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의 시간들을 지나며 4
사람들은 큰일을 겪고 나면 인간관계가 자연스럽게 정리가 되더라고 말한다. 내 삶을 돌아보아도... 그 말이 진리까진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는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려운 일을 겪으면 내 고통을 제 것처럼 여겨줄 사람을 만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절실히 깨닫게 된다. 반대로 그런 마음으로 손을 내민다 해서 내가 과연 그 손을 덥석 잡을 수 있는가 하면 그 또한 쉬운 일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나에겐 소위 베프가 꽤 많았다.
그중에는 초등학교 때부터 서로 집을 오가며, 서로의 부모님을 마치 자신의 부모님처럼 여기며 살갑게 함께 자라온 친구들이 있었고, 그 친구들은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마다 장례 내내 내곁을 함께 지켜줬다. 지금 생각해도 참 고맙고 고맙다.
그런가 하면 고등학교 시절에 만나 성격도 취향도 비슷하고, 무얼 해도 잘 맞아 대학도 같이 다니자며 똑같은 대학을 지원했던 친구도 있었다. 그 친구와 서로의 집을 오간일도 없었고 서로의 가정사 같은 건 잘 모르고 지내왔지만, 서로를 향해 얼굴 한 번 붉혀 본 적이 없을 정도로 잘 맞았고, 서로에 대해 진실했고, 서로를 참 많이 좋아했다.
그 외에도 여러 친구들을 학년이 바뀔 때마다 만나고 헤어졌으며, 친해졌다가 또 세월에 밀려 조금 소원해지기도 했다.
연거푸 상실을 경험하면서 그 깊이가 덜한 친구들은 자연스럽게 다 정리가 되었다. 너무나 당연했다. 내가 당면한 이 현실을 나누고 싶지 않은 사람들은, 그만큼 의미 있는 관계가 아니라는 결론이 나왔다. 만나서 서로가 얼마나 잘 살고 있는지만을 드러내 보여야 하는 관계라면 가뜩이나 인생이 힘든 그 시기에 유지할 힘과 에너지가 내겐 없었다.
그러나 고등학교 때 만난 이 친구는 그러기엔 참으로 가까운 친구였고, 서로가 서로를 참 좋아했었다. 그러나 나는 이 친구를 만나는 일이 점점 힘들어졌다.
고등학교 시절, 모든 게 비슷했던 우리가 불과 2년 사이에 이렇게 다른 인생에 놓여있다는 사실이 나를 힘들게 했다. 그랬다. 내가 부모님을 차례로 잃고 조금씩 웃음을 잃어가고 있었던 그때에도 그 아이는 모든 게 그대로였고, 여전히 해맑게 웃고 있었다.
그 아이의 밝음 앞에 설 때마다 내 속에 휘몰아치던 질문들.
“왜 누군가의 인생은 이토록이나 아픈 것이고, 누군가의 인생은 저토록이나 평온한 것일까?”
그 아이가 내게 던져준 것이 아니었다는 걸 나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이것은 단지 나의 문제였다. 그러나 그때, 난 어렸고 그 아이를 마주하기가 점점 더 힘들어졌다.
“네가 나와 뭐가 달라서... 도대체 왜 너는 내가 잃어버린 그 모든 걸 가진 거니?”
사실은 나는 그런 내가 못 마땅했다.
이렇게 찌질하다니. 친구의 행복과 평안을 향해 이토록이나 질투하다니. 나는 그런 내 모습을 스스로 외면하기 위해서 그 친구에게서 멀어져 갔다. 연락을 피했고, 우연히 마주쳐도 곁을 주지 않았다. 내 모든 불행의 이유가 마치 그 친구의 행복 때문 인냥, 나는 모든 불행의 책임을 그 아이에게 묻고 있었다.
사람들을 피해 다른 지역에 교환학생을 신청하고 숨어들었을 때에도, 그 친구는 나를 찾아왔었다. 모두가 내 예민함을 힘들어하며 내버려 두었던 그때에도 그 친구는 나를 잊지 않았다. 그러나 당시에 나는 친구의 그런 진심조차도 받아줄 수 없었다.
만나고 헤어지는게 일상인 20대에도 몇 년이 지나도록 그 친구는 그 흔한 이별조차 경험하지 않고 살아가고 있었다. 한 번도 상처 받아보지 않은 것 같은 맑은 그 아이의 미소 앞에만 서면 나만을 소외시킨 채 우주의 중심은 그 친구를 향해 돌고 있는 것 같았다. 내 편에서 그것은 너무나 불공평한 일이었다.
