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흐리다. 금세 빗방울이라도 후두둑 떨어질 것 같은 날씨다. 나는 마치 성스러운 예복이라도 꺼내 입듯 검은색 트레이닝복을 입고 검은색 러닝화를 신는다. “엄마 또 운동하게?” 아들이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엄마를 쳐다보며 묻는다.
아이들을 등교시키고 나서 동네를 따라 달리기 시작한다. 건물들을 향해 바쁘게 출근하는 사람들 틈바구니를 비집고 사람들이 없는 곳을 찾아 달리다 보면, 강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가 떠오른다. 그 어딘가에 도달하기 위해 모든 것을 거슬러 있는 힘을 다해 가야 했던 그 연어는, 그래서 그곳에서 원하는 무언가를 이뤘을까. 그리고 나는 지금 무엇을 위해 이 사람들을 거슬러 홀로 달리고 있는가....
그렇게 도달한 강둑길에서 나처럼 달리고 있는 사람들을 마주치면 손이라도 흔들어 주고 싶은 심정이다. 함께 강을 거슬러 오르는 친구를 만난 듯 반가움이 그치지 않는다.
달리기, 세 글자를 써 놓고 보니, 벌써 십 년도 훌쩍 넘긴 때의 일이 떠오른다.
대학 캠퍼스 근처에 자취를 하던 나는 밤이면 학교 운동장에 나가서 열 바퀴, 열다섯 바퀴, 스무 바퀴… 걷다가 뛰다가를 반복하곤 했다. 어느 날 친구가 내게 말했다.
“밤마다 운동장을 저렇게 뛰는 사람들의 행렬을 보면… 꼭 좀비 같지 않니?”
나는 아무 말도 못한 채 그 친구를 빤히 쳐다봤다. ‘좀비…라고?’ 농담으로 던진 말이겠지만, 그 말이 아직까지도 귓가에 생생하다. 누군가에겐 절박한 순간이 누군가에겐 좀비처럼 보이기도 하는구나…
그 친구에게 말하지는 못했지만, 그 '좀비'의 행렬 속에 내가 있었다. 나에게 달리기는 절박함이었다. 살아보려는 몸부림이었고, 나를 지켜보려는 결의였다. 그때의 난 외면적으로는 스무 살을 갓 넘긴 순수하고 풋풋한 대학생이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사람들 앞에서 보여 지는 나였을 뿐. 사실은 내가 살아내야 할 현실은 비극에 더 가까웠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2년이 채 안 되어 아빠까지 돌아가시면서 내 삶은 이전까지와는 너무나 다르게 전개되고 있었다. 한 번도 상상해 보지 않았고, 한 번도 기대해 보지 않은 삶이 펼쳐지고 있었다.
엄마 아빠와 함께 살던 집을 처분하고 홀로 학교 근처 작은 자취방으로 이사를 한날 밤, 작은 침대에 몸을 웅크리고 누운 나는 도무지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삶은 내게 끊임없는 질문을 던졌다.
‘이 모든 일들이 왜 하필 나에게 일어나야만 했던 것일까? 이 모든 이유에도 불구하고 나는 왜 살아야만 하는 걸까? 삶은 왜 내게만 이토록이나 가혹한 것일까…?’
이 무수한 질문들 앞에 답을 찾아야만 했다. 그것만이 슬픔을 잠재울 수 있었고, 나로 하여금 비극적인 삶을 받아들이게 만들 수 있을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직감적으로 알았다. 누구도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줄 수 없다는 것을. 그 답은 오로지 내가 찾아야만 한다는 것을.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면 끝도 없이 외로워졌다. 이 지구 위에 홀로 둥둥 떠 있는 섬처럼 느껴졌다.
고립감에 더는 누워 있을 수 없어 벌떡 일어났다. 대충 옷을 챙겨 입고 집을 나섰다. 어디를 가겠다는 계획도 없이 무작정 집을 나선 나는 모두가 떠났고 그래서 텅 비어 버린 그 캠퍼스를 혼자 서성이고 있었다. 외로움과 고독함을 떨쳐 보려고 나간 그 길에서 더 없이 외로웠다. 낮에 건물마다 가득 가득하던 그 사람들은 다들 그들을 맞아주는 집으로 돌아갔을 터였다. 그러나 나는 이 늦은밤 홀로 캠퍼스를 서성이고 있는 것이었다.
