섣부른 위로보다는

by 마리앤느

한 번도 상상해 보지 않았던 현실이 불쑥 내 인생에 찾아왔다. 태어날 때부터 내 곁에 늘 있었던 두 사람, 어쩌면 내 인생에서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었던 두 사람은 그렇게 장난처럼 사라졌다. 모든 것은 다 제자리에 있는데, 내가 가장 사랑했던 두 사람만 자취를 감춰버렸다.


그렇게 상실은 갑자기 예기치 않게 내 인생에 발을 들여놓았다.



처음,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만 해도 애를 썼다. 모든 것이 다 괜찮아질 거라고 스스로를 다독여 보기도 했고, 금세 모든 걸 받아들이고 툴툴 털고 일어난 척 연기도 해 가며, 내 삶이 그래도 여전히 괜찮다는 사실을 입증하려고 노력했다. 사람들 속에 있을 때는 활짝 핀 꽃처럼 웃었고, 홀로 머물 때면 피어 보기도 전에 꺾인 채 아무렇게나 던져진 꽃잎처럼 홀로 숨죽여 울었다.


그러나 그렇게 노력하면 할수록 도리어 내 속으로 더 깊이 침투해 들어가는 깊고 막막한 슬픔까지 지울 수는 없었다.



사람들은 어떻게든 도와주려고 했고, 위로해 주려고 했다.

“너만 겪는 일이 아니야. 우리도 다 언젠가는 겪을 일이야.”라고도 했고, “아마도 좋은 곳으로 가셨을 거야.”라고도 했다. 그러나 그들의 친절한 말들과 안타까운 마음들은 정작 내 가슴에는 닿지 못한 채 무의미한 말들이 되어 사라졌다.


그 어떤 호의도, 그 어떤 말도, 도무지 위로가 되지 않았다.


밥을 먹다가도, 길을 걷다가도 문득 문득 엄마가 사라진 뒤에도 아무 일이 없었던 것처럼 돌아가는 세상이 의아했고, 다시 아무 일이 없었다는 듯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신기했다. 그러나 나 역시도 세상의 일부가 되어 아무 일 없다는 듯 살고 있다는 사실이 가장 의아했다.


그랬다. 세상에서 달라진 거라고는 엄마가 사라졌다는 그것, 그 사실 하나뿐이었다.





어느 날이었다. 아빠와 함께 저녁밥을 먹고 있었다. 어색한 침묵이 힘겨워 틀어둔 TV에서는 오늘 하루 또 무슨 일들이 그렇게 많이 일어났는지를 보고하고 있었다. 어느 도로에서는 교통사고가 났고. 어디에 선가는 불이 났다. 누군가는 억울한 일을 당했고, 누군가는 실형을 선고받았다. 끝도 없이 늘어놓는 사건 사고들 속에서 ‘사망자 00명 발생’이라는 말이 귀에 탁 꽂혔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한 해 동안 교통사고로 발생한 사망자가 수백 명, 수천 명이라고 도로마다 붙여놓아도 내게 그것은 숫자에 불과했지, ‘누군가의 상실’로 느껴지지 않았었다. 뉴스를 틀 때마다 듣게 되는 ‘사망자’라는 단어도 그저 저 멀리 다른 세계 속의 이야기 일 뿐이었다. 나와는 상관없는, 불행한 일을 겪은 누군가의 일일 뿐이었다.


물론 간혹 너무나 안타까운 사고를 접하면 “저런.. 참 안 됐다.”라고 읊조리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잠을 못 자거나, 밥을 못 먹을 정도로 그 일에 마음을 쏟지는 않았다. 금세 그 일을 떨쳐버리고 내 삶을 살아갔다.



그런데 엄마가 떠나고 백 일이 좀 넘었을 무렵, 그날 저녁 나는 밥을 먹다가 뉴스 속 사망자라는 단어 앞에 멈췄다. 평생 뉴스를 보며 한 번도 주의 깊게 받아들이지 않았던 그 사망자라는 단어가, 누군가에겐 소중한 엄마이고 아빠이고 가족이었겠구나 라고 생각하자 가슴이 너무나 먹먹했다. 어제 하루 동안 이 지구 상에서 사라져 간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그리고 그들의 가족들은 또 얼마나 슬펐을까. 사고로, 병으로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상실을 마주한 그들은 얼마나 아픈 시간을 지나고 있을까.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 일이 없었던 것처럼 살아가야 하는 그들의 일상은 또 얼마나 의아한 것일까.


뉴스에서 나오는 그 일들이, 처음으로 내 일처럼 느껴지던 순간이었다.




그제야 나를 사랑하는 친구들이 위로해 주려고 던진 그 말들이 왜 내 가슴에 전혀 닿지 못했는지... 그 이유를 깨달았다.


한 번도 상실이 무엇인지 경험해 보지 못했던 그 친구들이 내게 해 줄 수 있는 위로라는 것은, “저런... 참 안 됐구나...” 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것이 나빴다고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나는 알게 되었다. 그것이 그들의 최선이었다는 걸.


그러나 그것이 얼마나 친절한 마음이었던가와 상관없이 내게 위로가 될 수는 없었다.

상실의 시간을 지나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바로 그것이었다.