단지 그 이유였다. 일부러 나를 만나겠다고 학교 앞까지 찾아온 그 친구를 냉정하게 대했던 것은.
그러나 그 후에도 친구는 일 년에 한두 번 연락을 해 왔다. 그러나 친구의 삶은 여전히 달라진 게 하나도 없었다. 땅이 좋은 곳에 심겨 아름답게 자라나는 그녀를 바라보며 느끼는 박탈감이 힘겨워 나는 끝내 그를 밀어냈고 우리는 결국 그렇게 멀어졌다.
그렇게 한 친구를 잃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미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때는 인생이 아직도 많이 남아있고, 모든 인생은 각자가 짊어져야 할 삶의 무게를 가졌다는 걸 이해하기엔 너무나 어린 나이였다.
세월이 많이 흐르고 한 남자의 아내로 두 아이의 엄마로 살아가던 어느 날, 문득 그 친구 생각이 났다.
자려고 누운 밤, 잠은 안 오고 그 친구가 내게 보였던 그 진심들이 하나하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때 그 아이는 끝까지 친구로서의 모든 예의를 다 했었구나... 그런데 너무나 어리고 철없던 내가, 상처 때문에 아팠던 내가, 내 모든 슬픔의 책임을 그 아이에게 전가해 버린 거구나.... 참 많이 미안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친구 소식을 듣게 되었다. 10년을 만난 남자 친구와 헤어지고 많이 힘들어하고 있다고...
그랬다. 내가 ‘너는 왜?’라고 홀로 아파하던 순간에도, 인생은 계속되고 있었다.
그 아이에게도 인생은 꽃길만을 안겨주진 않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누구에게나 숨죽여 우는 순간이 있고, 환히 웃는 시간이 있으니까. 잠이 든 순간이 있다면, 깨어 있는 순간 역시도 있는 법이었다. 걷는 때가 있다면 뛰는 때가 있고 멈춰 서거나 넘어지는 때 역시도 있을 수밖에 없으니까. 그리하여 인생은 우리에게 오르고 올라야 하는 순간을 지나 끝도 없이 내려가야만 하는 순간도 안겨주는 법이니까.
그걸 그때 알았더라면 내 모든 아픔에 대해, 그 친구에게 책임을 묻는 그런 어리석은 일 따윈 하지 않았을 텐데...라고 이제 와서 생각해 본다. 그러나 그것 또한 지나가야 할 시간이었으리라.
그 시간을 통해서 한 명의 좋은 친구를 잃었지만, 조금 더 삶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누구의 인생에 대해서도 “왜?”라고 묻지 않는 법을 배웠다. 모든 사람들이, 애를 쓰며 자신에게 주어진 인생을 그 나름의 시간표를 따라 살아가고 있으니까. 그때가 언제인지, 왜 하필 그때인지는 누구도 물을 수 없고, 누구도 답할 수 없으니까. 그런 이유로, 내가 그토록 불공평하다 여겼던 생은, 공평한 셈인지도 모르겠다.
몇 년이 더 흐르고 나서, 얼마 전에는 문득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같은 SNS 시대에 그 친구의 소식을 찾기는 어렵지 않았다. 당당한 미스로, 여전히 자신의 꿈을 찾아 좌충우돌하며 살아가는 그녀의 삶이 블로그 여기저기에 담겨있다. 때론 고뇌한 흔적이 보이기도 하고, 눈물의 흔적이 보이기도 한다. 가슴 벅찬 기쁨의 순간이 느껴지기도 한다. 만남과 헤어짐이, 이룸과 실패가, 얻음과 상실이 교차하는 그녀의 삶을 가만히 들여다 본다.
조용히 눈을 감고 잠시나마 그 친구의 행복을 빌어주었다. 어디에 있든, 어떤 시간들을 지나든 부디 잘 이겨나가길. 그리하여 자신에게 주어진 인생의 행로, 그 모든 순간을 아름답게 지나갈 수 있기를...
나에게 보여줬던 그 진심이 참으로 고마웠다고 그리고 그런 너를 받아주지 못한 나를 용서해 달라고 나는 아무도 들을 이가 없는 데도 홀로 입술을 달싹여 본다. 이 진심이 부디 그 친구에게 가 닿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