가슴 깊은 곳에 꽉꽉 눌러 두었던 뜨거운 감정이 튀어나온다. 깊은 슬픔이었다. 나만 이곳에 홀로 남겨졌다는 절망이었다. 마주보고 싶지 않았던 그 감정, 이성의 힘으로 눌러 놓고 싶었던 그 감정이 나를 집어 삼킬 것 같은 순간이었다. 그때 서성이던 발걸음이 운동장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한 방향으로 뛰거나 걷고 있었다.
모두가 떠나간 텅 빈 학교 교정, 유일하게 불이 밝혀진 운동장에서 자신의 속도대로 묵묵히 달리고 있는 그들을 목격하는 순간, 참았던 눈물이 그만 팡 터져버렸다. 한 번도 얼굴을 본 적 없는 사람들이었다. 이름도 나이도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도 그 사람들이 마치 그 운동장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 마냥 와락 반가웠다. 헉헉 숨을 몰아쉬며 달리고 있는 그들의 모습이 나를 위로했다. 너만 그런 것이 아니라고, 인생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모든 것을 받아들이기 위해 우리도 오늘 이렇게 달리고 있다고 마치 그들이 내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한참을 운동장에 앉아 그들이 달리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달리던 누군가가 떠난 그 자리에 또 다른 누군가가 나타나 달리고, 또 다른 누군가가 떠나고… 떠나간 이의 뒷모습을 아련히 바라보지 않고 길을 따라 묵묵히 달리는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다 생각했다. 나도 달려야겠다고, 내 삶을 이대로 두지 않아야겠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내야겠다고…
다음 날 밤, 어김없이 찾아오는 그 많은 질문들을 뒤로 하고 나는 운동화를 신었다. 깜깜한 학교 교정을 더듬어 헤매며, 나를 반겨줄 그곳으로 향한다. 저기 멀리에서 빛이 보인다. 사람들의 헉헉대는 거친 숨소리가 들려온다. 환대다. 그들이 거기에 있다는 그 사실이 나를 환대한다. 살아있다. 많은 이들이 떠나간 그 자리를 지키며 오늘도 우리의 몫을 살아냈고 그리고 또 한 번 정말 살아보려고 운동장을 향해 달려 왔다. 단지 그 이유만으로 인사 한 번 나눠보지 않은 그 사람들이 마치 친구처럼 느껴졌다.
운동장을 향해서 힘껏 내달렸다. 그리고 달리기 시작한다. 한 바퀴를 달리고, 두 바퀴를 달리고… 숨이 막히고 죽을 것 같은 순간이 찾아온다. 잠시 숨을 고르며 걷는다. 그리고 생각한다. 이 죽을 것 같은 순간도 이렇게 쉬이 지나 간다고… 그 순간이 영원하지 않다고… 다시 달린다. 달리고 또 달린다. 다리가 후들대고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는다. 땀이라고 쓰고 눈물이라고 읽는다.
그렇게 나는 그날 흘려야 할 모든 눈물을 운동장 위에서 흘렸다. 그리고 삶이 내게 던지는 모든 질문 앞에 나는 답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겠노라고… 이 죽을 것 같은 순간에도 내가 할 수 있는 그것을 하며 살아보겠노라고…
그 차가웠던 시절을 그렇게 지나왔다.
아니 운동장이 있었기에, 좀비처럼 밤마다 달리는 그 사람들이 있었기에 그 시간을 견딜 수 있었다.
지금도 가끔 학교 교정, 그 운동장을 떠올린다. 오늘도 사람들은 깜깜한 교정을 지나 불이 켜진 그 운동장에 모여 달리고 있을까? 그때 그들은 지금은 어디에 있을까? 지금의 나처럼 어느새 가정을 이루고 또 다른 삶의 무게를 감당하며 살아가고 있을까? 자꾸만 마주하게 되는 인생의 막다른 골목들 사이를 강을 거꾸로 거슬러 오르는 연어처럼 힘껏 달리고 있지는 않을까?
그 많은 질문들 앞에 나는 오늘도 달리며 스스로에게 답한다. 그때 불 밝힌 운동장에서 그들이 자신들의 속도로 달렸던 것처럼, 자신들에게 주어진 삶 역시도 그렇게 받아들이며 살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고. 그러니 삶이 늘 환희로 가득하지 않다 할 지라도, 멈추지 않고 달려보겠노라고.
그 많은 상실을 뒤로 하고 오늘도 오늘 만큼의 힘을 내어 살아보겠노라고.