나는 이 거대한 슬픔을 어떻게 해결해야 될지 몰랐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오르락내리락하는 감정들을,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지 알 길이 없었고, 잠을 잘 수도 밥을 먹을 수도 없을 만큼 고통스러운 마음이 얼마나 시간이 흘러야 좀 나아질 런지 아니 나아지기는 할는지 그것도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정말로 안타까운 것은 도움을 청할 곳이 없었다는 것이었다. 도와주고 싶어하는 많은 이들이 있었지만 그들의 존재가 내 마음의 문제를 해결해줄 수는 없었다. 상실과 애도, 이것은 오롯이 내가 건너야 할 강이었다.



그러다 문득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상실 수업>이라는 책을 읽게 되었다. 책장을 펼쳐서 열 페이지를 채 못 읽고 통곡하며 울었다. 그 책에서 이야기하는 모든 것이 내 이야기였다. 그 책은 내게 “우리도 겪을 일이야”라고 말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 다 괜찮아져”라고도 하지 않았다.


굳이 무언가를 말했다면, 그것은 “지금 네가 겪고 있는 그 모든 슬픔과 아픔들이 다 정상적인 거야. 네가 이상한 게 아니야. 네가 아니라도 누구라도 이런 아픔 앞에서는 이렇게 무너져내릴 거야. 그러니 괜찮아.. 네가 느끼는 그 모든 감정들은 다 괜찮아”라고 말했던 것 같다.



나는 그 책을 읽으며 울고 또 울었다.


엄마가 돌아가신 뒤 내 슬픔이 누군가에게로 흘러갈까 노심초사하며 더 애써 밝은 척을 하며 살아왔던, 아무 일도 없었던 것 같은 세상의 일부가 되어 아무 일도 없는 사람처럼 살았던 그 모든 의아한 순간들을 내려 놓을 수 있는 유일한 순간이었다.


그렇게 나는 내 안의 그림자를 마주했다. 모든 의문과 회의, 의아함을 덮어놓고 살아보려 애를 쓰면 쓸 수록, 내 속에 더 깊이 뿌리내리던 그 그림자를.. 그 어두운 나도, 너무 미워서 마주 보고 싶지도 않은, 슬픔에 얼룩진 나도, 나였던 것이다. 밝은 나 만큼이나 소중한 그래서 꼭 끌어안아줘야 할, 나였던 것이다.


그렇게 한 권의 책을 곱씹으며, 나는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었던, 누구에게도 위로받을 수 없었던 내 깊은 슬픔들과 조우했다. 그리고 깊은 위로를 받았다. 참지 않고 울어도 된다고, 네가 겪는 그 모든 것이 다 괜찮은 거라고 책을 읽고 난 밤이면 눈이 퉁퉁 부은 나를 끌어안고 속삭였다. 그리곤 시간이 어서 흐르기를 기다리며 잠자리에 들곤 했다.


이만큼 와서 돌아보니,

그 모든 눈물은 엄마와 이별하기 위해서 반드시 꼭, 흘려야 하는 내 몫의 슬픔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내 삶엔 분명히 어떤 일이 일어났었고, 그것을 한 번은 꼭 마주해야만 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 후, 몇 번인가 친구의 아버지 혹은 어머니의 장례식장에 다녀왔다.


"내가 겪어봐서... "라고 말하지 않았다. "누구나 다 겪는 일이야"라고도 말하지 않았다. "괜찮아질 거야..."라고도 하지 않았다. 그저 잠잠히 곁을 지킬 뿐이었다.


무슨 말로 그 슬픔을 위로할 수 있을 것인가...


장례식을 마치고 나면 <상실 수업> 책을 친구에게 보내줬다. 나중에는 절판되었다는 걸 알고 중고 서점을 뒤져서 사다 주기도 했다.



그 친구들이 나처럼 그 책을 보며 통곡했을는지는 알 길이 없다. 어쩌면 그 친구들은 또 다른 방법으로 애도의 시간을 가졌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다만 그들이 섣부르게 괜찮은 척하지 않기를 바랐다. 다른 사람들이 불편할까 봐 자신의 슬픔을 너무 일찍 가슴에 묻어버리지 않기를 바랐다. 모두가 아무렇지 않게 살아간다는 이유로, 아무렇지 않은 척 하지 않기를 정말로 바랐다.


훌훌 털고 일어나기 위해서, 그러기 위해서 꼭 흘려야 할 만큼의 눈물을 다 흘려보내고 그러고 나서 일어나도 괜찮다는 걸 알기를 정말로 바랐다.



그러나 이것 또한 그들의 가슴에 닿지 못한 서투른 위로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내가 살아온 그 삶의 많은 굴곡들이, 그리고 그 속에서 흘린 많은 눈물들이 누군가의 아픔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사람으로 나를 키워가고 있다는 것을.


지나가다가 구급차가 달려가는 걸 볼 때,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잠시 그의 안녕을 빌어줄 수 있는 사람으로 나를 길러냈다는 것을. 그리고 내가 삶의 많은 지혜로운 말들을 빌려서 위로하려고 한다고 해서 누군가가 반드시 위로를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걸 알고 차라리 기다려주길 택할 줄 아는 사람으로 나를 만들어 간다는 것을.


그랬다. 아팠던 만큼 자라고 있었다. 잃었지만, 또 다른 의미에서 채워지고 있었다.

어쩌면 상실이 내 인생에 베푼 것이 있다면 이 오묘한 인생의 진리를 깨닫게 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 됐다. 그걸 배웠으니, 그걸로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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