 누군가가 그런 시간을 지나고 있다면 나는 그에게 이 말만은 꼭 해 주고 싶다.



그것은 우리의 잘못 때문이 아니라고. 우리가 운이 없는 사람이거나, 우리가 잘못 태어났다거나 우리의 인생이 뭔가 잘못되어서 그런 것은 결코 아니라고. 그러니 행여라도 누군가가 그런 시선을 보낸다 할지라도 절대로 굴하지 말라고.



비극 속을 거닐고 있다 할 지라도, 밀려오는 거대한 슬픔 앞에 서 있다 할 지라도, 당신은 소중한 사람이다. 믿기지 않겠지만 정말로 사랑받아 마땅한 존재이다. 그 불행을 이겨낼 힘을 가진 사람이고, 지금은 보이지 않는 다 할지다로 당신은 반드시 그 불행을 이해해주고 품어주고 안아줄 사람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내가 그러했듯이.


우리가 우리 삶에 대한 모든 의심을 거두고 끝까지 스스로를 포기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아픔으로 얼룩진 삶이라 할지라도 섣부르게 재단해 버리지 않는다면, 누구도 우리의 삶을 초라하게 만들지 못한다. 그리고 마침내 종국에는 그 이해할 수 없었던 아픔들이 반드시 우리를 강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이제 와 생각해 보니 정말로 중요한 것은 그 믿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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